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속 트렌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션은 이미지로 요약된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한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이야기된다. 패션 광고는그 상업적 미학의 중심에 있다. 그 파노라마 속 트렌드를 되짚어 본다. |

사진가 만 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는 신적이며 복제는 인간적이다.” 눈앞에 보이는 피사체와 배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은 ‘시쳇말로’ 거짓말하지 않는다. 현실 도피에서 시작된 예술의 영역을 눈높이로 끌어내린 장본인이다. 도구를 통해 드러난 세상은 때론 현실보다 더 생생하다. 삶의 질감을 풍부하게 직조한다. 만 레이의 휴머니즘론은 사진의 진실성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패션 사진의 문법은 한참 다르다.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보고, 겪고, 느끼고 싶지 않은 현실에 렌즈를 들이대지 않는다. 브랜드의 영리가 목적이 되는 광고 사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팔기 위한 아름다움이 전제됐음은 무시할 수 없다. 패션 사진의 태생적 한계다. 그런데 이 불순한 의도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한다. 진짜 세상에 생중계되는 의 세상처럼 요철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여성은 아름다움을 갈망하며, 아름다움은 이상향, 즉 판타지로 보존돼야만 한다. 패션의 본질은 그러하다. 허상을 벗겨낼 필요도, 곪아 터진 이면을 고발할 이유도 없다. 패션 사진엔 패션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버스정류장에서, 가판대 위 잡지 속에서, 모니터 속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뽐내고 있는 패션 광고 사진의 미학. 그 다양한 빛깔을 1990년대부터 재조명한다. 1 리처드 아베돈의 시선은 날것의 에너지가 살아 있는 역동성을 잡아낸다. 2 쾡한 눈을 하고 헝그리 정신의 투혼을 불태우는 1990년의 케이트 모스. 3 1990년대 중반 즈음, 패션은 낙관론자들의 것이었다. 공익 캠페인 또한 패션과 손을 잡고 긍정의 힘을 설파했다.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더 화려한 스타 캐스팅을 자랑한 밀크(낙농 협회 우유마시기 캠페인) 광고. 4 엘렌 본 언워스의 핀업걸 드류 배리모어. 여성이 보는 여성은 불편한 에로티시즘을 강요하지 않는다.5 톰 포드의 센세이션. 구찌의 비주얼은 한동안 ‘let’s talk about sex’로 점철됐다.6 1992년 랑방 캠페인. 파올로 로베르시의 무드를 입은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한 폭의 정물화처럼 그려진다.early 90’S - mid 90’S 패션, 브랜드를 말하다. ‘빨간펜 선생님’이라도 오셨던 걸까? 90년대 초반 패션 잡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미지들의 정직성과 가지런한 배열에 새삼 놀라게 된다. 흑백 이미지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로고들. 모델의 움직임과 브랜드 로고가 이루는 축은 정확히 계산적이며, 시선을 흐트리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리처드 아베돈의 베르사체는 미켈란젤로의 건축만큼이나 견고한 형태와 구성을 보여준다. 모델의 몸이 갖는 운동성으로 패션을 극대화한다.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드레스 끝자락에도 힘이 실려 있다. 리처드 아베돈의 포트레이트적 관찰은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 가장 충실했다. 머리와 옷 소매 등 각 끝점이 이루는 시선이 균형감을 이루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패션 광고에서 보여지는 여성은 그 안에서 현실과의 괴리감을 비쳐낸다. 베르사체나 랑방, 샤넬, 에르메스 등의 하이패션 브랜드는 황금 분할 속에서 이상향을 찾았다. 지금의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샤넬과 자라가 섞이는 극적인 조우 따위는 이뤄질 리 없으니 브랜드의 전통과 제품 그대로를 스테레오타입으로 전달하면 그만이었다. 80년대의 연장선이기도 한 90년대 초반은 캐주얼과 하이패션의 간극이 두드러진 혼돈의 시기였다. 캐주얼 브랜드 광고는 그 양극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게스와 캘빈 클라인 청바지를 입은 영화 속 디바다. 