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에서 어디를 가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평화로운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메인 디시 전 적당량의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메제’는 여행의 특별함을 더해준다.
이스탄불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훨씬 ‘힙’한 장소가 많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은 ‘니산타시(NiŞantaŞı )’.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베이먼(Beymen)이라는 유명 편집 숍 앞에 도착한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즐비한 명품 숍과 우아한 유럽식 카페들, 그곳에 자리한 이들이 풍기는, 말 그대로 청담동과 닮아 있었다! 실제로 이스탄불의 패션 피플이 종종 찾는 곳으로 알려진 이 동네는 나이키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이스탄불 로컬 스트리트 브랜드 ‘레 벤자민(Les Benjamins)’ 매장을 비롯해 둘러볼 만한 숍들이 즐비하다. ‘카라쾨이(karaköy)’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길. 젊고 활기차며 러프한 분위기의 카라쾨이는 성수동의 에너지를 닮았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선착장을 끼고 있는 카라쾨이는 10여 년 전만 해도 우범지대였다고. 지금은 오래된 건물들을 개조한 예쁜 카페와 편집 숍, 맛집이 즐비한 동네로 탈바꿈해 이스탄불의 젊은 층이 저녁을 즐기기 위해 자주 찾는 동네가 됐다. 내 지갑을 활짝 열게 한 곳도 이곳. 신기하게도 들르는 편집 숍마다 갖고 싶은 디자인, 훌륭한 퀄리티, 합리적인 가격대의 주얼리가 눈에 띄었다. ‘실크 로드’의 주인공인 터키는 여전히 귀금속 강국이다. 정부에서 주얼리 원재료를 직접 관리하는 데다가, 몇 년 전부터 주거래 이후 남은 원석 조각이나 저품질 원석들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판매해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소식! 이미 반지 세 개를 구입한 뒤 카라쾨이를 떠나기 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들른 인기 주얼리 브랜드 ‘마눅(Manuk’s Workshop)’ 아틀리에에서도 결국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끌려 신용카드를 꺼내고 말았다. 세련된 미식을 즐기고 싶다면 향해야 할 곳은 단연 ‘베벡(Bebek)’이다. 해안을 따라 자리 잡은 이 지역엔 그야말로 고급스러운 맛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어딘지 해운대 달맞이고개가 떠올랐다. 터키식 해산물 요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베벡 발리키(Bebek Balıkçı )’. 프랑스 요리 위주의 ‘베이란(Baylan)’. 잘 차려입은 청춘들로 가득한 캐주얼 바 ‘루카(Lucca)’ 등 유명 스폿이 많고, 전 세계적으로 커피 맛이 유독 훌륭한 지점으로 꼽히는 스타벅스 베벡점(!)도 늦은 오후부터 밤 시간까지 보내기에 제격이다.

옛 궁전을 개조한 사라간 팰리스 켐핀스키 호텔은 특히 아름다운 공간으로 유명하다.

지중해, 에게해 그리고 흑해와 접해 있는 터키는 해산물의 성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재료인 홍합.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2> 첫 번째 회차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이스탄불은 그야말로 먹거리 천국이다. 프랑스, 중국과 함께 3대 미식 국가로 꼽히는 곳이니 당연하겠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슬람 국가인 만큼 돼지고기를 금하지만, 이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만큼 다양한 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만든 음식이 가득하다. 백종원조차 언급하지 않은 요리 중 꼭 이야기하고 싶은 건 터키식 전채요리라는 ‘메제(Meze)’ 문화다. 레스토랑에 따라 진열된 20여 가지의 메제를 보고 원하는 것을 골라 주문하면 바로 가져다주기도 하며, 트롤리에 여러 종류의 메제를 싣고 자리로 와 고르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야채와 요거트, 해산물이 주를 이루는 각양각색의 요리를 골라 먹는 재미란! 병아리콩과 요거트를 다양하게 활용한 음식은 모로코 음식과 닮은 듯 다른 맛이고, 매콤한 향신료를 더한 해산물은 한식에 익숙한 이들이 여행에서 흔히 경험하게 되는 느끼한 피로감을 덜어내주며, 더없이 신선한 야채로 만든 살라타(터키식 샐러드)는 매끼 먹어도 반갑고 산뜻한 풍미를 자랑한다. 첫날 방문했던 카라쾨이의 ‘뮈켈레프 카라쾨이(Mükellef Karaköy)’에선 멋모르고 메제를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쾨프테(터키식 고기 완자로 떡갈비 같은 식감을 지녔다)와 케밥으로 이어진 메인 요리를 양껏 못 먹어 속상했다. 신기할 정도로 낯선 사실 하나. 터키인들은 ‘디저트’를 중시한다!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불리는 로쿰과 터키식 파이인 바클라바 그리고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디저트를 제외하고도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터키 와인이 70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토속 품종 자체에 집중한 와인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내추럴 와인 붐과 맞물려 점점 몸집이 커져가고 있다니 꼭 터키 와인을 경험해 볼 것.
힐링의 정점으로, 하맘
낯선 곳에서 짜놓은 동선을 따라 부지런히 다니다 보면 행복과 별개로 어깨와 다리에는 피로가 쌓이기 마련. 마사지와 스파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스탄불에서 피로를 완벽하게 해소해 줄 ‘하맘’을 반드시 체험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찜질방이랑 뭐가 그렇게 다르겠냐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터키식 목욕’인 하맘은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문화에서 비롯됐으며, 오스만 제국 시절엔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여자들이 유일하게 갈 수 있었던 공공장소가 바로 ‘하맘’이라 사교의 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웃지 못할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일단 방식은 이렇다. 입장하면 1회용 속옷을 주는데, 이를 착용하고 사우나 혹은 탕에 들어가 땀을 빼게 된다. 그 다음 ‘괴벡타시’라는 팔각형의 커다랗고 따뜻한 대리석 위에 몸을 누이게 되는데,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직원이 고전적인 주전자로 몸에 물을 부으며 때를 밀어주는데,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질감이 실크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때를 미는 강도는 한국에 비해 가벼운 편. 그 다음이 하이라이트로, 천을 활용해 굉장히 쫀쫀한 질감의 비누 거품을 몸에 이불처럼 덮어주는데, 폭신하고 향긋한 거품이 몸을 감싸 안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소중하게 돌봐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과정을 세심하게 몇 번 반복한 뒤 대리석에 누운 채로 머리를 감겨주며, 마지막 세수까지 끝나면 종료. 더욱 맑아진 마음과 몸으로 공항으로 향하며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