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결혼에 관하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페미니스트와 거리가 먼 당신이라도 결혼 후 절로 눈뜨게 되는 일이 빈번할 거다. | 페미니즘,여자,결혼,가족

  어릴 때부터 그랬다. 프로불편러까진 아니어도 심사가 불편한 건 못 참았다. 그릇이 작아 세상의 불의까지 껴안을 깜냥은 못 됐고, 그냥 직접적인 불의 앞에선 참지 않은 정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불의의 기원은 ‘딸’이라는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았다. 대가족의 둘째로 태어났을 때 엄마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하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단다. 그 얘기를 ‘굳이’ 전해 들을 때마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냐며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소녀에겐 “역시 넌 아들이어야 했다”는 소리가 칭찬인 양 돌아오곤 했다. 집안일엔 관심도 소질도 없던 내가 주변 어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은 “시집 가면 살림도 제대로 못 배워왔다고 다 엄마 흉본다”는 ‘탈룰라’급 악담. 사실 그냥 게을러서 하기 싫었던 거지만, 그런 얘기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던 난 눈을 최대한 네모나게 뜨려 애쓰며 대꾸했다. 나보다 집안일 잘하는 사람 만나면 된다고. 요리도 빨래도 청소도 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나 못한다고 엄마 욕하는 사람이랑은 나도 안 산다고. 모두 진심이었다.   “결혼하면 일 그만둘 거죠? 나는 와이프가 집에서 내조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어머니가 여자가 기자면 드세지 않냐고 걱정하더라고요.” (더욱이 늬들 따위와는) 결혼할 마음이 1도 없었던 20대의 연애는 종종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멘트에 정신이 번쩍 들어 마무리되곤 했다. 점점 결혼에 비관적이 됐다. 그간의 세뇌 탓인지 ‘나 같은’ 여자가 결혼하긴 쉽지 않을 거라는 체념 반, 세상에 내가 원하는 그런 남자는 없다는 현실 자각 반.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의 효력을 나와 엄마, 이모들이 새삼 체감한 건 내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부터다. 4녀 1남의 막내아들인 남자와 결혼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내가 ‘모시고’ 사는 모습을 떠올리며 안쓰러워 하지만 남편은 청소나 빨래를 나보다 열심히, 심지어 더 잘한다. 요리는 주로 그가 도맡고 주말에 출근하는 내 손에 도시락을 들려 보낸 적도 있다. 전적으로 내 스케줄과 컨디션을 먼저 배려해 바리케이드를 쳐주기 때문에 시댁과는 애당초 트러블이 생길 여지조차 없다. 우리 엄마에겐 자식인 나보다 살갑게 굴어, 엄마 친구들은 나보다 남편을 더 보고 싶어 한다. 바쁜 평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주말 육아만큼은 나보다 더 적극적이다. 그가 유별난 게 아니었다. 누나 네 명의 부단한 조련과 페미니즘 조기교육, 딸들을 ‘동지’로 여기며 ‘오기’로 낳은 아들과 차별 없이 키운 시어머니의 교육방침 덕이었다.   덕분에 친구들과 후배 사이에서 남편은 유명인사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선배가 시집 젤 잘 갔어”라고 후배가 덕담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소리를 할 때마다 쑥스러움을 묻으려 “야, 다 내가 잘해서 그러는 거거든?!”이라 짐짓 버럭하지만, 한편으론 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밥 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건 부모로부터 독립한 성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생존 기술 아닌가? 애는 같이 만들었는데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내 몸만 축난 것 같아 가뜩이나 억울한데 키우는 건 알아서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남편보다 가사에 적극적이고 시월드에서 ‘아내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칭송을 듣는 평범한 남자가 있고, 알고 보면 여기저기 구멍도 숭숭 뚫린 허술한 이 남자를 예뻐하며 데리고 살아주는(!) 나는 왜 ‘복 받은 여자’가 돼야 하는지, 그 극명한 온도 차에 반감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도 결혼한 다른 사람들의 버라이어티한 수모기를 듣노라면 한국에서 이 남자가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 그 가치를 새삼 깨닫곤 한다. 그들 말대로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 결혼한 여성들이 모여 페미니즘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에서 펴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에는 결혼 후 가부장제에 편입돼 혼란을 겪는 ‘엄마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실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결혼이란 걸 했을 뿐인데 ‘아내’이자 ‘엄마’인 우리는 그간 ‘가부장제의 부역자’ 취급을 당하며 페미니즘의 가장자리에 놓인 신세였다. 결혼한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최전방에서 ‘혁명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기에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는 가운데 오히려 또렷하게 ‘페미니즘’을 되새기며 자신만의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분하고 막막하다가 때론 통쾌하고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그 상황 어딘가에 나 또는 주변의 누군가를 대입해도 어긋나지 않음을 발견하는 순간엔 덩달아 전투력이 상승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라 떳떳하게 말하기엔 지식도 논리도 한없이 부족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름의 투쟁 또한 페미니즘과 결을 같이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남 보기엔 그저 운 좋은 일상의 곳곳엔 분명 크고 작은 충돌과 조정의 과정이 존재해 왔으니 말이다.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을 향해 칭찬이랍시고 날리는 성적인 발언을 참지 못해 그게 왜 당신 와이프까지 성적 대상화하는 말인지 ‘백분 토론’을 벌였다. 여혐 사건에 광분하는 내 앞에서 어떻게든 가해자들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그의 역지사지 앞에서 “혹시 당신 일베 아니냐”고 일갈해 그를 충격에 빠뜨린 적도 있다. 왜 모든 남자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 하던 그에게 ‘장정 서너 명은 혼자 너끈히 해치울 것 같은 당신 와이프도 으슥한 밤길에 외간 남자가 뒤따라오면 무섭다, 평생을 듬직하게 살아온 나조차 살아오는 내내 크고 작게 위협을 받아왔다’는 일례를 들어 바로 납득시킨 적도 있다. 아들에게 시켜야 하는 조기교육은 한글과 영어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지시키는 것이니 신체 접촉 시 반드시 ‘동의’를 구하고 아이 앞에서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발언은 금할 것을 합의했다. 문제 제기와 대화와 조정이 반복되는 동안 서로의 온도 차는 좁혀졌고, 이를 통해 성장한 건 어느 한쪽이 아닌 ‘우리’였음을 문득 깨닫는다.   ‘운’도 만드는 거라면 내 운의 시작은 분명 불편하다는 ‘말’이었다.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불평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딸,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이유로 타인과 세상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고 맞지 않는 곳에 끼워 맞추려 할 때 문제 제기를 할 줄 아는 용기 또는 오기에서 출발한 ‘말’. 그 말들이 세상까지 바꾸진 못해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생각과 행동 정도는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 내가 뱉은 작은 말들이 모여 이룬 단단한 세계가 내 자존감을 찍어 누르는 남자를 걸러내고 내가 택한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으니까.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한 사람만의 각오와 희생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새로운 우주를 건설해 나갈 때, 상대가 수십 년 몸담아온 가부장제의 잔재는 때론 심신의 안녕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순간의 불편함을 피하려 든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담아두고 묵혔다 쏟아내는 감정의 폭포수보다, 그때그때 불편한 대화를 청하는 일상의 반복이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불편한 순간마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말을 꾹꾹 누르는 대신 음성으로 발화했다면, 그 결말은 전혀 달랐을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세상을 바꿔왔던 건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것에 맞섰던 ‘불편한 내색’이 아니었던가. 말을 해야 뭐 하나라도 건진다. ‘싸우자’가 아니라 ‘잘 살아보자’는 자세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