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촬영 현장에 가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프로 레슬링에 이어 <블랙 스완>으로 고전 발레를 토막 내고 있다. 땀과 피, 눈물과 광기로 범벅이 된 야릇한 세계. 나탈리 포트만과 뱅상 카셀이 에투알 무용수로 나선다. ::블랙 스완,나탈리 포트만,뱅상 카셀,대런 아로노프스키,프로 레슬링,무용수,엘르,elle.co,kr:: | ::블랙 스완,나탈리 포트만,뱅상 카셀,대런 아로노프스키,프로 레슬링

이 지구상에서 뱅상 카셀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쪽 발은 브라질에서 서핑을 즐기는가 하면 다른 한 발은 로마에서 둘째딸의 출산을 기다리는 그는 이따금씩 파리와 런던 또는 다른 도시에 출몰한다. 올해 초, 그와 연락이 닿았을 땐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는 퍼처스에 위치한 뉴욕 주립대학의 공연예술센터 주 공연장 무대에 있었다. 검은 색 바지에 바지 색과 어울리는 회색 스웨터를 입은 그는 이제 막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젊은 사람 뺨치는 날렵한 몸매를 가진 안무가로서 에투알 무용수 나탈리 포트만을 지도하는 연기에 한창이었다. 뱅상 카셀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들 중의 한 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촬영과 더불어 2010년을 열고 있었다.아로노프스키 감독과 뱅상 카셀.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같은 도시적 감성을 지녔으며 같은 세대에 속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 두 사람은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만난 적밖에 없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회상한다. “뱅상으로 말하면, 난 그를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에서 처음 발견했다. 뉴욕에서 우리 두 사람은 미친놈들처럼 이 영화에 반해 있었지. 직접적으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의 계보를 잇는 영화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그의 젊고 강렬하면서 독특한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즉시 뱅상의 팬이 되어 그가 나오는 영화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게 되었다. 특히 가스파르 노에 감독의 작품들에서 인상적이었다. 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곧 그에게 발레단의 예술 감독 역을 맡기면 아주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뱅상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건 그가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거든. 그는 말하자면 ‘행간으로’ 이동을 한다. 발레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이동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전화 한 통화만으로 두 사람은 지난여름 런던에서 만났다. 뱅상 카셀은 말한다. “우리는 커피를 같이 마셨고, 그 자리에서 그가 나한테 그 역할을 제의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이 되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캐스팅이나 오디션이라면 질색이거든.” 다시 퍼처스로 돌아오자. 무대에서 30명가량의 뉴욕 시티 발레 단원들이 몸을 풀고 있는 동안 오케스트라 피트에서는 스물 네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음을 맞추고 있었다. 조명은 세팅이 끝났고 무대(아주 묘한 빨간 빛 조명을 받은 단순화된 나무와 암석, 석양 등이 그려진 흑백의 이동식 판넬)도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에서 우울하고 환상적인 영감을 받은, 요컨대 아로노프스키 식으로 재해석한 은 당연히 발레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작을 제멋대로 개작한 작품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고전 발레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작품? 둘 다 맞는 말이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고백대로라면 인터넷에서 떠다니는 홍보용 문구들은 사실과 다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줄거리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이라고는 고작 두 명의 여자 무용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우 특별한 경쟁심이 영화의 기본 뼈대라는 정도다. 두 명 중 한 명은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재능을 인정받던 그녀 앞에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굉장히 많은 닮은 무용수가 경쟁자로 나타난다. 흰 백조가 되었건 검은 백조가 되었건, 에투알 무용수의 적수는 혹시 그녀 자신이 아닐까? 무시무시한 백조의 호수줄거리가 확실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촬영장은 서서히 사람들로 채워지고, 짜임새를 갖추어 간다. 어느 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타아아아아, 타타타타, 타-타, 타-타, 타타타타타......' 배우들이 하나씩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감독의 모습도 보인다. 대런 감독은 찢어진 청바지와 ‘Freedom versus Science’ 라는 글자가 찍힌 회색 티셔츠 차림에 손에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나타났다. 매력적이고 여유만만해 보이는 그가 그날 찍는 장면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은 발레 장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의 하나를 찍는다. 피날레 연습 장면으로, 안무가(뱅상 카셀)는 니나(나탈리 포트만)에게 어떻게 그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 인물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런데 그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여주인공이 자살을 통해서 그 장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영화는 상당히 복잡한 영화다. 대역들도 있는 데다 흰 백조와 검은 백조가 노상 혼동되거든.” 감독이 설명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한다. 우리가 있는 곳, 그러니까 공연장의 객석에서도 혼동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기 저 검은 타이츠 입고 발끝으로 걷다가 무대 위에서 뛰어내리는 여자가 나탈리 포트만인가? 