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의 시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원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집 앞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를 둘러싼 갖가지 단상. | 배송,배달,마켓컬리,쿠팡,오아시스 마켓

  모든 일은 어느 저녁에 시작됐다. “우리 내일 저녁에 만날까?” “그래. 어디서 볼까” “우리 집 어때?” “집에 뭐 있는데?” “글쎄. 그냥 시켜 먹자.” “뭐 시키게? 피자? 중국집?” “여기저기서 조금씩 시키지 뭐.” 그랬다. ‘급 약속’을 위한 논의가 오간 단체 채팅방에서 ‘뭐 좀 시켜 먹는다’의 행위적 의미가 바뀌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다음 날 저녁, 마법이 일어났다. 만나자는 말을 꺼낸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친구의 집 식탁에는 ‘마켓컬리’에서 주문한 에담 치즈와 살라미, ‘배달의민족’에서 보내준 제철 과일 컵 그리고 ‘오늘회’에서 주문한 해물탕 재료와 도톰하게 잘 썰린 모둠회가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으니까. 퇴근길에 회사 근처 주류 전문점에 들러 구입한 포트 와인 두 병을 직접 들고 나타난 내 손이 조금 머쓱했지만, 원래 술은 배달이 잘 안 되니까… 응 뭐라고? 이제는 앱으로 생맥주쯤은 주문할 수 있다고?   놀라움에 주변을 둘러보니 이 마법의 세계에 눈을 뜬 사람들이 속속 보였다. 배달 앱의 효용성에 대한 찬사, 사랑에 빠지던 순간에 대한 회고도 다양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는 SSG 그리고 마켓컬리를 수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다. 일찌감치 이용을 결심한 데는 허영심이 작용했음을 고백했다. 배송되는 과정에서의 세련된 서비스, 내 생활을 잘 꾸려가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 야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배달 상자에 새겨진 브랜드 로고가 마치 ‘성공한 싱글’을 위한 훈장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원래 트러플 오일과 두부를 같이 사야 할 때가 있는 법이잖아”라는 문장을 뱉는 친구의 혀 끝에서 나 또한 세련된 1인 가구의 도시적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워킹 맘인 선배가 쿠팡,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로켓배송’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이후다. 어린이집에서 수요일까지 준비물을 보내 달라고 할 때, 확실하게 다음 날 물건을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은 남편보다 듬직한 존재였다. 앞치마, 비눗방울 세트, 심지어 어린이 한복까지…. 매달 2900원을 내고 로켓와우클럽에 가입하면 최소 주문 액수에 상관없이 로켓맨은 몇 번이고 현관 앞을 찾았다. 선배는 당장 과일이 필요한데 도무지 장 보러 나갈 수 없었던 집들이 전날, 몇 번의 클릭으로 각지에서 날아온 신선한 과일이 문 앞에 놓인 것을 봤을 때의 감동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전략을 내세우는 배송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두 개의 큰 축은 결국 다음과 같다. 시간과 취향. 원하는 품목을 원하는 시간에 손에 넣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왕이면 ‘양질’의 물건까지 기대하는 이 시대에 딱 맞는 시스템인 것이다. 각종 프로모션과 최저가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을 겨냥한 쿠팡 로켓프레시나, SSG 새벽배송 등을 보면 배달 서비스 이용자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좀 더 명확해진다. 후발 주자지만 빠르게 시장에 침투 중인 오아시스 마켓의 성공도 이를 입증한다. 농수산물 생산자 조합인 우리생협과 제휴를 맺고 국내 농수산물과 동물복지인증 제품을 내세운 오아시스 마켓이 소비자에게 보장하는 것은 품질과 도덕성이다. 얼마 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오아시스 매출액 성장률은 34.2%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편의와 취향, 이왕이면 공익까지 추구하고 싶은 초기 이용자들은 다소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 앱의 매력에 빠졌다. 훨씬 대중화된 배달 음식 애플리케이션 이용자에게선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분리수거와 재활용, 쓰레기 발생에 관한 이슈가 생필품 배달 앱을 이용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식재료의 신선도와 안전한 배송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됐던 드라이아이스 팩과 ‘뽁뽁이’, 보냉 팩, 각종 스티로폼과 종이상자…. 