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뽑은 Z세대의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 빌리 아일리시,차트 상위권,맨체스터 공연,공연 시간,인터뷰

코트는 Louis Vuitton. LA 북동쪽 하이랜드 파크에 자리한 빌리 아일리시의 집은 위대한 아일리시 제국의 ‘본사’쯤 된다. 팝 음악계를 넘어 지금 가장 아이코닉한 인물인 그녀는 ‘베프’이자 음악적 동료인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과 함께 유년시절부터 이곳에서 음악을 만들어왔다. 두 사람이 만든 스튜디오 데뷔 앨범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는 올해 3월 발매되자마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지난 7월 발표한 ‘Bad Guy’ 영상은 공개된 지 2주도 되지 않아 MTV 비디오뮤직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 지금은 유튜브 조회수 6억 뷰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가장 어린 여성 뮤지션이자 무려 14곡을 차트에 진입시킨 유일한 팝 스타. 2001년생의 빌리 아일리시에게 ‘라이징’ 같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테일러 스위프트와는 확연히 다른, 여동생 같은 느낌의 슈퍼스타라고 할까? 물론 평범하다고 하기에 개성이 조금 많이 넘치긴 하지만 말이다! 빌리 아일리시는 코첼라와 글래스베리, 3회 모두 매진을 기록한 LA 공연까지 포함한 투어를 마치고 몇 달 만에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자선단체 ‘메이크 어 위시(Make-A-Wish)’ 재단을 통해 백혈병에 걸린 소녀와 페이스 타임을 하던 아일리시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점프하다시피 펄쩍 뛰며 인사를 건넸다. 투어 중에 생긴 발목 부상의 흔적 따위는 찾을 수 없는 환영 인사였다. LA에서 가장 큰 공연장을 빌렸던 날, 발목을 완전 접질렀지만 그는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연 당일 쇼를 취소한다는 게 말이나 돼요? 차라리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나아요!” 지난 2월 유럽 투어 때는 양쪽 종아리에 얇은 부목을 대기도 했다. “엄살을 피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참을 수 없이 아플 때도 있어요. 맨체스터 공연 때가 그랬죠. 하지만 놀랍게도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차츰 고통이 사라졌어요. 마치 헐크가 된 것처럼 말이에요.” 아일리시의 노래는 10대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없는 남자애가 게이었으면 좋겠다거나, 캘리포니아 산불에 대해 혹은 자기 회피, 상처뿐인 사랑에 대해 노래할 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우정에 관한 곡을 쓰기도 했다. “제가 10대가 아니라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어요. 어른보다 애들이 더 많은 걸 아는 것 같거든요.” 얼마 전 <엘렌 쇼>에 출연해 ‘투렛 증후군(무의식중에 몸을 움직이거나 욕설 비슷한 소리를 내는 신경 장애 증상)’에 대해 용기 있게 털어놓기도 한 아일리시는 최근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  “마침내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게 됐어요. 2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못했죠. 그런데 이제는 지금 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유명세를 겪는 게 힘들었지만 그것조차 사랑해요. 물론 비행기 좌석에서 잠들기 직전 누군가가 얼굴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자고 할 때는 정말 너무하다 싶지만요.”    반지는 Tiffany & Co. 스니커즈는 Prada. 재킷과 셔츠는 모두 Raf Simons. 시계는 Rolex. 아일리시는 트위터 앱을 삭제한 게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은 코멘트를 무시하는 게 쉬운데 트위터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든 댓글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저는 자신을 사랑해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지워버렸죠!” 10대에게 가족간의 유대와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해야 한다면, 빌리 아일리시의 가족은 상위 10%에 거뜬히 들 것이다. “제가 좋아할 수 있고, 저를 좋아해 주는 가족을 가졌다는 건 행운이에요. 제가 지금 음악을 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만약 부모님이 여기 기타랑 마이크가 있으니 노래도 만들고 작곡도 해보라고 했다면 전 ‘잘 있어! 난 가서 마약이나 할게’라고 떠나버렸을지도 몰라요.” 딸의 대답을 들은 엄마 매기의 웃음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온다. 아일리시는 지난 6월 내슈빌 공연 전에 있었던 ‘가슴 논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소 고수하던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반바지가 아닌 탱크톱 차림으로 팬과 찍은 사진이 퍼져나간 사건이다. CNN조차 미성년자인 아일리시의 가슴에 대한 뉴스를 다뤘다. “제 가슴 사진이 검색어를 휩쓸었죠. 애초에 큰 가슴 DNA를 타고났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이 제 가슴을 보고 불편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오버핏 셔츠를 입는 게 아니에요. 얼마 전에는 ‘남사친’과 페이스 타임을 하는데 탱크톱을 입은 저를 보고 뭐라도 걸치라 하더군요. 아니, 가슴이 작은 사람이 탱크톱을 입는 건 괜찮은데 제가 입으면 옷 취급도 못 받는 거예요? 너무 바보 같아요.”  두 달 후면 아일리시는 19세가 된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는 그는 열두 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오빠 피니어스는 그녀가 부른 노래를 사운드 클라우드에 업로드했다. ”저는 그냥 오빠랑 노래 만들고, 하고픈 음악을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모든 것에 반항하는 아티스트가 돼버린 느낌이에요. 요즘 노래들이 별로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그러나 길고 날카로운 네온 그린 색 손톱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아일리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왜 사람들이 그를 ‘다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