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기시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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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패션 쇼핑몰에서 흥미로운 아이템들을 발견했다. 얼핏 보면 얼마 전 고소영이 공항에서 들어 히트 친 지방시 백의 디자인과 비슷하다. 가죽은 보테가베네타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위빙 짜임으로 되어 있고, 여기에 샤넬의 빈티지 2.55 버클과 비슷한 것이 부착되어 있다. 줄은 랑방 스타일이다. 잡지사에 몸담고 있지 않았다면, ‘짝퉁’의 향기가 폴폴 풍기지만 않았다면, 이 가방 왠지 탐난다. 어쩜 내 입맛에 딱 맞는 디자인만 여기저기 잘 따다 붙였는지 말이다. 이런 아이템들은 인터넷 쇼핑몰에 널렸다. 국내 레스토랑에도 간혹 이런 짝퉁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이름이 마치 국내 분점처럼 떡 하니 간판에 걸려 있는가 하면, 세계적인 셰프의 시그니처 요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그릇 소품, 직원들의 유니폼 등에서도 기시감(旣視感)을 느낄 때가 많다. ‘저거 어디서 봤더라?’ 이처럼 레스토랑 곳곳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으레 손님들이 잘 모르겠거니 싶어 외국의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의 컨셉트와 스타일을 마구잡이로 베끼는 국내 레스토랑 문화의 오랜 인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청담동 레스토랑 오너 1세대들 중에는 좋은 집안의 ‘도련님’ 출신들이 많았고, 이들은 자신이 어릴 적 외국에서 즐겨 찾던 고급 레스토랑의 풍경을 한국에 고스란히 갖고 들어온 경우가 많았다. 맛보다는 분위기를 우선으로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테리어 쪽에 힘을 쏟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스타일의 차용이나 응용 수준이 아닌 레스토랑의 벽과 바닥 장식, 의자와 테이블, 와인셀러, 벽화, 장식 소품 등 구체적인 항목들의 ‘직수입’에 가까웠으니 실제 오너가 보았다면 가히 고소감 수준이었다. 실제로 예전에 청담동에서 일찌감치 성공한 레스토랑 오너를 취재했을 때, 그가 자소 섞인 뉘앙스로 했던 말이 있다. ‘우리 세대는 이렇게 잘 베껴서 레스토랑을 완성했지만, 어릴 적부터 좋은 거 많이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뭔가 좀 창의적으로 미식 문화를 만들어 가지 않겠냐’고 말이다. 청담동에 레스토랑 문화가 형성된 것이 벌써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어설프게 명품을 흉내 냈다면 지금은 ‘짝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주 세련되고 정교해졌다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진짜 명품처럼 보이니 손님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흉내도 아니고, 창조적인 모방도 아닌 정교한 속임수다. 요즘 일부 국내 파인 다이닝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그래서 불쾌하다. 고든 램지식의 스타 셰프 마케팅을 하고, 페란 아드리안의 레서피에 콩 하나 더 얹어 자신의 창작 요리라 말하고, 피에르 가니에르처럼 시그니처 접시를 만들어 마치 자신이 명품인양 포장하는 셰프들도 있고, 필립스탁이나 하이메 아욘 등 국제적인 디자이너가 참여한 레스토랑의 스타일과 컨셉트를 여기저기 짜집기 해서 ‘키치 레스토랑’을 뚝딱 만들어내는 오너들도 있다. 겉이야 그럴 듯해서 손님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지만, 명품의 아우라는 없고 컨텐츠는 부실하다. 그 일례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고든 램지와 비슷한 데시벨로 고함을 지르고, 접시를 던지지만 왜 그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에 대해 야단 맞는 젊은 셰프들도, TV를 통해 그를 지켜보는 대중들도 공감을 못한다. 주방에서 셰프는 음식이 식을까 노발대발, 노심초사해도 홀의 지배인은 마치 자신이 뉴욕 플라자 호텔의 지배인인양 손님들 사이를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행위예술’ 하기에 여념 없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명품 행세만 할 뿐 오리지날의 컨텐츠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과잉된 의식만 가득 찬 레스토랑에서 어느 누가 품위 있는 미식을 향유할 수 있을까. 차라리 그런 정교한 기술로 이름없는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시라. 기왓집 짓고 소박한 프렌치 요리를 테이블에 올리거나 피클 없는 파스타를 고집하거나 어릴 적 받던 어머님의 밥상에서 레서피를 응용해보는 게 손님들에게는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