아니, 아직까지는 햇살을 향해 우아하게 뛰어가다가, 낡은 매트리스로 떨어지는 대역인 것 같은데! 모든 궁금증은 조금 후에야 밝혀진다. 솔직히 우리 모두가 진짜로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던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일게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어째서 프로 레슬링의 세계를 그린 직후에 고전 발레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기로 한 것일까?' 그의 말이다. “물론 두 세계 사이의 유사성은 명백하다. 레슬러들처럼 무용수들도 몸을 사용하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을 위해 기꺼이 몸을 상하게 한다. 무용수들도 레슬러들처럼 완벽한 몸을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 단련을 해야 하며, 무대에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합당한 옷을 입는다. 게다가 내가 을 고집한 건 바로 이 두 가지 활동이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혹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여성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전혀 아니다. 무용이 몸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무용에도 역시 피와 땀과 눈물이 넘치도록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무대 뒤는 아주 끔찍할 수도 있지. 나 자신은 무용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여동생은 꽤 잘 하는 무용수였어요. 무용은, 그러니까 나의 세계가 아니라 동생의 세계였다. 그런데 난 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용 뒤에 감춰져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발레는 분홍신과 아직 사춘기에 이르지 않은 어린 처녀들로 가득 차 있으며, 열정적이지만 항상 비극을 감추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아주 이상한 세계다.” 자신이 정말로 원한 건 아니지만 장르 영화가 되었다고 말하는 걸 보니 아로노프스키에게 이 세계는 심지어 무시무시하기도 한 모양이다.“정말로 아주 무서운 순간들도 있다. 관객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 좋겠다. 남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웃음)” 고통을 배우는 학교 미키 루크는 오랫동안 권투를 해왔었다. 이것은 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적어도 한쪽 발로 원을 그리는 발레 기본 동작 정도는 해본 경험이 있는 편이 바람직하게 작용한다. 나탈리 포트만과 뱅상 카셀의 경우 이 조건에 들어맞는다. “어렸을 때 나탈리는 고전 발레를 배웠지요. 그만 둔지 벌써 오래되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발레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 달 전부터 다시 발레를 시작했어요. 나탈리가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이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 눈에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나탈리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나탈리가 진짜 무용수의 몸을 갖진 않았지만 말이죠.” 대런의 평이다. 한편, 뱅상은 열여덟 살에 어머니가 사는 뉴욕으로 살러오면서 발레를 배웠노라고 털어놓는다. “나는 딱 한 장면에서 발레를 하는데, 그 장면은 촬영이 끝났어요. 휴우! 어색하지 않으려고 조금 연습을 했죠. 하지만 안무가 역을 맡다보니 무용수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게 일이잖아요. 그래서 DVD도 보고, 조지 발랑쉰이나 마리우스 페티파에 관한 책도 보면서 준비했죠. 운 좋게도 피터 마틴즈가 발레단을 지도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죠. 아주 흥미롭더군요. 그래서 그의 동작이며 자세 같은 걸 좀 빌렸습니다. 영화의 안무를 맡은 방자맹 밀피에가 나를 초대해서 그가 어떻게 무용수들을 이끄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한편 나탈리 포트만과 흡사한 데다 에서의 연기 덕분에 대런이 낙점한 밀라 쿠니스만 무용하고 아무런 인연이 없는 셈이다.“정말이지, 걸음마를 배운 이후로 내가 해 본 것 중에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밀라 쿠니스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니까! 6개월째 일주일에 7일, 하루 다섯 시간씩 연습했다. 이런 필사의 노력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은 상태였는데. 게다가 체중이 10 킬로그램이나 줄었는데도 여전히 엄격한 식이요법을 지켜야 한다. 세 시간마다 한 번씩 음식을 아주 조금 먹는다.” 마침 견과류 100그램 먹을 시간이라면서 밀라 쿠니스는 호두며 헤이즐넛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어깨랑 인대, 발 등, 여러 군데를 다쳤다. 그래도 무용 연습은 계속해야 했다. 어느 날인가, 어깨가 삐끗했거든. 그런데 글쎄 코치가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늘은 발 연습만 해야겠군’그러더라고. 진심으로 감독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배역 중에서 제일 강렬하다”언제 왔는지 마침 나탈리 포트만이 무대에 등장했다. 정말로 발레단에 완전히 동화된 듯한 모습이었다. 요컨대 다른 무용수들과 섞이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나탈리는 곧장 무용으로 들어갔다. 스텝과 들어올리기 등을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무대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장면 바로 앞에 들어갈 동작들이었다. 나탈리는 떨어지기 직전에 동작을 멈추었다. 스턴트 장면은 대역이 맡기 때문이었다. 뱅상 카셀은 무대 전면에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나탈리를 이끈다. 아마도 그 날 오후에 30번쯤은 뛰어내리는 장면을 지시했던 것 같다. 시종일관 위엄 있게. 시종일관 우아하게. 그러는 동안 대런은 가벼운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물색 중이다. 아직 단 한 컷도 찍지 않았다! 무용수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똑같은 동작을 하고 또 하고, 몇 십번이고 반복한 지 벌써 세 시간째. 우리는 그 장면이 카메라에서 완성되기 전에 촬영장을 떠났다. “발레라고 하는 광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스릴러, 내가 보기엔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다.” 나탈리 포트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