캘빈 클라인 캐리 오티스가 금방이라도 인류를 구할 듯한 여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의 헤로인 린다 해밀턴과 흡사하다), 게스의 에바 헤르지고바는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를 재현한다. 이들은 불멸의 이미지다. 당시 대중은 게스나 캘빈 클라인 청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이들과 같이 되리라는 맹랑한 꿈은 꾸지 않았다. 금발과 풍만한 몸매를 가진 게스 걸은 결국 게스를 흠모하게 만드는 신기루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퇴폐적 눈빛을 흘리던 드류 배리모어 또한 게스를 입는 배우 드류 배리모어가 아닌,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이다. 헬무트 뉴튼이 자신의 포트레이트에 담았던 에로스 무드 그대로 안나 몰리나리의 사랑스러움에 입혔다면 상상이 가는가? 막 브랜드를 깨우치기 시작한 이들에게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없었다. 환상 속에 존재하면 그만이었다.mid 90’S -late 90’S 패션, 행복을 말하다90년대 중반의 패션은 미국에게 더할 나위 없는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그런지 룩으로 표출되던 90년대 초반의 캐주얼이 뉴욕 증시 활황 무드에 힘입어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것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뉴욕 시크’다. 다소 고압적이었던 패션 광고 속 모델들이 카메라 앵글을 향해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어쩌면 행복 바이러스는 이즈음 가장 쿨한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한 스니커즈 덕택인지도 모른다. 긍정의 힘으로 고객을 감동시키겠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토미 힐피거와 폴로는 서로 뒤질세라 성조기를 배경에 걸고 조국에 감사를 표시했다. 잘 먹고, 잘 누려서 혈색 좋은 모델들의 우정과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패션 광고라기보다는 코튼협회의 홍보 캠페인 같다는 느낌이 짙다. 농담처럼 웃어 넘길 얘기는 아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단,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세컨드 브랜드들이 왕성한 마케팅을 벌이며 젊은 옷입기를 장려했고, 카고 팬츠와 더불어 도회적 감각으로 채색된 스포츠 룩이 급부상했으니까. 예술과 실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능숙했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발빠르게 프라다 스포츠 라인을 론칭하기도 했다. 풀냄새 나는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브루스 웨버는 맨 얼굴에 주근깨가 가시지 않은 모델들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베르수스 광고를 찍었고, 크리스티 털링턴은 다수의 브랜드에서 가족들과 여가를 즐기는 미국 중산층의 마나님을 연기했다(대부분은 촉감 좋은 캐시미어 니트 한 장이나 나일론 점퍼 차림이다). 티 한 점 없이 맑은 패션 사진들의 호황 속에서도 이단아는 존재했다. ‘미션 임파서블’ 구찌를 살려내라는 임무를 맡은 신인 디자이너 톰 포드다. 매 시즌 강한 콘트라스트로 섹슈얼 이미지를 풀어내는 재주를 보였던 그는 명품 브랜드의 재건에 광고의 변화가 불가피함을 절실히 전달했다. 그 센세이션은 노곤노곤 낮잠 자고 있던 패션 광고의 콧털을 건드린 셈이 됐다. 1 2001년 디올 캠페인. 이즈음 모델들의 표정은 허세에 찌들지도, 미백 치아를 자랑하지도 않았다. 2 패션 하우스의 부활은 이미지의 파격으로 이어졌다. 2000년 엠마누엘 웅가로.3 2002년 발렌시아가. 사진가의 능력 외에 아트 디렉터의 능력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부터이다. 4 테리 리처드슨의 장기자랑. 동성간의 애틋한 사랑이 구찌의 넓은 아량으로 꽃을 피웠다. 2001년 작.5 1990년대 말 프라다와 글렌 루치포드(glen luchford)의 만남. 패션 사진의 일회성을 비웃던 이들에게 파장을 일으킨 화제작이다.late 90’S - early 2000 패션, 아트를 말하다 ‘패션에 패션이 없어요.’ 세기말과 밀레니엄을 맞은 패션 광고들이 너도나도 외치는 말이다. 미국 브랜드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동안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한 유럽 패션 하우스들은 예술과 패션을 접목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갤러리에 걸어도 무리 없을 만한 패션 광고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감상의 시대가 온 것이다. 