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를 구한 예술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은 많다. 하지만 두려움과 고통의 대상을 용서하고 화해를 구한 예술가는 흔치 않다. ::루이스 부르주아,예술,화해,작업실,화방,작업,미술,예술,조각가,화가,타계,작품,엘르,엣진,elle.co.kr:: | ::루이스 부르주아,예술,화해,작업실,화방

1 몇달 전 화창한 5월의 마지막 날에 꽃잎이 떨어졌다.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9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긴 세월의 고랑만큼 작가의 커리어를 채울 수 있는 대표작들이 많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건 ‘마망(Maman)’이란 이름의 거미 조각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곳곳에 번식해 있는 이 거대한 청동거미는 한남동의 리움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다. 생전에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든 기억이 내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말마따나 작품에는 작가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관과 삶의 풍경들이 가득 투영돼 있다. 작가는 프랑스어로 ‘엄마’란 의미의 이름을 붙인 작품을 두고 어머니를 형상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의 가족은 가업으로 태피스트리를 수선하고 판매했다. 덕분에 작가는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실과 바늘, 드로잉 펜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릴 수 있었다. 예술가로서의 소질을 키워준 유년 시절은 작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아버지의 외도를 어머니가 묵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성에 대한 증오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자신의 작품들을 여성성으로 채우게 되는 방아쇠가 됐다. 반 세기 가까이 이어온 그녀의 작업에선 여자의 몸과 출산, 성적 장애, 양성의 갈등이란 주제들이 읽힌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 역시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작품 활동 초기에 집과 여성의 신체를 결합한 그림의 연작 시리즈를 선보였던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 ‘마망’을 만들었다. 가는 다리로 거구의 몸체를 아찔하게 지탱하고 있는 거미는 배에 알을 배고 있다. 자기 알을 보호하려는 거미는 실을 지어내고 자식들을 키웠던 작가의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어머니를 빼닮았다. 예술에서 카타르시스를 찾던 루이스 부르주아는 오랜 무명 시간을 보냈다. 페미니즘이 확산되기 시작한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1982년 여자로서는 최초로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세월의 깊이에 무의식의 상처가 아물었거나 세월의 풍파에 비판의 날이 무뎌졌을까. 격정적이고 강렬했던 작가의 세계관은 조금씩 치유와 용서의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주고 어머니가 날 버린 것을 용서해 준다.”며 작가는 말년을 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바쳤다. 작가의 생일은 12월 25일이다. 20세기 미술계에 내려준 하늘의 선물과도 같았던 작가는 자신의 삶이 가장 만개한 순간, 인생을 그리던 붓을 놓았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