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김소이의 부암일기' #4 시인의 언덕

간혹 슬플 때마다 동네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오르곤 했다.

BYELLE2019.10.24
세상에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간 슬픔에 대해 수많은 글과 노래를 쓰고 불러왔지만 어떠한 말로도 형용이 되지 않는 이 감정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말로 내뱉는 순간 그 슬픔은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쳐와 망망대해로 휩쓸어 갈 것 같은 공포를 느꼈습니다. 내가 가진 어떠한 무기로도 이길 수 없는 전쟁 같았습니다.  
 
간혹 슬플 때마다 동네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오르곤 했습니다.  
종로구 누상동에서 자취했다는 윤동주 시인은 무엇을 생각하며 이곳까지 한참을 걸었을까.
어떤 시상을 떠올리며 이렇게 긴 산책을 매일 했을까.  
이 언덕에 올라 저 달을 보며 나라를 잃은 깊은 슬픔에 목이 멨을까.
목이 메어 어떠한 말도 차마 꺼내지 못했을까.
그래서 시를 쓴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시. 詩.
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시라는 것은 나에게 어렵습니다. 시인이 전해주는 비밀스러운 암호 같습니다.  
그 암호를 풀면 단어 저변에 펼쳐지는 깊은 감정의 바다를 볼 수 있게 되는데 너울거리는 그 윤슬이 아름다워 경이롭습니다. 나도 언젠가 시를 쓸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도 시를 쓰셨습니다.
공직생활을 하시며 필명으로 시집을 여러 권 내신 시인이셨습니다.  
내가 열여섯 되는 해에 출판하신 시집이 있는데 사실 당시에는 읽으면서도 이게 무슨 뜻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나에 관한 시가 있다는 것에 흐뭇하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그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시를 썼던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 아버지의 깊은 바다가 드디어 보였습니다.  
목이 메어 차마 말로 뱉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시에 켜켜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빠는 이렇게 아팠구나. 아빠는 이렇게 슬펐구나. 아빠는 이렇게 견뎌 내셨구나.  
 
우리 자매에 관한 시도 다시 읽어봤습니다.  
아빠는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구나.  
 
아버지가 떠난 지 3주 되었습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듯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이 슬픔에 대해 말로 꺼내는 일은 아마 한참 후의 일이겠지요.
목 끝까지 차오르는 이 상실감을 안고 시인의 언덕에 올라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시상을 떠올릴 날이 언젠가는 올까요.  
윤동주 시인이 그랬듯
우리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언젠가 마침내 시를 쓸 수 있게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김소이의 부암일기'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김소이의 부암일기' #3 부암동 못 잃어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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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사진 김소이
  • 에디터 장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