온갖 포장물을 처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번거롭기도 했지만 초기 이용자들이 지향하는 생활방식에 어긋났고,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한 업체들의 대응 역시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다. 비닐 종류를 최소화하고 종이 아이스 팩을 사용하는 오아시스 마켓, 안쪽에 은박 스펀지가 붙어 있어 분리수거가 불가능했던 종이 상자 사용을 멈추고 아이스박스와 보냉 백을 일정량 수거해 가는 마켓컬리, 새벽배송을 시작하면서 재활용 가능한 보냉 백 ‘알비백’을 활용하기 시작한 SSG, 분리수거가 상대적으로 쉬운 종이 상자 위주로 포장하는 티몬마트 등. 정교한 물류 시스템을 활용한 배송 서비스들이 폭증하면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근로 환경에 대한 문제 의식도 솟아났다. “같은 플랫폼에서 시켜도 물건은 각기 다른 입점 업체에서 발송되는 거잖아.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로켓맨이 하루에 두세 번씩 올 때도 있어. 그들이 취급하는 ‘건당’ 수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좀 편해졌지.”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또 다른 친구의 말이다. 지역구마다 배송 담당자가 정해져 있다 보니, 혼자 사는 여성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도 한다. 배달 앱 고객센터를 통해 헤어진 여자친구의 주소를 알아내 스토킹한다거나, 혼자 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거나 ‘제 스타일이에요’라고 문자를 보낸다는 사건들이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경찰청은 지난 7월, 한국통합물류협회를 포함 총 11곳의 배달 서비스 업체에 ‘원룸 비밀번호 노출 관련 범죄예방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여러 가지 우려와 불편한 지점에도 불구하고 배달 앱과 각종 배송 서비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편리함 때문이다. 대형 마트가 집 앞에서 10분 거리라 해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다음 날 집 앞에 원하는 물건이 와 있고, 심지어 내 생활 동선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까지 대령해 주는 전지전능한 편리함! 각 서비스가 차별화를 위해 선보이는 큐레이팅 기능은 최근 어떤 요리 연구가가 인기이고, 어떤 가게의 식빵이나 디저트가 유명한지 식재료 트렌드를 보여주는 믿음직한 카탈로그 역할까지 해낸다. 그리고 배송 서비스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지금, 이용자들이 당면한 가장 큰 궁금증은 이것일 것이다. 과연 이런 서비스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쿠팡의 성장세만큼이나 항상 거론되는 누적 적자액, 지난 1월 전지현이라는 ‘끝판왕’을 모델로 내세운 마켓컬리, SSG와 제휴를 맺었으나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검색 기능 때문에 다급하게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는 카카오 장보기, 제 살 깎아 먹기에 가까워 보이는 특가 딜과 온갖 업체의 할인 쿠폰 발행…. 심지어 스타트업이나 기존 이커머스 업체뿐 아니라 현대홈쇼핑의 싱싱냉동마트와 롯데홈쇼핑의 새롯배송 등 기존의 홈쇼핑 브랜드들까지 새벽배송 서비스에 뛰어들었으니 소비자로서 ‘단맛’만 보려 해도 어쩐지 이 모든 게 과열됐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안한 뉴스는 계속 들려온다. GS프레쉬를 서비스하는 GS리테일은 새벽배송 이후 프로모션과 물류비용 증가로 적자가 분기당 70억 원으로 확대됐으며, 지난 6월 SSG 새벽배송을 시작한 이마트는 2분기 영업손실 299억 원으로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새벽배송 시장을 두드린 마켓컬리는 매각설이 떠돈다. 오래 버티는 자가 모든 영광을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치열함 속에서 과연 마지막 승자는 누가 될까? 이 거대한 의문 부호를 지우지 못한 채 일단 오늘도 주문 버튼을 누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일이면 문 앞에 도착해 있을 물건을 기대하면서. 원하는 거의 모든 물건을 집 앞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를 둘러싼 갖가지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