




GOING HOME
샤넬의 패션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된 뒤 리조트 컬렉션과 오트 쿠튀르, 레디 투 웨어 컬렉션 데뷔를 마친 버지니 비아르. 그녀는 자신의 첫 공방 컬렉션을 앞두고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로 향했다. 하우스 유산을 더듬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가브리엘 샤넬의 개인 박물관이자, 그녀 자체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샤넬의 하우스 코드 중 많은 부분이 이 아파트에서 유래하는 것은 샤넬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늘 그곳에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코로만델 병풍(동양미가 물씬 풍기는 옻칠한 병풍. 연인이었던 보이 카펠이 선물한 것이었다)과 자신의 별자리였던 황금 사자를 비롯해 까멜리아와 리본, 체인 등의 오브제들 그리고 밀 이삭이나 숫자 5같이 부적처럼 믿고 의지하던 심벌들까지. 샤넬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오래된 가요의 가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멀리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뜬금없을지 모르나, 어쩌면 그것이 버지니 비아르의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먼 곳으로 떠나곤 했던 지금의 공방 컬렉션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어요. 파리에 머물고 싶었거든요.” 이번 쇼는 그녀가 지난봄 샤넬 하우스의 오랜 친구인 소피아 코폴라와 아이디어를 나눈 결과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깡봉가 31번지에서 열렸을 오리지널 쇼에 대해 생각했고, 거울 계단을 배경으로 모델이 워킹하는 걸 지켜보는 샤넬의 모습을 상상하며 전율을 느꼈다. 그뿐 아니라 두 사람은 하우스 코드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많은 부분이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서 유래한다는 것, 그것들을 어떻게 쇼 무대에 통합시킬지에 대해서도.

이번 공방 컬렉션의 아이디어를 함께 나눈 버지니 비아르와 소피아 코폴라.

더블 C 로고가 돋보이는 멀티 진주 목걸이.

까멜리아, 밀 이삭 등 샤넬의 코드가 반영된 의상들.

2009년 광고 오브제로도 사용되었던 케이스가 클러치백으로 탄생했다.
WOMEN IN THE MIRROR
이 거대한 세트를 밝히는 샹들리에가 내려와 런웨이를 비추고, 모델 빅토리아 세레티가 나선형 계단을 뱅글뱅글 돌아 내려오며 쇼가 시작됐다. 예상대로 첫 번째 룩은 가브리엘 샤넬을 상징하는 블랙 컬러 룩이었다. 꽃과 밀 이삭을 금색으로 수놓은 벨트가 더해진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뒤로 파워플한 블랙 룩이 줄을 이었다. 쇼의 마지막도 모노톤으로 구성됐는데, 가운데는 마치 샌드위치처럼 핑크와 산호색, 살구색을 지나 라즈베리와 루비 등의 컬러 팔레트로 채워졌다. 이전의 공방 컬렉션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순하고 유연한 실루엣. 그것은 장인들의 섬세한 터치를 더하기 좋은 캔버스와 같았다. 르마리에 공방에서 제작한 까멜리아는 직선적인 실루엣의 리틀 보머 재킷을 가득 뒤덮었고, 르사주 하우스에서 수놓은 리본과 펄, 밀 이삭 등이 심플한 칵테일 드레스를 장식했으며, 마사로 공방에서 제작한 블랙과 빈티지 골드의 투 톤 펌프스는 리드미컬하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심드렁한 태도로 자유롭게 걸어 나오는 모델을 관찰하다 보면 이것이 어떤 여성을 위한 옷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날아다니는 사람들 말고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들. 런웨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말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 실생활의 효용 가치에 주목한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아주 작은 까멜리아를 수놓아 ‘CHANEL 31 RUE CAMBON’이라고 수놓은 스웨트셔츠였다. 더불어 캐주얼한 실크 톱과 트위드 탱크톱, 쇼츠 앙상블, 타이다이 염색 효과를 준 트위드 수트와 칵테일 드레스들, 또 손바닥만 한 미니 퀼팅 백과 펜던트 목걸이까지, 웨어러블하고 동시대적 아이템이 가브리엘 샤넬 이후 샤넬의 첫 여성 예술감독이 된 버지니가 가진 비전을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런 걸 꼭 갖고 싶다’는 열망이 아닌, ‘저런 여자가 되고 싶다’고 갈망하게 되는 것. 젊고 경쾌하고 활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이 모던한 진화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있을까?






콜로만델 병풍 앞에 선 샤넬의 앰버서더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랑팔레에 재현된 깡봉가 31번지의 아르데코 계단에 선 모델들.
NEW SWEET HOME
여러모로 신기한 2020년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그해가 왔다는 것도 놀랍고, 접히는 휴대폰이나 말아서 보관하는 텔레비전 따위가 개발된 것도 놀랍지만, 어떤 면에서 가장 놀라운 건 패션이라는 세계의 이중성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이 어지러운 세계에서, 소수의 사람들은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가브리엘 샤넬은 상상이나 했을까. 100년 뒤에도 그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옷으로 쇼가 열리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거대한 공간에 재현되고, 자신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복기할 거라는 것을. 또 자신과 함께 일하던 공방의 작은 책상으로 여전히 대를 이은 장인들이 출근하고, 그들이 매일 고개를 숙이고 앉아 구슬을 꿰고 자수를 놓고 있는 미래를.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던 말로 짐작해 보건대, 어쩌면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샤넬 하우스의 친구들, 왼쪽부터 바네사 파라디, 버지니 비아르, 릴리 로즈 뎁, 마가렛 퀄리, 레이니 퀄리.

나란히 앉은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와 마리옹 코디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