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비행기, 출발합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뉴욕행 비행기, 출발합니다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루이 비통 2020 크루즈 쇼가 열렸다.

ELLE BY ELLE 2019.11.07
 

상상력이 넘쳐나는 세계

알랭 드 보통은 이 장소를 일컬어 ‘만약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말끔하게 포착한 단 한 장소에 화성인을 데려가야 한다면, 당연히 가야 할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것’이라고 썼다.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이곳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또는 ‘현대문학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라고도 했다. 그가 가리키는 장소는 어딜까. 그곳은 기다리는 곳, 떠나가는 곳, 만나고 헤어지는 곳, 잠시 스쳐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이유로 부득이하게 머물기도 하는 곳,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아슬아슬한 곳, 다른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곳,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중간지대, 성별과 나이와 종교와 인종이 한데 뒤섞이는 곳,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곳, 바로 공항 터미널이다.
 

다시 살아난 세계

루이 비통이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TWA(트랜스 월드 에어라인) 터미널에서 2020 크루즈 컬렉션을 공개한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오션스 8> 등에서 보았던 공항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를 추억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비틀스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1965년, 말 그대로 유럽을 ‘평정’하고 미국 땅을 밟은 비틀스를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던 터미널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힘차게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를 형상화한 듯한 TWA 터미널은 핀란드계 미국인 건축가이자 산업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설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1962년에 완공된 이 건축물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창의적인 공항 터미널로 평가받았다. 1994년, 뉴욕 시 지정 랜드마크로 선정됐고 2005년에는 국가 사적지 및 뉴욕 사적지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트랜스 월드 에어라인이 최종 파산 신청을 하며 아메리칸 에어라인에 인수된 뒤, 오랜 시간 동안 이 터미널은 잠들어 있었다. 2015년, 호텔 전문 기업 MCR와 모스 개발이 이곳을 호텔로 단장하기 위해 장기간 임차할 때까지 말이다.
1962년 5월에 완공됐다가 2001년부터 텅 빈 공간으로 방치된 TWA 터미널은 2019년 5월, 18년 만에 다시 게스트를 맞았다. 이번에는 탑승객이 아니라 투숙객이었다. 높은 천장과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던 터미널의 주 출입구는 호텔 로비가 됐고, 건물 중앙에는 레스토랑과 바, 리테일 숍이 들어섰다. 새의 날개처럼 보이는 양쪽 넓은 공간에는 JFK 활주로와 TWA 비행 센터의 전망을 갖춘 512개의 게스트 룸이 자리 잡았고, 객실에는 에로 사리넨의 오리지널 디자인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그리고 탑승객들이 항공기에 탑승하기 전 대기하던 그 자리, 새빨간 카펫이 깔려 있는 터미널 출발장에서 이제 사람들은 시저 샐러드와 파니니를 먹고 블러드 메리와 마티니를 마시게 됐다. 2016 S/S 컬렉션을 위해 샤넬은 그랑 팔레를 공항 터미널로 탈바꿈시킨 적 있고,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리나테 공항 활주로에서 2019 S/S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건축가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한 호텔에서, 아니 호텔로 막 변신하려는 공항 터미널에서 열린 패션쇼는 이번이 처음이다. 루이 비통이 여행으로부터 시작된 메종이자,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며 끊임없이 여행 정신을 이야기하는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항 터미널에서 쇼가 열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TWA 호텔이 문을 연 5월 15일보다 1주일 앞선 5월 8일(뉴욕 시간), 한때 공항 터미널이었다가 호텔로 변신할 준비를 마친 공간이 단 하루 동안 런웨이로 꾸며졌다. 알로카시아와 고무나무, 여인초, 극락조화, 야자수 등 각종 식물(이 모든 식물은 쇼가 끝난 뒤 기증되거나 퇴비로 사용됐다)로 가득 장식된, 전에 없던 런웨이였다.
 
