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를 생리라고 왜 말을 못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언제까지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할까? 툭 까놓고 생리 얘기 좀 해보자. | 생리,여자,헬스,건강,생리통

  “너 혹시 생리해?” 동료들과 점심식사 후 회사로 복귀하는 길. 한 동료의 원피스가 붉게 물든 걸 발견했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주자, 그녀는 허리에 옷을 묶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너무 부끄럽다는 말을 쉼없이 반복하는 그녀에게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쉼 없이 반복해야 했다. 당혹스러운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까지 동공지진하며 노심초사할 일인가 싶었다. 마침 겉옷이 있었기에 다행이고 안심해야 할 일 아닌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피로 이불을 적시고 지하철 의자에 묻은 핏자국을 본 적 있지 않나!     왜 생리는 이토록 부끄럽고, 비밀스럽고,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이미지로 점철돼 있을까? 광고만 봐도 그렇다. 생리혈이 무슨 포카리스웨트도 아니고 생리대의 흡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한 파란 액체가 쏟아진다. 생리 중이라면 결코 입지 않을 새하얀 원피스는 왜 입고 있으며, BGM은 또 왜 그 모양인가? 의도는 알겠지만 실제로 생리하는 날엔 짙은 컬러나 도톰한 하의에 손이 가고, 머릿속 BGM은 우울한 선율로 가득하다. 편의점에서 생리대라도 살라 치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검정색 비닐봉투에 담아 준다. 생리대 하나를 빌리려면 또 어떤가?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 작전이 시작된다. 남 눈에 띄지 않게 쓱 꺼내 주머니에 밀어넣는. 에디터 역시 어릴 적부터 생리라는 말 대신 ‘그날’ ‘마법’ ‘멘스’라는 닉네임을 숱하게 들어왔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생리를 생리라 부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은 생리라는 말을 꺼내기가 비교적 쉽지만 어릴 땐 왜 그리 창피했는지. 마트의 생리대 선반 앞에선 누가 볼세라 후다닥 쇼핑을 마쳤고(내 몸을 위해서라면 꼼꼼히 골라야 하는 게 맞건만!), 카트에 놓인 생리대 위로 각종 식료품을 덮어 이를 감춰두곤 했다. “너 그날이냐?”라는 말은 또 어떤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뇌가 자궁에 달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자궁도 없는 남자가 남자에게 비꼬는 투로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생리가 기분 나쁜 감정을 더 크게 부채질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기분이 나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마련. 감정은 어떤 순간이든 존중받아야 마땅한데 말이다. 선진국의 상황은 좀 다를까 싶어 사석에서 생리를 주제로 입을 열자,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인은 생리대를 빌릴 때 당당히 손에 들었고, 한국처럼 포장으로 따로 감춰주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물론 거기서도 ‘Period’라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공공장소에서는 귓속말로 생리대 유무를 묻곤 했지만 말이다. <우리의 새빨간 비밀>의 저자이자 프랑스의 페미니스트인 잭 파커 역시 가방에서 탐폰을 떨어트려 식은땀을 흘린 경험을 털어놓는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초경을 하면 따귀를 때리는 풍습까지 있단다(악령을 몰아내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등 전통 가설은 다양하다). 생리를 폭력과 연결 짓다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생리를 금기시하는 입장은 전 세계 공통인 듯 보인다.     ‘여성에게 자유를’ ‘새로운 발견’.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생리컵 광고 문구다. 물놀이를 좋아해 탐폰을 만나고 신세계를 경험한 지 어언 3년 차. 생리컵은 탐폰보다 큰 무한의 자유를 준다 했다. ‘그래, 결심했어. 써보는 거야!’ 적어도 한 개 브랜드 제품쯤은 팔 줄 알았던 근처 올리브영과 롭스에서 생리컵 쇼핑에 실패했고, 이마트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온라인으로 생리컵을 주문했고 며칠 후 입문자를 위한 작은 책자와 함께 S 사이즈와 L 사이즈로 구성된 생리컵 도전 세트가 도착했다. ‘뭐? 질의 길이를 먼저 재라고?’ 손가락으로 길이를 측정해야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 사이즈를 찾을 수 있다는데, 아뿔사. 나는 이미 생리 3일 차다(감염 가능성이 있는 생리 중에는 측정을 피해야 한다). 급한 대로 작은 사이즈를 선택, 손을 깨끗이 씻고 변기에 앉아 깊은 호흡으로 긴장을 풀었다. 설명서를 따라 말랑한 생리컵을 반으로 접은 뒤 질 입구에 넣어봤다. ’응? 이게 들어간다고? 이러다 상처 나는 거 아냐?’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나는 신여성이다. 으아아아아’를 속으로 외치며 힘줘 밀어넣자 질 안으로 쑤욱 생리컵이 들어갔다. 마치 ‘초싸이언’이 된 기분. 불안함에 중형 생리대를 팬티에 깔고 집을 나섰다.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제대로 들어가긴 한 것 같고. 무엇보다도 소변을 볼 때마다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탐폰 역시 소변을 볼 때마다 교체할 필요가 없지만 긴 실 꼬리에 묻은 소변이 이를 타고 상승하는 걸 원치 않아 자주 교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쓰레기도 제로라 친환경적이니 이 정도면 화장실에 휴지통을 치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익숙해져 생리컵을 제거할 땐 30초, 착용할 땐 1분 이내로 작업을 끝내게 됐고, 이를 까맣게 잊은 채 최대 사용 시간인 12시간을 넘기고 화들짝 놀라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피가 한꺼번에 물컹, 쏟아져 나와 ‘굴을 낳는 듯한 느낌’도 없고, 그 어떤 축축함이나 이물감, 냄새도 제로. 더욱이 샤워할 때 탐폰처럼 꼬리가 보일 일도 없고, 물기를 닦다가 수건에 피를 묻힐 일도 없으니 안심하고 요가 수업까지 참석했다. 쾌적함의 극치, 광명을 찾은 기쁨. 아, 이렇게 탐폰 전도사에서 생리컵 전도사로 업그레이드되는 건가. “여러분, 생리컵 두려워마세요. 제발요!”     나는 지금 생리 끝물이다. 여전히 생리컵을 착용하고 있고, 당분간 만나게 될 ‘피 자매’들 모두에게 생리컵의 편리함을 전파하고 다닐 것 같다.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 나트라케어는 처음으로 생리대 광고에 ‘생리’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했고, 라엘은 생리혈을 새빨간 붉은색으로 가감없이 노출해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는 여성에게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나는 미래의 자녀가 몸에 맞는 생리용품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탐폰이나 생리컵이 처녀막을 뚫어야 들어간다거나 질을 늘어나게 한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아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현명한 부모이고 싶다. 언어가 인식과 태도를 지배하는 바, 앞으로도 감기 얘기하듯 생리를 생리라 당당히 말하고, 두통 얘기하듯 생리통을 생리통이라 밝힐 예정이다. 생리, 그 떳떳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