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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장소, 사물, 시간 앞에 ‘그’가 붙으면 특별해진다.
며칠 전,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몇 가지 경험을 나누는 대담의 자리를 가졌는데 ‘그’곳은 전북 고창, 고창읍성이었다.
주민들은 모양성이라고 부른다. (백제 시대에 고창 지역이 모량부리라 불렸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모양성이라는 이름이 귀엽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옮겨 쌓아 만든 고창읍성.
(정확하지 않지만 1453년, 조선 단종 원년에 축조되었다 전해진다. 성벽에는 계유년에 호남의 여러 고을 사람이 축성했다고 새겨져 있다고)
대담의 기회를 제안받고 사전답사차 고창을 찾았을 때, 주차를 하고 걷다가 눈 앞에 펼쳐진 성의 전경이 너무나 강렬했다.


자연 모습의 돌 하나하나가 쌓여 너울지는 능선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 찾았을 때도, 며칠 전에도 성안과 성곽 능선을 걸었다. 입장료 3000원을 내면 고창 사랑 상품권을 (1000원. 고창군 상가나 전통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몇장 건네주시니 입장료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한 바퀴 삥 도는 데 40분이 걸린다. 안전 펜스가 없어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성안은 숲과 황톳길, 고즈넉한 산책로로 이뤄져 있다.
드문드문 산책하는 사람들, 곧고 푸르게 자란 대나무숲에 황톳길 위로 우아하게 자란 소나무들, 가을 녘에 물들어 가는 낙엽과 작은 들꽃, 주변을 두르는 산과 산, 낮고 오래되거나 높고 얼마 안 된 건물들…
‘어디까지 높아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나와 멀어질 수 있을까?’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몰랐을 수밖에 없지…’라는 말로 여태껏 발 한 번 딛지 않았던 곳에 마음을 비빈다.

상하농원, 책마을 해리 등, 고창에는 좋은 ‘그’곳들이 많다고 했다.
‘딱, 이것만 취해야지’
‘나는 이것을 좋아하니까…’
라는 굳어진 취향이나 성향이 때때로 확장될 수 있고 깊어질 기회들과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사람이나 장소, 사물, 시간 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그것들이 ‘그’것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낯선 ‘무엇’들 앞에 움츠러들지 말고,
가보고 맛보고 들어보고 만져보고 맡아보고 만나보겠다 맘먹는다. 그래서 요즘엔 외식하면 가보지 않았던 식당과 메뉴에 도전한다.
좀 더 추워지면 몸까지도 더 움츠러들 테니,
그전에 좀 더 움직여 새로움을 맞닥뜨릴 기회를 맞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