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무도 모른다> 주변을 돌아보고 싶은 연말엔 이 영화

이번 연말엔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적어두고 보지 못 했던 영화들을 보는 건 어때요?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 열한 번째.

BYELLE2019.12.24
10일 동안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수영복을 입었던 부위를 제외하고 새카맣게 탄 몸이 지난 10일의 여행을 상기시킨다. 방콕에서 4일을 보내고, 끄라비에서의 6일. 끄라비에서는 숙소를 한번 옮겼고, 마지막 숙소에서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었던 8일 그리고 마지막 이틀은 눈을 뜨면 수영복을 챙겨 입고 밤새 어둠과 잠에 묻어둔 몸을 아침 햇살 아래 수영장 썬 배드에 뉘여 바싹 말렸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또다시 썬 배드에 누웠다가 오후 5시가 넘어 해가 지면 방으로 돌아가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17년 재개봉 포스터

영화 〈아무도 모른다〉 2017년 재개봉 포스터

이틀 동안 3편의 영화를 보았고, 그중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드 감독의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였다. 당시 〈아무도 모른다〉는 칸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작으로 화제였는데, 무슨 연유였는지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메모장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적었고, 15년이 지나 태국 끄라비 여행 중에 보게 되었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아키라'와 엄마는 방금 막 도쿄의 한 아파트에 이사를 왔다. 집주인에게 선물과 인사를 건네고 마저 이삿짐을 옮긴다. 그들이 옮긴 트렁크에서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이 나온다. 몰래 이사 온 네명의 아이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장남을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규칙을 되뇐다. 엄마는 열두 살의 장남, 의젓한 '아키라'에게 집과 아이들을 맡긴 채 일을 하러 다닌다. 장남 '아키라'와 둘째 '교코'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아키라'는 야구를, '교코'는 피아노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학교에 가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하는 아이들에게 철없는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학교는 다녀서 뭐하려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 안 가도 훌륭하게 된 사람 많아."
엄마는 첫째와 도넛을 먹으며, 자신은 행복해지면 안 되냐고도 말한다. 어리광을 부리는 표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긴 그녀는 '아키라'에게 몇 달 치의 집세와 생활비, 짧은 편지를 맡기고 사라진다. 방치는 곧 버림이다. 영수증까지 챙기고 꼼꼼하게 가계부를 쓰는 '아키라'. 결국 돈이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가 끊어져 근처 공원에서 물을 떠 오고, 빨래하고 머리를 감는다.
한숨이 나왔고, 답답했다. 그 와중에도 장면들은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서로를 의지하며 감당하기 벅찬 겨울과 봄, 여름을 보내던 중 왕따를 당하는 중학생 ‘사키’와 다 같이 친구가 되고, 막내 '유키'가 의자에 떨어져 죽는다. '아키라'는 숨을 거둔 막내 '유키'를 캐리어에 넣어 '사키'와 함께 하네다 공항 근처에 묻는다. 비행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는 실화로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화의 내용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암담하다. 실제 사건에 따르면 엄마는 출산하자마자 죽은 둘째를 벽장에 넣어두었고, 아이들은 막내 여동생이 죽었을 때 그대로 똑같이 방치했다고 한다. 다섯 아이였고, 그중 두 아이가 세상을 떠났으며, 엄마가 아이들을 모두 집에서 출산하였고 모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7개월이 넘게 방치되었고, 집주인이 발견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세상의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영화 제목이 ‘아무도 모른다’인 이유다. 영화 시작의 ‘영화에서 다룬 모든 감정은 픽션이다’라는 명시대로 그 일을 겪은 아이들의 실제 감정은 알 수 없다. 또한 기본 줄거리는 실제 사건과 비슷하지만, 감독이 바라본 이 사건 속 아이들은 비극적이고 암담하기보다 나름대로 생존해나가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으로 따뜻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의 보호와 책임 없이 몇 개월을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을지 예상이 된다. 화가 난다.
세상에는 이런 어둠과 방치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보이지 않으면 보려 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으로 이어지는 전초가 된 영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족의 형태에 대한 물음에 더 깊게 빠졌을 것 같다. 감독은 처음 실제 사건을 접하고 영화로 만들기까지 15년 동안 대본을 정리했다고 한다. 촬영 전, 감독과 스태프들은 아이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고, 대본 없이 현장에서 상황을 건네주고 대사는 조용히 속삭여주고(출연한 아이들은 모두 연기 경험이 없었다) 관찰 카메라처럼 촬영하며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끈끈한 유대와 표정이 쌓여 감정이 되어 날아든다.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남 '아키라' 역 그 당시 14살이었던 야기라 유야의 눈빛은 영화를 보고 난 지금까지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당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드보이〉의 ‘최민식’ 배우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개봉한 지 15년이 지난 영화를 이제야 꺼내보며 ‘봐야 할 영화’에 적어둔 영화들을 다시 확인했다. 시간이 흘러 나의 메모장의 어둠에 방치된 영화들. 연말이라 따뜻하고 즐거운 영화들이 많지만 돌보지 못한 주변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또한 들어 이 영화를 나눈다. 비단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그리고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을 더 따뜻하게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는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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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김모아(@lesonducouple)
  • 사진 <아무도 모른다> 스틸 컷
  • 에디터 권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