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한 자루 그리고 종이 한 장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사람들의 얼굴에서 도시의 표정을 발견하고, 스치는 풍경 하나를 수백 개의 선으로 이어 담으며, 낯선 땅 뭉근해진 마음을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으로 바꾸는 요술을 부린다. 필요한 건 펜 한 자루 그리고 종이 한 장.::아티스트,드로잉,여행,상상,여행과 지도, 엘르걸,엘르,엣진,elle.co.kr:: | ::아티스트,드로잉,여행,상상,여행과 지도

ingo giezendanner(GRRRR)잉고 지젠다너 스위스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1998년부터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종이와 펜을 이용한 드로잉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길을 걷다 어떤 장면이 시야에 잡히면 곧 앉아서 드로잉을 시작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야 완성된 그림을 손에 들고 보면 수많은 디테일들로 가득 차 있다. 세심한 관찰과 생각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명상’과도 같다. 드로잉뿐만 아니라 벽화, 책, 전시, 비디오 클립 등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표현 중. 나의 여행 드로잉북 여행은 내 수많은 드로잉 소재 중 하나였다. 지난 출판물들에선 주로 여행 경로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연과 환경, 지역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여행 드로잉을 해왔는데, 이번에 출판한 책 에선 좀 다르다. 지리적으로 좀 더 체계적인 구획을 나누었고, 그를 통해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여행한 지역들(스위스에서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터키, 조지아를 거쳐 아제르바이젠)과 이동 경로 등을 함께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가령 기차 여행을 할 때 창밖의 나무, 빌딩, 땅거미 지는 풍경 등을 바라보며 마치 그 순간들이 점점 뿌옇게 변해 꿈 같은 이미지로 변하는 경험을 종종 하는데, 이런 특별한 나만의 심상과 감성을 이 책 한 권에 담고 싶었다. 드로잉을 좋아하는 이유 간단하다. 내 손 안에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니까. 이 간단한 이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의 여행 스위스는 상대적으로 모든 면에서 규모가 작고 세분화되어 있다.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마저도 그렇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어 여행을 한다. 전형적인 여행자의 도시들은 되도록 피한다. 파키스탄에 갔을 땐 뉴스를 통해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것들을 체험했다. 그곳엔 사랑이, 평화가, 본연적인 순수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로 가는 도중에 만난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 그 밖에 이스탄불, 맨하튼, 카이로 같은 대도시들도 나를 사로잡았다. 취리히에 머물곤 있지만 다소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알프스 등지의 산에 오르곤 한다. 여행 드로잉의 매력 길 위에서 나를 속박하는 모든 일들과 미래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채,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방랑자처럼 이곳 저곳을 떠돌며 그림 그릴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아티스트 미국 언더그라운드 코믹 아티스트인 로버트 크럼(Robert Crumb). 그의 특징은 바로 재미있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 , 을 정말 좋아한다. 시그너처 검은 펜 본래는 검은색 잉크펜을 사용했다. 색을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검은색과 흰 여백만으로도 내겐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무엇보다 빠르게 작업하고, 빠르게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표현하고 싶은 것 눈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내 드로잉은 무척 사실적이고 세밀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쩌면 나는 그보다 추상적인 구조와 패턴들에 더 심취해있다. 이런 내면의 모습이 사실적 표현과 묘사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가 보고, 느끼고, 많은 영감을 받으라고 전하고 싶다. 훌륭히 구획정리된 도시의 쇼핑 스트리트 같은 공간이 아닌 기차와 버스를 타고 굽이 굽이 돌아 걷고 또 걷는, 그런 다양한 감수성을 체득할 수 있는 여행을 권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가을이지 않나. 여행을 해야 할 때다. www.grrrr.net nigel peake나이젤 피크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그즈음 사실 난 드로잉과 온갖 ‘만들기’에 심취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졸업 후 앤트워프, LA, 포틀랜드, 상하이 등지에서 몇 차례 개인 전시를 가졌다. 그 후 해비타트(Habitat), 에르메스 등과 프로젝트 작업을 해왔다. 드로잉을 하지 않을 땐 사이클을 타며 주변을 산책하길 즐긴다. 물론 이는 다음 드로잉을 그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의 탄생 이 드로잉북은 사실 지난 몇 년 간 세계를 여행하며 그려온 드로잉의 모음집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페이지마다 굉장히 짧은 시간, 구체적 장소 등을 담고 있다. 