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voice] SBS 이은재 피디가 생각하는 '비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비혼의 아이콘이 돼버린 어느 비혼자의 외침. | 여성,결혼,비혼,결혼식,비혼식

   ━  비혼의 아이콘이 돼버린 어느 비혼자의 외침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축의금 배로 돌려줘.”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 비혼식을 올렸던 당시, 홀로 축의금을 건넨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알았다며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웃긴 말이었다.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면서 ‘나중에 이혼하게 되면 배로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문명특급> 촬영 목적으로 진행된 비혼식이었기에 축의금을 받을 의도조차 없었지만, 그렇다고 봉투를 건네는 상사의 돈도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문명특급>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비혼식은 생각한 것보다 가볍고, 장엄했다. ‘웃자고 시작했다가 비혼식까지 올린 사연’이라는 제목 그대로였다. 실제로 지인들을 불러놓고 비혼을 ‘공표’했다. ‘일생 동안 자신을 사랑하며 아낄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할 때는 엄숙하기까지 연출됐다. 한국의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을 것임을 밝히자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내 선택을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비혼식을 올리자 연락 오는 곳이 많아졌다. 인터뷰를 요청한다거나 라디오에 불러 비혼이 대체 뭔지 열심히 물었다. 왜 결혼을 안 하려는 건지, 굳이 ‘식’까지 올린 이유는 무엇인지, 심지어 비혼을 ‘결심’한 계기도 궁금해 했다. 어느새 나는 ‘비혼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단지 비혼식 한 번 올렸을 뿐인데.   애초에 비혼을 ‘결심’하는 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혼 상태를 택한 데는 ‘결심’이란 단어보다 이런 말과 더 어울린다. ‘부지불식간에’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도 퇴근하면 밥을 차려야 했고, 육아에 시달렸다. 결국 건강이 안 좋아져 일찍 퇴직했지만, 그렇다고 잃어버린 건강과 청춘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혼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 특히 여성은 ‘한국에서의 결혼’이라는 그림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접적으로 ‘체득’한 상태다. 할머니가, 어머니가, 친구가, 그 어떤 미디어나 텍스트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혼과 저출산을 두고 쏟아지는 온갖 분석은 그 다음의 문제다. 비혼은 선택의 영역이다. 결혼하는 선택지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는 선택지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선택의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하기 싫어서, 번거로운 절차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서 또는 이성애적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음으로써 기존 제도를 향한 비판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하고 싶어서 등. 한국은 아직 결혼 문화 그 자체에 익숙하다. 20~30대 젊은이의 상당수 또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정 연령대에 돌입했으나 여전히 비혼(생각해 보면 이 단어가 자리 잡은 것 또한 최근 일이다) 상태인 이들을 가리켜 ‘결혼하지 못했다’는 실패의 뉘앙스에 가깝게 표현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비혼하겠다는 조카나 동생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요?” 한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대답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다. ‘오늘 아침에 왜 고등어구이를 먹었니?’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혼이 아침 식사처럼 당연한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비혼식을 올렸다는 것만으로 인터뷰하고, 비혼에 대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반복하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일은 2019년에 마무리돼야 하지 않을까. 비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하는 태도가 ‘낡은 것’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이은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근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