(차례대로)
1 하이웨이스트 데님 팬츠와 어깨를 강조한 블루종을 입고 참석한 레아 세이두. 신비롭고 그윽한 눈빛이 매력적이다.
2 줄리안 무어는 강렬한 격자 패턴의 재킷과 현란한 메탈 스커트, 어깨에 퍼 스톨을 무심하게 걸치고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10월 31일 오픈하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2020 크루즈 컬렉션 크라이슬러 백.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한국에서는 10월 31일 오픈하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2020 크루즈 컬렉션 크라이슬러 백.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가운데의 세계

미래주의적인 하얀 공간을 휘감고 있는 초록색 식물들. 도시적인 것과 목가적인 것이 묘한 충돌을 일으키는 가운데 모델의 워킹이 시작됐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20여 년 전의 뉴욕 여행을 떠올렸다고 한다. 황금기의 뉴욕, 그 시절에 보았던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과 화려한 조명, 24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는 도시의 에너지. 그것이 이번 컬렉션에 영감을 주었다. 1991년, 이 터미널에 착륙하던 날을 잊을 수 없던 이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는 꽤 직접적인 방식으로 뉴욕이라는 도시를 향한 헌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이 그려진 재킷, 반짝이는 건물 외벽 같은 느낌을 주는 골드와 실버 컬러 엠브로이더리 장식, 빌딩 지붕과 첨탑 모양을 레플리카로 만든 크라이슬러 백(10월 31일 공식 오픈하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익스클루시브 아이템) 등이 그것이다. 이 거대한 도시를 둘러싼 판타지 역시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내게 뉴욕은 고담 시티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는 그의 말을 생각해 보면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헬멧과 선글라스, 날개처럼 보이는 케이프, 배트윙 소매, 가운 등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 1960년대 스튜어디스 같은 미니드레스와 액세서리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버블 스커트와 파워플한 숄더 패드는 80년대를 연상시키고, 투박한 군화와 보드 쇼츠는 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날렵하게 재단된 핀 스트라이프(월 스트리트를 연상시키는!) 수트 셋업과 크리스털로 장식된 뷔스티에가 한 무대에 등장하고, 포마드를 발라 쫙 넘긴 슬릭 백 헤어에 데이빗 보위 같은 메이크업까지. 젠더를 초월하고 시대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터미널이 가득 채워졌다. 94m의 날개가 달린 미래적인 터미널에 레트로적 터치를 가미한 공간처럼 이번 컬렉션은 여러 세계를 마구 오갔다. 위층의 다리와 계단, 아래층의 라운지를 오가며 걷는 모델들은 마치 극단적인 세계의 중간 어디쯤, 가운데의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미래의 세계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은 것은 미래적인 모니터 캔버스 백이다. 총 59개의 룩 중 두 번째와 여덟 번째 룩에 등장했는데, 하나는 단일 스크린을, 하나는 듀얼 스크린을 적용했다. 1920×1440 해상도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이 플렉시블 스크린에는 도시의 광경 등 다양한 영상이 재생됐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반영된 백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그것이 구현된 바탕(캔버스)이 루이 비통의 역사를 말해 주는 모노그램 캔버스라는 점이 우리를 더 놀라게 한다. 하우스의 유산과 최첨단 기술이 어떤 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이 ‘미래의 캔버스’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가방이 아니라 하우스의 비전을 담은 묵직한 메시지로 읽힌다. 서울과 런던,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시리즈 Series> 전시, 한 비디오 게임의 여전사 캐릭터를 모델로 기용한 일 그리고 최근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로 잘 알려진 미국의 e스포츠 회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트로피 케이스를 제작하고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디자인한 챔피언 스킨도 공개할 예정)까지,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단어, 바로 ‘혁신’일 것이다.
 
(차례대로)
1 청록색 실크 터틀넥과 화이트 팬츠, 커다란 버클의 레더 벨트로 모던하게 스타일링한 엠마 스톤.
2 여전히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뮤즈로 매 시즌 쇼에 참석하는 배두나. 뱅 헤어의 단발머리가 아닌,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로 변신한 새로운 배두나의 모습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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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방호광
    글 김자혜
    우창원/COURTESY OF LOUIS VUITTON/IMAXtree.com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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