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손맛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바리스타 로봇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미래 식당'의 현재를 짚어봤다. | 푸드 테크,푸드,로봇,미래 식당,바리스타 로봇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요하는 외식업에도 로봇이 등장했다. 자본이 풍부해서 신사업에 적극적인 중국이 앞섰다. 마사지, 네일 케어 등 남다른 서비스로 사랑받는 훠궈 전문점 ‘하이디라오’는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로봇 팔이 유리로 둘러싸인 냉장 시설에서 손님이 주문한 식재료를 찾아내 배식 창구로 옮기는가 하면, 창구 앞에 대기한 로봇이 이를 싣고 스스로 주문한 테이블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로봇 팔이 어림잡아 수백 개에 이르는 식재료 중에서 주문한 걸 귀신같이 찾아내고, 서빙 로봇이 테이블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넋이 나갈 지경이다. 현재 하이디라오는 로봇 덕에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지만, 애초에 스마트 식당을 꿈꾼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2017년 비위생적인 주방 환경이 고발되면서 일명 ‘쥐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던 것. 하이디라오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식재료를 창고에서 꺼내 손질해서 손님에게 건네기까지 사람의 손이 일절 닿지 않는, 무균 상태의 주방을 만들고자 로봇을 적극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로봇이 활약하는 스마트 식당이 이목을 끌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로봇이 카페를 중심으로 활약한다. 국내 외식업에 진출한 로봇 대부분이 바리스타 로봇이다. 결제 서비스 업체 다날의 카페 브랜드 ‘달콤커피’가 선보인 ‘비트’와 삼성동에 문을 연 ‘커피드 메소드’, 육그램·월향 등이 협업으로 선보인 ‘라운지엑스’가 바리스타 로봇을 채용했다. 그런데 이때 로봇이 맡은 역할은 가게마다 다르다.   커피드 메소드. 비트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m 남짓한 투명 디스플레이 캐비닛에 들어 있다. 커피를 주문하면 캐비닛에 장착된 로봇 팔이 자동 커피 머신을 작동해 커피를 추출한다. 전자동 커피 추출 방식과 작은 캐비닛 크기 탓에 비트는 얼핏 자판기를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투명 디스플레이를 통해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직 생경한 만큼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한편, 커피드 메소드의 바리스타 로봇은 반자동 커피 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를 완성한다. 로봇 팔이 그라인더에서 원두를 받아 야무지게 태핑한 후 머신에 부착해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또 다른 로봇 팔이 주문에 따라 우유 혹은 얼음, 물, 시럽을 타 커피를 완성하면 직원이 뚜껑을 닫고 손님에게 직접 내준다. 라운지엑스도 커피드 메소드처럼 바리스타 로봇이 인간과 협업하는 구조다. 차이점이 있다면 라운지엑스의 로봇은 드립 커피 전문이다. 직원이 원두를 갈아 건네면 로봇이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헹군 후, 원두를 붓고 천천히 물을 따라 커피를 내린다. 이 세 가지를 지켜보면 확실히 라운지엑스 로봇의 업무수행 능력이 정교해 보인다. 라운지엑스에서 로봇의 활약상을 볼 수 있는 메뉴는 스페셜티 커피 세 종류이며, 원두 종류에 따라 꽃 모양, 나선형 등 로봇이 물을 붓는 동작도 달라진다. 라운지엑스는 카페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신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한 끝에 드립 커피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라운지 엑스. “바리스타들에게 물으니 에스프레소 추출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전자동 기계가 대세이며, 반자동일지라도 그리 힘들지 않다고요. 오히려 드립이 일정한 실력을 갖추는 데 시간이 걸리며, 한 번 시작하면 커피를 다 내릴 때까지 주전자를 들고 꼼짝없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등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요.” 