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주 전, 이 칼럼에 ‘여든이 되어도 컨버스를 신을 테야!’라고 의기양양하게 적은 뒤, 문득문득 그 문장이 떠올랐다. 커피를 내리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리고 외출하기 위해 신발을 고르다가 그 말을 곱씹었다. 쉽게 뱉은 문장 뒤로 의구심이 따라왔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슈즈를 고집했던 사람, 세르주 갱스부르였다.

세르주 갱스부르와 레페토 지지슈즈@Getty Images

제인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그리고 그들의 어린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Getty Images
제인 버킨에게 바구니 가방이 있었다면, 세르주 갱스부르에게는 화이트 컬러의레페토지지슈즈(Zizi)가 있었다. 지지슈즈는 그의 연인 제인 버킨(그녀는 버튼 디테일이 있는 레페토의 메리제인미드힐을 즐겨 신었다)이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발목이 약하고 예민했던 그는 부드러운 소가죽으로 만든 이 신발을 매우 좋아했고 어딜 가든 이 흰색 신발과 함께였다. 1991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평생 동안 이 신발을 사랑했고, 매년 30켤레씩 주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레페토는 1947년, 로즈 레페토가 그의 아들(롤랑 프티)의 권유로 파리 국립 오페라 근처에 있는 작은 아틀리에에서 발레 슈즈를 제작하면서 시작된 브랜드다. 이후 발레리나들을 위한 신발을 주로 만들다가 1956년, 브리짓 바르도의 요청으로 제작한 신발을 그녀가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 신고 나오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선보이는 산드리옹(Cendrillon)이다. 편안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플랫슈즈는 기존의 발레리나들을 위한 슈즈와 같은 ‘스티치 앤 리턴(박아서 뒤집기)’공법으로 만들어진다.

메리제인 미드힐을 신은 제인 버킨@Getty Images

발레리나 슈즈를 신은 제인 버킨과 로미 슈나이더. 영화 <수영장> @Getty Images
한편 세르주가 사랑했던 지지슈즈는 1970년, 레페토의 창립자 로즈 레페토가 무용수였던 그녀의 며느리 지지 장메르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옥스퍼드였는데, 기존의 슈 메이커들이 딱딱하고 무거운 신발을 만들었던 것에 비교하면 너무 가볍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화이트 컬러의 지지슈즈를 오래 간직했던 경험을 나누자면, 우선 얇고 유연한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용자의 발가락의 형태대로 볼록볼록하게 모양이 잡히는데, 그 모양이 꽤 사랑스럽다. 오래 신어도 발을 누르거나 옥죄지 않는다는 점도 큰 장점. 포멀한 룩이나 캐주얼 룩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얇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어서 겨울보다는 봄여름에 어울릴 것 같지만, 화이트신(물론 다른 컬러도 많다!)을 신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서 의외로 연말 스타일링에 어울린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 신으면 더없이 좋고, 제인 버킨이 세르주 갱스부르에게 그랬듯, 연인을 위한 연말 선물로 건네기에도 손색없는 물건이다.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