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혼돈으로 가득 찬 데이빗의 아파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DECOR

즐거운 혼돈으로 가득 찬 데이빗의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화가, 섬세한 공예가인 데이빗 카이호이 가족이 사는 뉴욕 아파트를 찾았다.

ELLE BY ELLE 2019.12.26
 
데이빗 카이호이(David Kaihoi)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 일이다. 당시 인테리어 전문 매거진 에디터였던 나는 커버 촬영을 위해 뉴욕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11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이었음에도 파크 애버뉴에 즐비한 최고급 아파트에서나  볼법한 화려하고 기품 있는 인테리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실과 침실 하나가 전부인 아파트에 은은한 라벤더 색상의 벽지와 빛바랜 중국풍 벽지를 함께 매치하는 건 평범한 감각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일일 테니까. 그는 그곳에서 아내 모니크(Monique)와 당시 세 살이었던 딸 미라벨(Mirabelle)과 살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맞춤 제작한 매트리스 침대는 아침이면 한쪽으로 밀어둬야 한다며 소탈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그때의 아파트에서 겨우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새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기묘한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은 강렬한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칠한 현관 입구였다. 명암의 대비를 이용해 입체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벽지와 바닥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칠한 것으로, 착시 패턴으로 유명한 19세기 그래픽 아티스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C. Escher)마저 감탄할 정도로 정교했다. 카이호이의 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이후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이곳을 보러 왔을 때만 해도 아파트는 쓰레기와 각종 폐기물로 가득했고, 바닥은 잔뜩 균열이 가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폐허나 다름없던 그 광경이 카이호이의 눈에는 자신의 상상을 실현시킬 새하얀 도화지로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만들어내야 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손수 작업을 해왔기 때문인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익숙하다고나 할까요.” 철거반이 지극히 기본적인 정리 작업만 하고 떠난 뒤 그는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작업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스텐실 기법으로 바닥에 무늬를 그려 넣는 데만 꼬박 3주가 걸렸다. 그런 다음엔 창문을 전부 뜯어고쳤고, 전문 업체에 의뢰해 주방을 맞춤 제작한 다음 공간에 어울릴 만한 각종 가전제품을 들여놓았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뒤이어 현관문을 만들고, 벽장을 짜고, 전문 인테리어 업자조차 어려워한다는 크라운 몰딩까지 손수 제작하는 험난한 작업이 밤낮으로 이어졌다. 카이호이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진짜로 즐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엄두도 못 낼 작업이었죠”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집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카이호이가 디자인하고 색칠한 패턴으로 꾸민 현관 복도. 도형의 면마다 명암을 달리해 입체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벽에 놓인 철제 의자는 스테어 갤러리 경매에서 구입한 것.

카이호이가 디자인하고 색칠한 패턴으로 꾸민 현관 복도. 도형의 면마다 명암을 달리해 입체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벽에 놓인 철제 의자는 스테어 갤러리 경매에서 구입한 것.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카이호이의 아파트 거실. 그가 패브릭 업체 슈마허와 함께 디자인한 독특한 패턴의 쿠션을 포함, 개성 있는 쿠션들이 빈티지 소파 위에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커다란 회화 그림은 카이호이의 작품.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카이호이의 아파트 거실. 그가 패브릭 업체 슈마허와 함께 디자인한 독특한 패턴의 쿠션을 포함, 개성 있는 쿠션들이 빈티지 소파 위에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커다란 회화 그림은 카이호이의 작품.

다이닝 공간의 마호가니 식탁과 뒤편에 보이는 장식장은 각각 허터 옥션 갤러리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 식탁을 에워싼 세 개의 의자는 스웨덴 유리공예가 잉에게르드 라만이 디자인한 이케아 제품이다. 빨간 어린이용 의자는 스토케 제품.

다이닝 공간의 마호가니 식탁과 뒤편에 보이는 장식장은 각각 허터 옥션 갤러리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 식탁을 에워싼 세 개의 의자는 스웨덴 유리공예가 잉에게르드 라만이 디자인한 이케아 제품이다. 빨간 어린이용 의자는 스토케 제품.

벽에 걸린 말 조각상은 카이호이의 작품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벽에 걸린 말 조각상은 카이호이의 작품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스테어 갤러리에서 구입한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캐비닛. 그 위엔 카이호이가 2017년에 만든 조각품이 진열돼 있다.

스테어 갤러리에서 구입한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캐비닛. 그 위엔 카이호이가 2017년에 만든 조각품이 진열돼 있다.

아내 모니크는 이 모든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을까? 패션 MD로 뛰어난 심미안을 지닌 그녀는 그의 꿈을 처음부터 완벽히 이해하고 지지해 줬다. 인테리어 전반에 있어서 그녀는 차분한 느낌을 주는 색상 위주로 컬러 팔레트를 구상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내가 사랑하는 게 바로 절제미거든요. 그래서 강렬한 색상으로 벽을 칠하는 대신 현관 입구에서 보이듯 재미있는 패턴과 입체적인 텍스처를 가미해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기로 했죠.”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카이호이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모니크는 볼륨감 있는 크라운 몰딩을 원했지만 카이호이는 반대했고, 부부는 욕실을 하나 더 만들길 원했지만 건물주가 허락하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상의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예술가답게 카이호이는 자신이 지닌 모든 예술과 디자인, 공예 감각을 집약시킨 그만의 공감각적 세계를 완성했다. 아이들 방 앞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테리어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카오스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갖 색깔로 뒤범벅돼 있고요. 그 자체를 이곳에 들여놓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 아이들 방은 기분 좋은 혼돈으로 가득한 창의적인 세상과 다름없었다. “아이들 방은 매달 다르게 꾸며요. 매번 다른 기획 전시로 채워지는 갤러리처럼 말이죠.” 이날 하우스 투어의 종착지는 안방 침실로 1800년대 영국 상류층이 살았을 법한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가 짙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침실 전체에 깔린, 강렬하지만 차분한 호피무늬 카펫에서는 아내 모니크의 취향이 엿보였다. 소품 하나하나 컨셉트에 맞춰 세심하게 가져다놓은 이곳에서 이제 겨우 두 살인 아들 앤더스(Anders)를 위한 유아용 침대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덕분에 자기 방에서 혼자 자야 하는 아들이 보채지 않느냐는 질문에 카이호이는 웃으며 답했다.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유명 페인트 업체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보틀 그린’ 색상 페인트로 칠한 아이들 방의 옷장.

유명 페인트 업체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보틀 그린’ 색상 페인트로 칠한 아이들 방의 옷장.

호피 무늬 카펫이 깔린 안방 침실. 천장의 트림에는 리넨 캐노피가 우아하게 매달려 있다.

호피 무늬 카펫이 깔린 안방 침실. 천장의 트림에는 리넨 캐노피가 우아하게 매달려 있다.

빈티지 느낌의 퀼트 원단을 씌운 소파 베드가 놓인 아이들 방.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반고흐 옐로’ 색상 페인트로 칠한 의자와 발라드 디자인스의 의자가 마주보고 있다. 러그는 오리엔탈 러그 바자의 제품.

빈티지 느낌의 퀼트 원단을 씌운 소파 베드가 놓인 아이들 방. 파인 페인츠 오브 유럽의 ‘반고흐 옐로’ 색상 페인트로 칠한 의자와 발라드 디자인스의 의자가 마주보고 있다. 러그는 오리엔탈 러그 바자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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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THOMAS LOOF
    글 WHITNEY ROBINSON
    에디터 류가영
    번역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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