선발 주자는 프라다였다. 매 시즌 실험적인 사진가들을 기용해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기염을 토했던 프라다의 광고 비주얼은 독보적이었다. 1998년 글렌 루치포드(Glen Luchford)와 앰버 발레타 콤비 시리즈, 2001년 세드릭 부셰(cedric Buchet)의 해변 시리즈는 패션 광고 또한 공간과 조명의 미학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글렌 루치포드가 표현한 프라다에는 스토리가 담겼다. 의상이나 모델이 보란 듯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저 이미지 속 소품일 뿐이다. 등의 인디 패션지에서 예술적 재능을 펼친 사진가의 재능 덕분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의 옷에도 스토리가 담겨 있다. 90년대 말, 미우치아 프라다는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매 시즌 아시아, 모로코, 아프리카 등의 이국적 향취를 표현해냈다. 1998년 작 프라다 광고가 왕가위 감독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건 ‘젠’이라는 문화적 트렌드와 맞물려서다. 당시 미니멀리즘은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우주 공간의 미학을 담은 철학이었다. 요지 야마모토의 공기를 담은 아방가르드 룩은 패션으로만 이야기되기에는 엄청나게 큰 기류 중 하나였다. 이네즈, 비누드 커플의 상업 사진 데뷔이기도 했던 요지 야마모토의 1998년작 비주얼은 패션과 예술의 경계가 가장 모호해진 때였음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미니멀리즘을 건축적 구도로 펼쳐낸 헬무트 랭은 타이포그래피 아트로 전면을 채운 대담한 광고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펼쳐도 채 50cm가 되지 않는 잡지 속에서 상상력이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패션 광고의 외도는 ‘미니멀리즘’이라는 트렌드 속에서 가능했다. 선의 미학을 강조하는 옷들과 공간의 여백을 이용하는 시선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타협일지도 모른다. 1980년대가 자랑하는 과장된 디테일도 없고, 1970년대의 젊은 에너지도 없으니 의상으로만 치면 무기가 없는 셈이다. 비주얼의 가장 큰 변화는 변칙적 구도다. 모델과 모델이 겹쳐 서고, 화면의 중심에 피사체가 없는 삐딱한 시선이 계속됐다. 가방을 멘 모델의 머리가 댕강 잘려나가는 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질 샌더의 광고에선 얼굴 없는 모델의 뒷모습만 허망하게 바라 보는 일도 생겼다. 이뿐 아니다. 실제와 배경의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돌체 앤 가바나 광고 속 지젤은 시칠리 섬 푸줏간 아주머니 저 멀리 간신히 자리를 잡아 포즈를 취하는 굴욕을 맛봤으니까. 또 하나의 변화라면 이미지의 재구성이다. 자르고, 붙이고, 해체하고, 낙서하는 작업이 ‘쿨’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발렌시아가는 콜라주를, 캘빈 클라인은 그래피티를, 디올은 일본 ‘망가’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로 원형 훼손에 동참했다. 아름다움을 반전시키는 일은 금세 가장 아름다운 것이 돼버렸다. 대중들도 풍선검을 씹듯 이미지를 소비했다. 악동 테리 리처드슨의 못말리는 행보도 이즈음 탄력을 받았다. ‘포르노 시크’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기 시작했다. ‘음모’ 노출 사건으로 포토숍 의혹까지 떠돌았던 구찌 광고는 거짓 아닌 진실로 일단락 되는 해프닝까지 낳았다. 톰 포드는 에르베 레제(Herve Le′ger)의 80년대가 재부흥하기도 전에 오리엔탈 밴디지 미니 드레스를 선보이며 미니멀리즘 이후의 허기를 달래주기도 했다. 덜 입고 덜 잠근 듯한 흐트러진 섹시 룩이 정점을 이루면서 점잖은 하우스들의 비주얼도 과감해졌다. 웅가로의 커스틴 오웬은 사냥개, 끌로에의 모델은 말 세 마리와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니 모스키노에서 발칙한 메이드로 분한 아누크 레페르가 머쓱할 지경이다. 1 누가 무심한 것이 시크하다고 했나? 왜곡으로 패션 판타지를 이야기하는 듀오 사진가 Mert and Marcus의 2006년 루이 비통 캠페인.2 이네즈, 비누드 커플의 끌로에 캠페인. 화면 구성의 대담함과, 밀도 높은 여성성을 표현해 주가를 높이고 있다.3 스타 없이는 모래성과 같은 2000년 후반의 패션 월드. 셀마 블레어와 에반 레이첼 우드를 기용한 미우미우의 2005년 캠페인.4 1980년대의 이브 생 로랑 광고를 오마주한 2005년의 이브 생 로랑. 이후 유르겐 텔러식 ‘텍스처’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5 광고인지, 타블로이드 가십지인지. 