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불편한 바지를 입고 이 글을 쓴다. 6일 전에 새로 구매한 리바이스 501®. 그렇다. 나는 이 칼럼을 쓰기 위해 때로는 물건을 새로 사기도 한다! 엘르 편집부에서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아줘야 할 텐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리바이스 501®이라면 화이트 데님을 하나 갖고 있었는데 몇 년째 깊숙한 서랍 속에 넣어 두고 꺼내지 않던 참이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게 딱 내 사이즈를 샀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 바지. 입었을 때의 실루엣은 꽤 마음에 들었지만, 왠지 불편했다. 몸에 꼭 맞게 감기는 느낌이 아니었다. 맑은 날엔 풀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한 두꺼운 이불 같고, 습한 날엔 해풍에 말려 꼬들꼬들해진 과메기 같다고나 할까.
이번에 새로 산 바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불편한 바지로 말할 것 같으면 리바이스 501®레귤러 스트레이트 핏의 생지 데님이다. 이것 역시 딱딱하다. 이것의 허리 부분이 나의 배꼽을 짓누르고 있다. 무릎 뒤편, 주름 잡힌 부분이 오금을 짓누르고 있다. TV 홈쇼핑 채널에서는 쇼 호스트가 청바지를 입고 쪼그려 앉기와 런지, 스쿼트 자세를 번갈아 취하며 “어머나 어머나, 이렇게 잘 늘어나요. 너무 편해요. 꼭 안 입은 것 같아!”라고 높은음으로 외치고 있는데. 이 바지는 도대체 뭔가. 나는 이것을 당장 벗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짓누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1873년, 리바이스 청바지의 ‘포켓 오프닝 고정’에 관한 특허 도면.

1880년대 리바이 스트라우스 & CO의 광고 브로셔.

1974년 버전의 리바이스 501(R) 라벨.
1873년 5월 20일은 인류 최초의 블루진이 탄생한 날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리벳으로 고정하는 블루진에 관한 특허를 출원한 날. 그는 재단사였던 제이콥 데이비스와 함께 쉽게 닳지 않는 작업복을 만들기로 했고, 리벳으로 트루 블루 데님을 튼튼하게 고정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그 시절 그들이 만든 ‘XX’라는 이름의 블루진은 1890년, 501®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501® 데님을 구성하는 요소 중 대부분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해 왔다. 100% 코튼, 논-스트레치, 오렌지 컬러의스티치, 지퍼가 아닌 단추로 잠그는 형태의 버튼 플라이, 다섯 개의 주머니(그중 가장 작은 것은 회중시계를 넣는 용도였으나 훗날 코인 포켓이라 불린다), 두 마리 말이 그려진 로고가 담긴 가죽 패치(두 마리의 말이 그려진 로고는 1886년 ‘XX’ 진의 가죽 패치에 처음 사용된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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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벌의 청바지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뒷주머니에 달린 레드 탭에 적힌 ‘Levi’s’라는 글자 중 ‘e’는 1971년까지 대문자 ‘E’로 쓰였었다(만약 대문자 ‘E’가 적힌 리바이스 데님을 갖고 있다면 당장 이베이에 접속하라!)는 것과 같은. 지금과 같은 벨트 고리가 달린 청바지는 1922년이 되어서야 처음 선보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 전까지 남자들은 서스펜더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벨트 고리가 달린 초기 블루진은 서스펜더 버튼도 함께 장착되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 입을 수 있었다. 리바이스가 여성들을 위한 청바지를 판매하기 시작한 건 1934년의 일이다. 그 전까지 여성들은 말 그대로 ‘보이프렌드’의 데님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을 위한 데님으로 처음 매력을 어필한 스타는 마릴린 먼로였다. 그녀는 1961년, 리바이스 데님을 입고 영화 <기인들(이라는 기이한 제목으로 번역된) The Misfits>에 출연해 그야말로 데님 붐을 일으켰다. 501®은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위험한 질주>의 말론 블란도, <백 투 더 퓨처>의 마이클 J. 폭스,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마이클 패스벤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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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기인들(The Misfits)>의 마릴린 먼로. 여성들에게 데님 열풍을 일으킨 작품.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질렌할이 입은 데님은 랭글러의 제품이었다).
2015년, <스티브 잡스>의 마이클 패스밴더. 잡스는 블랙 터틀넥 스웨터와 뉴발란스 992 그리고 리바이스 501을 즐겨 입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바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안쪽에 달린 라벨에 ‘Levi’s® Water


이 글을 쓰며 리바이스의 공식 홈페이지를 드나들다가 흥미로운 문장을 발견했다. ‘Started by us, Finished by you’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완성하는 건 소비자라는 뜻일 텐데, 이 문장을 곱씹다가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전에 샀던 501® 화이트 데님이 한결같이 불편했던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흰색이라는 이유로 한두 번 입고 세탁기로 직행했기 때문이었다. 늘어날 만하면 다시 수축하는 바람에 데님이 내 몸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데님은 본디 툴툴 털고 볕에 말려 입는 것. 깔끔떨고 부지런을 떨며 나는 감히 청바지의 조상님과도 같은 501®에게 ‘501®은 무조건 불편하다.’라는 오명을 씌우고 말았던 것이다.
리바이스가 사용한 문장 중 소개하고 싶은 또 하나. “Never worn the same” 똑같이 낡아가는 청바지는 단 한 벌도 없다는 것. 생각해보면 내 몸의 모양대로 그 형태를 바꾸어가는 소재는 가죽과 데님뿐이다. 시간을 따라 자신의 몸과 스타일에 맞게 말랑해지고 불룩해지고 색이 바래고 어떤 부분은 닳기도 한다. 데님은 자신의 주인이 옷을 입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들이 머문 장소를 말해주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 즉 어떤 식으로 걷고 뛰고 앉는지 자신의 몸에 새긴다. 워싱 되지 않은 생지 데님은 더더욱 그렇다.
나의 새로운 바지는 여전히 내 배꼽과 오금을 공격하고 있지만, 어쩌면 오래 만나며 투덕거리다가 서로 닮아버린 친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 몸에 꼭 맞게 말랑말랑해진 바지를 나중에는 기워가며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을 두고 물건을 아끼고 달래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패션을 대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 이제 첫 문장을 고쳐 써야겠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바지를 입고 이 글을 쓴다.♡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