라운지엑스를 기획한 라운지랩 황성재 대표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전 과정을 자동화하지 않았을까. 주문 단계부터 자동화를 갖추는 게 추세인데 말이다. “드립 커피는 손님의 취향을 반영하는 일종의 슬로 푸드입니다. 손님이 특별히 원하는 농도가 있는지 소통한 후 그 농도에 따라 원두 양과 분쇄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직원이 직접 주문받고 그라인딩합니다.” 라운지엑스 총괄 로스터 김동진 씨의 설명이다. 로스터이자 바리스타인 김 씨는 로봇에 원두 종류에 따른 동작의 기본값을 입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커피는 감성적 음료예요. 감성이 들어가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죠. 커피 업계에서 로봇은 협업의 객체이지, 결코 인력을 통째로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람이 빠진 채 로봇이 전적으로 커피를 내린다면 그건 자판기나 다를 게 없죠.” 로봇이 내린 커피 맛은 과연 어떨까. 황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더 맛있다’고 한다. “행복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잖아요. 바리스타 로봇을 보면 일단 사람들은 신기하고 즐거워해요. 더 맛있을 수밖에요. 과학기술은 궁극적으로 이 공간의 본질인 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더 맛있게 내리기 위해 로봇을 채용했으니 더 맛있어야죠.” 황 대표의 말에 김동진 로스터도 공감한다. “드립 커피를 잘 내릴 때까지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해요. 전문가일지라도 순간의 감정이 커피 맛을 좌우할 수 있고요. 반면 바리스타 로봇을 보세요. 신입이지만 제가 기본값을 입력한 만큼 저 못지않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일정하게 내릴 수도 있죠.” 백문이 불여일음. 바리스타 로봇에게 커피를 맡겨봤다. 드리퍼에 뜨거운 물을 부어 헹궈내더니 직원에게 건네받은 원두를 탈탈 털어 넣은 후 주전자를 들고 물을 따랐다. 그 동작이 어찌나 능수능란한지 수십 년 해본 솜씨 같다. 커피 맛도 수준급이었다. 향과 맛이 다차원적이라 할까. 그럴 만하다. 전문 로스터가 볶은 고품질의 스페셜티 원두를 로봇이 입력된 값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내려주니까. KT가 새로운 요금제를 홍보하기 위해 문을 연 ‘ON식당’은 초당 1.98원에 음식을 무제한 제공한다는 파격적 조건과 함께 호떡을 조리하는 로봇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은 로봇이 이미 반조리된 호떡을 불판에 올려 뒤집기만 해도 즐거워했다. 한편, 라운지엑스에는 시식 빵을 들고 테이블을 도는 ‘팡셔틀’ 서빙 로봇이 근무 중이다. 곧 피자가 출시되면 이를 서빙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외식업에서 로봇은 진입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경제성, 기능성보다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인식된다. 중국의 하이디라오처럼 로봇을 중심으로 주방을 아예 개편한 경우도 있지만, 초기 투자비용을 고려하면 당장 경제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푸드 테크 시장을 선점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마트 식당 ‘스파이스(Spyce)’는 다국적의 밥과 국수 요리를 로봇 주방장이 선보이는데, 이때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MIT 공대생들이 개발한 원통형의 웍 로봇은 3분 만에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미슐랭 가이드> 스타 셰프가 메뉴를 기획하고 로봇 주방장이 인건비와 조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스파이스는 7.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라운지랩이 운영하는 또다른 매장 ‘산방돼지’는 단순히 조리 과정의 기계화를 넘어 인공지능을 접목했다. AI 에이징 룸이 바로 그것. 지금은 전국의 축산 장인이 숙성한 고기를 받아쓰지만, 그들의 에이징 기술을 분석한 AI가 머지않아 스스로 고기를 숙성하리라고 황 대표는 기대한다. 영국의 ABI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협동 로봇 시장은 2015년 9500만 달러에서 내년 10억 달러로 5년 새 10배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조만간 일상에서 로봇이 파전을 굽고, 치킨을 튀기며, 파스타를 볶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