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영의 술 권하는 사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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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왔다. '여수 연등천 포장마차로 난장 술 여행 갑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대한민국에서 음식 철학과 고집이 가장 세다는 셰프 두 사람과 벌써 잡아놓은 약속이었다. 갑자기 온몸의 모세혈관을 타고 알코올이 흐른다. 말로만 들었던 연등천 포장마차 거리, 그 중에서도 식재료 궁극의 맛을 보여준다는 38번 포장마차! 주변의 술꾼들에게 자랑을 늘어 놓았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어디? 여수 무슨 천? 너무 멀어. 술 마시러 거기까지 간다고?" 그래도 재차 강조했다. "꼭 38번이어야 한대. 30년 된 집!" 41번을 강조하자 리얼리티가 좀 살았나 보다. 반응이 온다. "그래? … 41번? 그렇게 맛있대?" 바다 음식이라면 알코올 중독 남편이 퍼 마시는 것도 눈감아 주는 아내는 여수로 떠나기 전부터 조증이 났다. 분명 이건 대형사고의 전조다. 고속도로는 출발부터 막힌다. 아내의 조증이 심해진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간식도 약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6시간, 밤 8시, 부슬비까지 내리는, 여수에 왔다. 그리고 연등천. 그런데 41번 포장마차엔 '30년 묵었다는 그 손 맛의 이모'가 없다. 역시 술꾼들의 기억은 정교하지 못한가 보다. 하긴 수도 없이 끊어진 필름은 디지털 기술로도 복원이 안 될 것이다. 몇 집을 더 기웃거려 41번 마차. '빙고!' 동행한 셰프가 반갑게 소리친다. "어 이모! 아니 38번 아니었어요? 우리 지금 서울서 달려온 거예요. 이모 보러. 서울에서… 참…." 서울에서 온 술꾼들의 호기가 가상했던지, 포장마차를 가득 메운 손님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터준다. 앉기가 무섭게 입맛을 다신 셰프, "일단 회를 주시고 이모가 알아서 쭉 줘보세요." 해물과 안 친한 나에게도, 이건 서울의 포장마차에선 언감생심 근처도 가볼 수 없는 맛의 신천지다. 먼저 혀로 느낄 수 있는 건, 식재료의 싱싱한 기운. '꼬수한' 전어와 병어회, 노랗게 구운 껍질 속으로 윤기 흐르는 속살을 내보인 삼치구이, 마약을 넣은 것이 분명한 양념장 발라 30년 노하우로 구워낸 장어구이, 탱탱한 멍게, 양귀비 속살마냥 부드러운 주꾸미가 논다. 입안에서 논다. 이모 왈, "알이 꽉 찬 봄 쭈꾸미가 맛있다는데 모르는 소리여. 쭈꾸미는 가을 쭈꾸미야!" 김치도 맛있다며 싹싹 접시를 비우고 눈치를 보던 우리에게, 이모는 연신 '금(金)치'로 화수분을 채워주신다. 포장마차에 도착하자마자, 안주 본 첫 눈에, 그 첫 맛에 감동과 조증이 머리 꼭대기에 이른 아내는 장기인 창 한 자락을 뽑내 마내 이모와 대거리를 하다가 천국으로 가버렸다. 장어구이와 주꾸미도 못 보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속풀이 메뉴는 여수의 별미 장어탕. 지난 밤 2차 메뉴였던 군평선이(금풍쉥이) 구이와 오돌이 얘기가 나오자 아내가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 유명하다는 향일암 일출도, 오동도 뱃놀이 없이도, 연등천 38번 포장마차 찍고 가는 여수 술 여행은 근사하다. "여수는 너무 여유로워. 사람들도, 음식도." 동행했던 셰프의 여수 연가(戀歌)다. 그가 내내 얘기했던 소설가 한창훈 작가(그도 연등천 포장마차 거리의 단골이었단다)의 에세이집 제목('인생이 허기질 땐 바다로 가라')처럼, 우리는 허기를 달랬다. 연등천 41번 포장마차에서. 여수는, 엑스포가 없어도, 여수다. WORDS 정기영(애주가)*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