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여자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JTBC <방구석 1열> PD 김미연이 영화를 통해 본 세상 | 허스토리,방구석 1열,김미연,김미연PD,여성

*&lt;엘르&gt;는 2019년 9월호부터 매달 'Voices of Women' 칼럼을 통해 매달 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오직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합니다.&nbsp; &nbsp; 8월이 되면 방송국에서는 수많은 ‘특집’이 쏟아져 나온다. 방송국 PD로 일해 온 지난 시간 ‘광복절 특집’이라는 표현을 단 프로그램을 몇 편이나 만들었는지! 그럼에도 지금 연출하는 &lt;방구석 1열&gt; 광복절 특집은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인다면 지난해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lt;아이 캔 스피크&gt;와 &lt;눈길&gt;, 두 편의 영화로 4시간에 걸쳐 출연자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물론 한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lt;낮은 목소리&gt;(1995)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의 힘은 지금도 생생하다. 변영주 감독과는 2년 전 섭외를 위해 처음 만났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에서 처음 보는 종족(!)의 여성을 만난 기분이었다. 일단 거구다. 위압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인 건 변영주 감독의 눈빛이다. 당시 쉰에 가까웠음에도 눈에 담긴 진지함과 열정은 ‘이 사람과 꼭 엮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했다. 그가 연출한 &lt;낮은 목소리&gt;는 감독이 직접 연출, 촬영, 편집, 조명, 내레이터 등을 해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수로 꼽힌다. 현장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수요일마다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나섰던 감독의 이야기는 존재만으로도 진정성을 가졌다. 변영주 감독을 인간으로서 지지하는 이유는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이 내가 갖고자 하는 눈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건 ‘측은지심’이다. 자로 잰 듯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며 사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이 사자성어는 감정의 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회라는 집단과 가족이라는 무리 사이에서 ‘나’를 꿋꿋하게 했던 힘의 원천은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시 방송을 편집하며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받은 2차 피해였다. 인생을 짓밟히고 돌아온 그녀들에게 또다시 돌아온 차가운 시선…. 두 손 꼭 잡고 일본에 사죄의 목소리를 요구하기는커녕 또다시 그녀들을 외면하고 부끄럽다며 입막음하려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lt;허스토리&gt;의 예수정 배우 올해도 한 치의 고민 없이 ‘광복절 특집’을 녹화했다. 선택한 영화는 &lt;허스토리&gt;다. 2018년 개봉한 &lt;허스토리&gt;는 1992년 부산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 10명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벌였던 관부 재판을 다룬 이야기다. 이번 녹화에는 민규동 감독과 박순녀 할머니 역할의 예수정 배우가 함께했다. 한 번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없는 배우가 출연을 허락한 이유는 짧지만 감동적이었다. “&lt;허스토리&gt; 이야기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것이었다. 예수정 배우는 녹화 내내 부드럽지만 강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마음에 깊이 남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몸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과 정신에 대한 대의명분을 말하는 남성’이라는 문장이었다. 놀랍게도 녹화 현장에 있던 많은 남성이 이 표현에 공감했다. 할머니들의 증언 앞에 “남부끄러버서”를 외치던 영화 속 택시 운전사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 남성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 아닐까. 물론 이런 변화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한 여성들의 노력과 용기 덕분일 것이다. 남성이 주도하는 ‘남자들의 이야기(His story)’로 남았던 역사의 기록을 ‘여자의 이야기(Her Story)’라고 바꾸기 위해 대등한 의지를 보였던 수많은 이름. 내년에는 또 어떤 마음으로 8월을 맞이하게 될까. 나는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보태는 꽤 괜찮은 사람인지. &nbsp; 김미연&nbsp; JTBC &lt;방구석 1열&gt; PD.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 문제와 인문학적인 맥락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nbsp; &nbsp; *담당 에디터의 잘못으로 2019년 9월호 지면에 실린 기사에 오류가 있어 웹기사를 통해 정정합니다. 영화 &lt;허스토리&gt;에서 예수정 배우가 연기한 역할은 '박순녀' 할머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