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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 보이스] 메리 크리스마스 구상나무!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전지민의 크리스마스.

BYELLE2019.12.12
 
12월, 거리에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린다.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아름다운 루미나리에와 크리스마스 장식들!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때마다 ‘저 나무는 산타클로스가 사는 북유럽 어딘가에서 자란 전나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이라면? 구상나무의 학명은 ‘Abies Koreana E.H. Wilson’. 1915년, 구상나무를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희귀 수종 식물로 학계에 처음 발표한 식물분류학자 E.H. 윌슨의 이름을 땄다. 그에게 구상나무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은 당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프랑스 신부들이었다. 1907년 한라산에서 식물을 채집하다가 발견한 구상나무 표본을 하버드대학교 아널드 식물원에서 일하던 윌슨에게 보낸 것. 직접 한라산에 올라 구상나무를 찾은 윌슨은 1920년 보고서 1호에 한국의 한라산 구상나무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분비나무(소나무과의 상록침엽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종이란 사실을 발표했다. 주로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했던 서구인들은 삼각형으로 뻗은 풍성한 가지, 끝이 뾰족해 장식을 달기 어려운 전나무와 달리 부드러운 잎과 부드러운 수형,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구상나무에 반해 품종 개발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가장 많이 쓰이는 한국의 전나무(Korean Fir), 크리스마스트리에 이른 것이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크리스마스트리의 새로운 뿌리가 된 구상나무는 최근 몇 년 전부터 분비나무와 집단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구상나무는 한번 타들어가기 시작하면 2년 안에 거대한 생선 뼈 같은 모습으로 허연 줄기만 남은 고사목이 되고 만다. 빙하기 멸종위기도 이겨낸, 무려 200년은 거뜬히 사는 바늘잎나무(침엽수)가 떼지어 죽는 까닭은 예상 가능하게도 ‘기후 변화’ 때문이다. 이들은 겨우내 쌓인 눈으로 4월까지 생존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받는데, 적게 내리고 빨리 녹는 눈 때문에 만년을 이어온 생태 법칙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겨울 내가 사는 강원도 화천에는 딱 한 번 눈이 내렸다. 눈의 고장이라는 강원도가 말이다! 겨울 숲의 푸른 심장을 지키기 위해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은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를 국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그러던 중 반가운 기사를 접했다. 구상나무를 ‘현지 외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이야기였다. 구상나무처럼 자연 상태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종의 종자를 채취해 온실이나 식물원으로 옮겨 보존하는 일을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자리한 곳은 평균 해발고도가 500m 이상이기 때문에 북방계 침엽수를 보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으며, ‘시드 볼트’(Seed Vault)와 시드 뱅크(Seed Bank)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초 산림종자영구보존시설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지하 터널형 구조로 설계된 '시드 볼트' 그리고 은행처럼 종자를 저장, 보관하다가 필요에 의해 연구를 하는 ‘시드 뱅크’라니. 심지어 전 세계 국가와 기관에서 위탁받은 종자를 무상으로 총 200만 점 이상 저장 가능하다니!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 아닌가? 한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한 노력은 그들이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산림 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터전,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곤충과 버섯, 미생물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는 최근까지도 새로운 종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구상나무의 전 세계적 활약과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그 모습을 흉내 낸 플라스틱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때 기뻐한다. 반짝이는 오너먼트와 조명들은 어른들의 마음조차 설레게 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플라스틱 트리가 아닌 진짜 구상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무를 직접 볼 수 없다면 대량생산된 트리 대신 재활용품을 이용한 종이 트리, 윈도 페인팅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도 좋지 않을까? 우리의 작은 행동이 전국의 바늘잎나무를 당장 구할 수는 없더라도 새로운 시도와 대화를 아이들과 나눈다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지, 구상나무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즐겁게 들어줄 딸 나은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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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전지민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