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과 가까운 레스토랑 리프 비치 클럽의 인피니티 풀.
‘정주하다.’ 어떤 곳에 자리 잡고 산다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를 여행지에서 떠올릴 일은 드물지 않을까? 여행은 언젠가 떠나야 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안락함을 약속하는 호텔과 리조트들이 전 세계의 산과 해안가를 파고드는 요즘은 한곳에 며칠 이상 머무르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The Apurva Kempinski Bali)’는 여행자의 익숙한 계산법을 뒤흔드는 곳이다. 오직 휴식만을 위한 누사 두아(Nusa Dua) 해안에 자리한 이곳은 젊은 여행자와 아티스트가 모여든 우붓(Ubud)이나 고급스러운 부티크들이 늘어선 스미냑(Seminyak)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랑한다. 마치 마을의 성처럼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대중교통이 전무한 발리에서, 발리의 관문인 응우라 라이(Ngurah Rai) 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가 근사한 진짜 이유는 475개 객실을 보유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결코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19세기 독일에서 시작한 럭셔리 호텔 체인 켐핀스키 특유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독자성을 향한 존중이 뒤섞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발리인들이 신성시하는 브사키 사원을 재현한 호텔 전경.
시장과 사원, 식당, 크고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기둥과 지붕, 인도네시아 자바 왕국 최후의 유산인 거대한 바틱(Batik) 장식품의 위용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짜로 놀라게 되는 순간은 로비 중앙으로 나아가 발밑으로 펼쳐진 리조트 전경을 확인하게 될 때일 것이다. 로비가 자리한 9층부터 250개의 중앙 계단을 따라 양쪽으로 리조트 객실이 층층이 자리하고, 레스토랑과 수영장, 결혼식장, 산책로가 해변까지 스커트처럼 펼쳐진 모양새라면 이해가 될까? 이 치맛자락의 맨 끝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인도양과 마주할 수 있는 인피니티 풀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과감한 시도가 큰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이유는 발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브사키 사원(Pura Besakih)’을 그대로 재현한 디자인이기 때문. 위대한 계단으로 알려진 250개의 계단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수백 명의 인도네시아 장인들이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만들고 있죠. 바틱 문양의 엘리베이터 내부 벽을 비롯해 로비 소파의 쿠션, 연회장의 카펫, 바나나 잎으로 만든 벽지 등 모든 게 발리다워요. 우리는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우주가 연결돼 있다고 믿습니다.” 발리에서 태어나 자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 왜 이 공간이 완성되는 데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지, 완전한 오픈을 위해 아직도 반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 납득하게 된다(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는 내년 2월 그랜드 오프닝을 앞두고 있다).
객실에 마련된 크고 작은 개인 수영장에서 휴식을 만끽할 것.
이처럼 인도네시아의 전통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호텔 곳곳에 배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식 경험을 책임지는 ‘팔라 레스토랑(Pala Restaurant)’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코너 중 하나는 형형색색 인도네시아 전통 디저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디저트 섹션이다. 식사 중이거나,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틈틈이 마셔볼 것을 권유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료 ‘자무(Jamu)’는 또 어떻고!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채소인 자무를 강황, 생강, 쌀, 라임즙 등 레서피별로 조합한 총 네 가지 종류의 자무는 호텔 로비 층에 자리한 발코니에서 본격적으로 맛볼 수 있는데, 상쾌한 맛과 효능에 머무는 내내 푹 빠져버렸다. 머무는 동안 자꾸 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한 취향의 기념품 숍은 발리의 지역사회에 수익이 돌아가는 수공예 제품을 비롯해 장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제품으로 가득하고, 원한다면 발리 전통 의상을 빌려 입고 호텔 근처에 자리한 사원을 방문할 수도 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머무는 내내 인도네시아 음식만 맛보는 건 걱정스럽다고? 그럴 필요 없다. 해변을 바라보며 캐주얼한 유러피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리프 비치 클럽(Reef Beach Club), 사케 페어링과 모던 일식을 맛볼 수 있는 오쿠(Oku)에 이어 거대한 아쿠아리움 속에서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버스트로노미, 코럴(Koral)도 오픈을 앞두고 있으니까. 온종일 룸서비스가 대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채로운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발리를 찾고 싶은 가장 큰 이유를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이곳에서 누린 완전한 휴식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때 휴식은 호텔의 자랑인 아푸르바 스파(Apurva Spa)에서 맛볼 수 있는 두 시간짜리 자바식 스파나 스위트 객실 투숙객을 위한 제트 스파 풀 같은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활짝 핀 꽃나무와 새소리가 맞이하는 아침, 해변은 물론 메인 풀과 인피니티 풀을 따라 여유 있게 늘어선 선 베드, 이동을 위한 복도 공간에서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된 널찍한 테이블과 소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끽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공기와 세심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본 객실도 널찍한 공간과 발코니를 품고 있지만 아푸르바식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면, 개인 수영장이 보장된 주니어 스위트 이상의 객실을 고르길 적극 추천한다. 대양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도, 주변이 고요에 잠기는 밤에도 언제든지 물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 인도양과 이어지는 근사한 전경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할 것이므로.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해 뜨는 순간부터 별이 반짝일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고 파도 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곳의 작은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결국 이 땅에는 정말 작고 부지런한 신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미치게 된다. ‘신들의 섬 발리’라는 문구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호텔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미리 신청한 요가 클래스를 위해 아침 일찍 해변으로 나갔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을 즈음, 그동안 한 번도 내린 적 없던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시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누구도 그만 멈추자거나 자리를 옮기자 하지 않았고, 변덕스러운 빗줄기가 멈출 즈음 우리는 난생처음 만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발리의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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