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이 되면 방송국에서는 수많은 ‘특집’이 쏟아져 나온다. 방송국 PD로 일해 온 지난 시간 ‘광복절 특집’이라는 표현을 단 프로그램을 몇 편이나 만들었는지! 그럼에도 지금 연출하는 <방구석 1열> 광복절 특집은 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인다면 지난해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 캔 스피크>와 <눈길>, 두 편의 영화로 4시간에 걸쳐 출연자들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물론 한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1995)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의 힘은 지금도 생생하다.
변영주 감독과는 2년 전 섭외를 위해 처음 만났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에서 처음 보는 종족(!)의 여성을 만난 기분이었다. 일단 거구다. 위압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인 건 변영주 감독의 눈빛이다. 당시 쉰에 가까웠음에도 눈에 담긴 진지함과 열정은 ‘이 사람과 꼭 엮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했다. 그가 연출한 <낮은 목소리>는 감독이 직접 연출, 촬영, 편집, 조명, 내레이터 등을 해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수로 꼽힌다. 현장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수요일마다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나섰던 감독의 이야기는 존재만으로도 진정성을 가졌다. 변영주 감독을 인간으로서 지지하는 이유는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이 내가 갖고자 하는 눈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건 ‘측은지심’이다. 자로 잰 듯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며 사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이 사자성어는 감정의 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회라는 집단과 가족이라는 무리 사이에서 ‘나’를 꿋꿋하게 했던 힘의 원천은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었다. 그런 이유로 당시 방송을 편집하며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받은 2차 피해였다. 인생을 짓밟히고 돌아온 그녀들에게 또다시 돌아온 차가운 시선…. 두 손 꼭 잡고 일본에 사죄의 목소리를 요구하기는커녕 또다시 그녀들을 외면하고 부끄럽다며 입막음하려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허스토리>의 예수정 배우
김미연
JTBC <방구석 1열> PD.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 문제와 인문학적인 맥락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담당 에디터의 잘못으로 2019년 9월호 지면에 실린 기사에 오류가 있어 웹기사를 통해 정정합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예수정 배우가 연기한 역할은 '박순녀' 할머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