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국가대표 선수들의 천진한 미소. 그리고 점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뛰고 또 뛰고 부딪치고 넘어지고 함께 운동장을 뒹굴면서 그들은 웃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럭비 국가대표 선수들의 천진한 미소. 그리고 점프.::활달한,쾌활한,천진한,운동장,운동,럭비장,연습,훈련,럭비,국가대표,선수,여자,엘르,엣진,elle.co.kr:: | ::활달한,쾌활한,천진한,운동장,운동

1 인천 송도의 한 축구 연습장에 모인 국가대표 럭비팀 선수들. 힘차게 공중 부양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디지털 리터칭이 아닌 실제임을 밝혀둔다. “처음엔 아, 이걸 어쩌나 싶더라고요.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럭비가 뭔지도 모르는 선수들이 모였으니. 본격적으로 연습 시작하면 한 3일 안에 전부 짐 싸서 도망갈 줄 알았어요.” 문영찬 대표팀 감독의 짐작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운동장을 뛰라 하면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뛰던 풋내기 선수들은 고된 연습 시간이 모두 끝난 밤에도 끼리끼리 모여 어두운 주차장 구석에서 패스 연습을 했다. 단 한 명의 입에서도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투정은 나올 줄 몰랐다. 순식간에 4개월이 흘렀다. 지난 6월 5일 선발전을 거쳐 최초로 탄생한 여자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열둘. 경기에 출전할 일곱 명 정원의 두 배수도 되지 않는다. 선수들의 경력이나 구성만 놓고 보자면 외인부대가 따로 없다. 고등학생부터 전직 방송국 프로듀서까지. 교생 실습을 나갔다가 오후에 합류하는 선수도 있고 시험 기간이면 열심히 부산과 송도를 오가는 대학생들도 있다. 다섯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럭비공을 잡아본 적도 없는 생초짜들. 럭비 이전엔 다른 삶이 그들에게 존재했단 이야기다. 각자의 사연은 땀방울로 가득한 너른 운동장을 채우고도 넘친다. 태권도와 육상을 했던 씩씩한 스물셋, 주장 이민희 선수는 그나마 진지하게 럭비를 경험해본 쪽에 속한다. 시작은 단순했다. 어느 날 인터넷 기사에서 우연히 마주친 ‘럭비’라는 두 글자가 문제였다. 한 번 보고 나니 어느덧 뇌리에 각인된 두 글자. 홀린 듯 무조건 해봐야겠다 싶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빠져들었고 결국 국가대표가 됐다. 자비를 들여 홍콩에서 두 달간 트레이닝을 받았던 것도 모두 럭비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일 터였다. 열여덟, 고등학생이자 대표팀의 막내인 채성은 선수는 엄마의 권유로 무작정 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케이스다. 그가 해온 건 축구와 펜싱이었다. 안 그래도 진로 고민이 많은 시기. 지금은 럭비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만 아시안 게임 이후에 대해서는 아직 뿌옇기만 하다. 일단 눈앞에 있는 목표만 생각할 뿐이다. 패스도 못하던 초보는 이미 공을 잡고 상대방을 한 명씩 젖힐 때의 짜릿한 느낌을 알아 버렸다. 정말 이걸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뿐이다. 대표팀의 맏언니 민경진은 국가대표가 되기 전까지 약 3년 동안 방송국에서 PD로 활동했다. “미친 거죠. 물론 선발됐을 땐 좋긴 했는데 엄청 고민했어요.” 마침 일을 쉬고 있긴 했지만 방송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멈추면 다시 인맥을 이어붙이기 쉽지 않으리란 걸 충분히 알 만큼의 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어요. 잘한 것 같아요. 안 했으면 후회했을 거예요.” 이제야 조금씩 럭비가 보인다는 그에게 태극 마크란 남들보다 더 큰 의미기도 했다. 이제 국가대표라는 묘한 자신감과 책임감. 주로 외국에서 자라 한국인이란 정체성에 대해 남들보다 더 오래, 깊이 고민해온 터였다. 어찌 보면 갑자기 꿈이 이뤄진 거였다.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에 하도 소리를 질러 목소리가 쉬었지만 그는 연습 내내 쉴 새 없이 동생들을 다독이며 가장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럭비라는 꿈을 꾸는 대표팀 선수 중 상당수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나면 새롭게 일을 찾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실업 팀은커녕 대학 팀 하나 없기 때문이다. 럭비를, 그것도 여자 럭비를 대한민국에서 한다는 건 그런 뜻이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달려들기엔 머뭇거려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아 보통 사람들의 눈엔 조금 난데없고 미래가 염려스러운 어떤 것. 하지만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운동장을 나눠 쓰는 축구 팀 스케줄 때문에 갑작스레 당겨진 연습 시간 따윈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뛰고, 또 뛰었다. 송글송글 땀방울이 흩날렸다. 부딪치고 넘어져 함께 운동장을 뒹굴면서 그들은 웃었다. 처음 나가는 아시안 게임에서 목표로 하는 1승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미 있는 건 그들이 이미 그곳에 모였다는 거였다. 이제는 U17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거둬낸 여자 축구선수들이 20여 년쯤 전 그렇게 모였듯 누군가 나섰어야 할 시작을 기꺼이 짊어진 선수들. 문영찬 감독과 열두 명의 선수들은 단단하게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