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큰 보폭으로 성큼 달려온 것 같다. 이렇게 갑작스레 코끝 시린 공기를 맞이할 때면 나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아내며 지난여름을 한껏 그리워한다. 여러 번 외치는 말이지만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여름이 주는 에너지, 여름이 주는 소리, 여름이 주는 광기까지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크리스마스, 첫눈, 뱅쇼. 겨울이 주는 낭만도 물론 좋지만 여름. 록. 페스티벌. 이라는 단어에 비견할 수조차 없다.
과거 지향적인 성향을 다분히 안고 살아가는 나는 여름이 여름일 때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여름이 추운 계절 속 얼어 있는 하나의 기억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에 다소 센티멘털 해지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찍은 지 몇달 지나지 않은 사진들을 보며 휴대폰 액정을 쓰다듬는 퍼포먼스를 했다. 올해 부암동의 여름은 액정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더라. 우린 한껏 젊었더라.
2019년 6월. 우리는 부암동에서 우리만의 벼룩시장을 열자는 의견을 모았다. 장소는 친구네 햄버거 가게 주차장. 마침 친구도 부암동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고 있던 터라 쉬이 장소를 내주었다. 이 벼룩시장의 첫걸음을 시작으로 부암동의 포토벨로 마켓을 만들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꿈을 지지해 주기 위해 그의 사진으로 동네에 붙일 전단지도 만들었다.
일요일의 부암동은 고즈넉했다. 갓 봄에서 벗어난 햇살을 맞으며 부암동 한가운데 앉아있으니 평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신용 전기 앞에서 졸고 있는 불도그 꿈이, 집사와 함께 산책 나온 고양이, 부암동 빙수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준비해온 스피커에 흐르는 음악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소소한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나와 M은 음악이 있는 곳에 춤이 있어야 마땅하다 믿는 이들이기에 옷가지 사이에서 춤도 추었다. 그 여름 춤을 추는 M은 참 예뻤다.
장사는 그다지 잘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건너편 가게를 보며 저렇게 장사가 잘되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해하면서도 사실 괘념치 않았다. 그곳, 그 시간, 그 여름의 우리가 좋았다.
포토벨로 마켓을 만들겠다는 햄버거 가게 친구의 꿈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에게는 그 날 부암동에서 펼쳐진 돗자리 틈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영원히 남아 있다. 여름이란 그렇다. 항상 잊히지 않는 장면을 한 아름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고맙다.
여름이 몹시, 못 견디게 그립고 그립다.
'김소이의 부임일기'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김소이의 부암일기' #4 시인의 언덕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