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가 감싸 안는 계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스카프는 한 마디로 마법의 패션 아이템이다. 똑 같은 스카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 드레시하게 할 수도 있지만, 섹시하게 연출할 수도 있다. 단정해 보일 수도 있고, 넝마주이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스카프,계절,연출, 안냐 루빅, 샤샤, 나타샤 폴리, 에비 리 커쇼,매니시한, 청키한, 에르메스,엘라서울,엘르,엣진,elle.co.kr:: | ::스카프,계절,연출,안냐 루빅,샤샤

잡지사 기자로 근무하며 밥 먹듯 야근하던 시절, 선배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더운 여름 밤, 선배와 나는 대충 입은 옷에 슬리퍼를 끌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마감할 때의 전형적인 복장이었다. 유흥가였던 탓에 주변은 불야성이었다. 누가 봐도 패션 에디터 같은 모습은 아니었던 우리 옆으로 대조적인 모습에 한 무리의 여자들이 지나갔다. 완벽한 메이크업에 깨끗하게 정리된 헤어 스타일, 짙은 톤의 정장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조신한 차림새의 그들은 그렇게 지하세계로 들어갔다. 스카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다. 한편, 프랑스 본사에서 한국으로 발령 받은 상사가 있었다. 누가 봐도 미남은 아니었다. 회사로 오기 전에는 패션과 무관한 일을 했던 탓에 패션센스도 잘 봐줘야 60점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오더니 라식 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요즘 같은 때, 브라운과 카키톤의 재킷 안에 스카프 한 장을 보일 듯 말듯하게 하고 나타났다. 톰 포드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스카프에 대한 좋은 추억이다. 패션계에서 유명한 모씨.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 갔다. 잠시 후 카페에 나타난 그이. 가뜩이나 우람한 체격에 피부색도 거무튀튀한 그는 목에 오렌지 컬러의 쁘띠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액세서리의 중요성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역설했다. 스카프에 대한 이상한 추억이다. 각기 다른 경험이었지만, 스카프가 남기는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스카프는 한 마디로 마법의 패션 아이템이다. 똑 같은 스카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 드레시하게 할 수도 있지만, 섹시하게 연출할 수도 있다. 단정해 보일 수도 있고, 넝마주이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사실 스카프는 한 때 태국산 악어가죽 백과 함께 엄마의 옷장에서나 발굴될 법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에 유행한 것처럼 극도로 심플한 옷과 안드로메다에서 온 듯한 옷들이 공존하는 지금, 스카프는 오히려 소유하기에 가장 안전한 아이템이 되었다. 그 특성상 장롱에서 1년을 묵던 10년을 묵던 언젠가 꺼내어 쓰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내기 때문이다. 안냐 루빅, 샤샤, 나타샤 폴리, 에비 리 커쇼 등의 모델은 스카프가 얼마나 멋진지를 증명한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이들은 스카프 연출법 역시 자유롭다. 중동 아시아에서 구한 듯한 핸드메이드 스카프는 젯셋족 같은 느낌을 은근히 발산한다. 구깃구깃 접어 백 속에 넣고 다니다가 날씨가 쌀쌀해지면 목에 둘둘 감거나 어깨 위에 척 걸쳐준다. 모델들이 즐겨 입는 블랙 가죽 재킷에도 잘 어울리고 매니시한 재킷, 청키한 니트, 여성스러운 원피스 등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다. 모델들은 스카프를 연출하는 법 역시 다양하다. 사이즈와 모양에 따라 둘렀을 때 느낌이 다르지만, 포인트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점! 풍성한 스카프를 리본 모양으로 메서 레오날도 같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거나, 오드리 햅번이 그랬다고 해서 쁘띠 스카프를 어깨에 살포시 얹는 인위적인 모습은 절대로 금물이다. 차라리 모델들은 스카프를 뒤통수에 살짝 얹은 뒤 목을 한 두 번 감아 후드처럼 보이게도 연출한다. 올 시즌 ‘스카프 입문자’에게는 레오파드 패턴의 스카프가 적당해 보인다. 일찍이 루이 비통에서는 레오파드에 바비올렛, 옐로, 블루 등의 컬러를 살짝 가미한 스카프를 내놓았다. 이로서 동물 프린트가 더 이상 남자 잡아먹는 여자(?)의 전유물만은 아님을 선포했다! 특히, 이번 시즌 레오파드는 재킷, 코트, 원피스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이를 돌체 앤 가바나나 드리스 반 노튼처럼 속살이 훤히 비치는 블랙 레이스 톱과 믹스할 자신이 없다면, 스카프 같은 액세서리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패션아이콘인 미란다 커는 풍성하고 긴 레오파드 스카프를 즐겨 한다. 블랙, 브라운, 그레이, 그린 등 대부분의 컬러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 옷에나 매치할 수 있다. 수많은 스카프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옛날에 엄마가 했을 법한 실크 스카프이다. 모든 프린트를 일일이 장인이 찍어낸다는, 그래서 이를 액자에 넣어 예술작품처럼 감상하는 이도 있다는 에르메스 스카프를 보니 한숨만 나온다. 엄마는 옛날에 왜 저런 거 하나 사지 않았나? 새삼 원망스럽다. 에르메스는 최근 스카프를 한 사람들의 스트리트 컷을 촬영, 실크 스카프가 나이든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도산공원 앞에 있는 메종 에르메스 앞에 부스를 만들어서 스카프를 스타일링하는 거리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질 좋은 실크 스카프야말로 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산다고 해도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것 같으니 행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나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