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그때의 아파트에서 겨우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새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기묘한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강렬한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칠한 현관 입구였다. 명암의 대비를 이용해 입체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벽지와 바닥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칠한 것으로, 착시 패턴으로 유명한 19세기 그래픽 아티스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C. Escher)마저 감탄할 정도로 정교했다. 카이호이의 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이후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이곳을 보러 왔을 때만 해도 아파트는 쓰레기와 각종 폐기물로 가득했고, 바닥은 잔뜩 균열이 가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폐허나 다름없던 그 광경이 카이호이의 눈에는 자신의 상상을 실현시킬 새하얀 도화지로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만들어내야 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손수 작업을 해왔기 때문인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익숙하다고나 할까요.” 철거반이 지극히 기본적인 정리 작업만 하고 떠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작업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스텐실 기법으로 바닥에 무늬를 그려 넣는 데만 꼬박 3주가 걸렸다. 그런 다음엔 창문을 전부 뜯어고쳤고, 전문 업체에 의뢰해 주방을 맞춤 제작한 다음 공간에 어울릴 만한 각종 가전제품을 들여놓았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뒤이어 현관문을 만들고, 벽장을 짜고, 전문 인테리어 업자조차 어려워한다는 크라운 몰딩까지 손수 제작하는 험난한 작업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카이호이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진짜로 즐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엄두도 못 낼 작업이었죠”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집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카이호이가 디자인하고 색칠한 패턴으로 꾸민 현관 복도. 도형의 면마다 명암을 달리해 입체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벽에 놓인 철제 의자는 스테어 갤러리 경매에서 구입한 것.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카이호이의 아파트 거실. 그가 패브릭 업체 슈마허와 함께 디자인한 독특한 패턴의 쿠션을 포함, 개성 있는 쿠션들이 빈티지 소파 위에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커다란 회화 그림은 카이호이의 작품.

다이닝 공간의 마호가니 식탁과 뒤편에 보이는 장식장은 각각 허터 옥션 갤러리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 식탁을 에워싼 세 개의 의자는 스웨덴 유리공예가 잉에게르드 라만이 디자인한 이케아 제품이다. 빨간 어린이용 의자는 스토케 제품.

벽에 걸린 말 조각상은 카이호이의 작품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스테어 갤러리에서 구입한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캐비닛. 그 위엔 카이호이가 2017년에 만든 조각품이 진열돼 있다.

유명 페인트 업체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보틀 그린’ 색상 페인트로 칠한 아이들 방의 옷장.

호피 무늬 카펫이 깔린 안방 침실. 천장의 트림에는 리넨 캐노피가 우아하게 매달려 있다.

빈티지 느낌의 퀼트 원단을 씌운 소파 베드가 놓인 아이들 방.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반고흐 옐로’ 색상 페인트로 칠한 의자와 발라드 디자인스의 의자가 마주보고 있다. 러그는 오리엔탈 러그 바자의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