셀러브리티 파파라치 컷을 위해 인터넷의 바다를 헤메는 대중들을 위한 DKNY의 배려. 이쯤 되면 사진가가 누구인지 생색낼 필요도 없다.mid 2000 - late 2000 패션, 스타를 말하다 패션이 간절해졌다. 구원의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타의 피를 수혈받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가방도 팔고, 신발도 팔아야 한다. 내로라하는 톱 모델들이 성냥팔이 소녀처럼 짐꾸러미를 들고 나선다. 한 명으로는 부족한지 구름처럼 몰려나와 가방 자랑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끔은 가방이나 신발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생활 체조도 선보인다. 두 팔을 어깨 위로 뻗어 가방끈을 힘껏 당기거나, 하이힐 신고 드러누워 허공에서 자전거를 굴리는 일 등이다. 노골적 장삿속을 감추고 싶은 경우엔 파파라치 기법을 빌어온다. 젯셋족의 휴가를 염탐하는 듯하지만 그들이 가지런히 벗어놓은 액세서리가 주인공이 되는 식이다. 대리만족의 재미를 선사하며 성황리에 복제되고 있는 이 형식은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의 장기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엔 잠시 졸음을 유발하기 쉬운 나른한 무드에 접어들기도 했다. 끌로에와 스텔라 맥카트니 등 여성 상위시대에 힘입은 결과였다. 바스라질 듯 얇은 시폰으로 몸을 감싼 소녀들이 퀴퀴한 지하가 아닌 풀밭에서 광합성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진리.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소녀 모델들은 팀 워커의 동화 속 판타지가 되기도 하고 데이비드 암스트롱의 아련한 기억이 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사진가 고유의 스타일이 트렌드의 하위에 자리 잡게 된 원인은 결국 패션에 있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지금까지 패션은 이렇다 할 흐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런웨이 위에 올려진 디자이너의 옷 보다 디자이너의 옷을 입는 스타에 열광하는 시대다. 그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패션의 시대에 이미지는 그 장단을 맞춘다. 그렇다고 죽으란 법은 없다. 잔 다르크 같은 혁명가들이 이런 패션의 흐름을 역으로 이용해 이미지의 권위를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사진가 스스로 억압적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와 이브 생 로랑의 비주얼을 책임진 유르겐 텔러와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사진가 에디 슬리먼의 부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굉장한 기세로 패션 하우스를 접수하고 있는 이네즈, 비누드 커플 또한 대표적이다. 이들은 따로 첫인사를 할 필요도 없이 친근한 스타 모델들 사이에서 각자의 고집을 이미지로 표현해낸다. 지극히 사적인 뉘앙스로 대중 패션을 이야기하는 유르겐 텔러는 특허를 받아도 좋을 만큼 굳건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와 이브 생 로랑의 옷들은 그의 렌즈 앞에만 서면 한없이 나긋나긋해진다. 그 이면에 섹슈얼한 장치들을 숨겨놓고 아이러니의 유머를 던진다. 세월의 아카이브를 뒤져 약간의 수정을 거친 요즘 옷들에 사진가 특유의 시선을 이용하는 건 영리한 발상일 수도 있다. 이네즈, 비누드 커플은 80년대 패션 사진의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아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이들의 사진이 각광받는 건 어떤 옷이라도 본질 표현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이다. 어빙 펜이나 허브 리츠가 인물의 찰나를 잡는 데 탁월했다면 이네즈, 비누드 커플은 옷의 표정을 잡아내는 데 특출한 재능을 보인다. 어쩌면 클래식 아이템의 재탕, 삼탕에 들어간 요즘 패션으로서는 재발견의 능력을 지닌 사진가들 앞으로 줄을 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밀레니엄 후 10년을 마감하고 있는 지금은 이미지의 포화 상태다. 공격적으로 덤벼드는 것들에 대해 피로해진 상태다. 때론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한숨 고르고 나면 또 다른 10년이 새로운 것들을 꺼내놓을지도 모른다. 빈틈 없이 꽉 채워지고 나면, 다시 비워지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니까.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