드로잉의 매력 드로잉은 곧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이다. 깨끗한 흰 종이 한 장, 펜 한 자루, 물감 몇 통이 필요한 전부다. 이 작은 재료만 있으면 당신이 원하든 것은 무엇이든, 모든지 가능하다. 나의 여행 순수하게 사적인 여행이 아니라 해도 나는 일과 함께 많은 여행을 다닌다. 전시를 열거나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등의 많은 일들이 세계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기 때문. 나는 그동안 앤트워프, 상하이, 에딘버러, 뉴욕 등 수많은 도시에서 전시를 열었고, 그럴 때마다 굉장히 특별하고 사적인 나만의 방식으로 그 도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호텔을 나서면, 때때로 혹은 자주 길을 잃는 그 느낌마저 특별했으니까. 기억에 남는 여행 이 책에도 실로 수많은 도시에서의 여행이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에딘버러에서 부다페스트까지 했던 사이클 여행이다. 그 때 자그마치 28일동안이나 ‘야외’에서 생활했다. 사이클에 몸을 올린 채 들판과 숲과 언덕을 가르며 달렸다. 정말 잊지 못할 기억. 드로잉의 매력 내게 있어 ‘드로잉’은 어떤 사건이나 공간들을 잊기 전에 ‘기록’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식이다. 드로잉에는 사진보다 더 많은 것을 기록하고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느끼고 체험하고 기억에 남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모두 기록해둘 수 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내가 좋아하는 화가와 작가들은 아주 많다. 하지만 오히려 내게 가장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는 이들은 바로 뮤지션들이다. 요즘 심취해 있는 뮤지션은 매드립(Madlib),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등 너무 많아서 꼽기도 힘들 정도. 상상 속의 드로잉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드로잉들은 내가 실제로 갔던 공간들, 지역들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드로잉의 과정에는 늘 상상과 허구의 순간들이 편입되는 것도 사실. 몇몇 드로잉은 여행 후에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정확히 구체적 사실에 주관적 감상과 상상의 이미지들이 겹쳐 표현되곤 한다. 드로잉의 도구 주로 연필, 펜, 색연필, 물감 등 누구나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도구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편이다. 특히 색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색을 입힌 선들과 패턴들은 내가 여행했던 장소들과 여행에 얽힌 기억들을 풀어내는 데 굉장히 훌륭한 도구가 된다. 여행과 지도 이 드로잉북의 제목을 로 짓긴 했지만, 사실 어느 도시든, 장소든 간에 지도 없이 여행하길 권한다.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을 갖고 있다. 낯선 기차역에서 열차를 놓쳤을 때, 도시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평소엔 몰랐던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된다. 꼼꼼히 여행지의 정보를 일러주는 지도책은 손에서 놓은 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수많은 길을 헤매이며 무방비 상태로 여행해볼 것. 모든 순간 순간이 ‘서프라이즈’로 다가올 것이다. www.secondstreet.co.uk dimitri broquard드미트리 브로콰드 스위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아트스쿨을 졸업한 후 2001년 취리히에 동료 바스티안 오브리(Bastien Aubry)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카탈로그, 아티스트 북, 매거진, 포스터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디자인 작업과 개인적인 드로잉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폭넓게 활동 중. 여행 드로잉북을 만든 계기 작년에 파트너 바스티안 오브리와 함께 ‘Comix-Festival FUMETTO(www.fumetto.ch)’에 참가하며 드로잉을 그리게 됐다. 우리 전시는 ‘Goodbye Revolution’이라는 테마로 선보였는데, 존재하지 않는 무경계의 나라로 떠난 문화인류학적 여정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스위스의 한 소규모 독립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드로잉북을 출간할 기회를 잡게 됐다. 드로잉을 하는 이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니까. 사랑하는 도시 뉴욕과 베를린. 에너지로 넘쳐나는 도시들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늘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고 온통 주변엔 영감을 주는 것들 뿐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취리히도 예외는 아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살기에 적당한 규모를 갖춘 도시인 것 같다. 이 곳에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자전거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드로잉이나 페인팅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 외에도 불특정 다수의, 잠들어있는 내 본능과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모든 아티스트들을 좋아한다. 작업 방식 즉흥적인 영감을 통해 순식간에 작업을 완성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사소한 디테일까지 점검하는 스타일이다. 무엇이든지 한 번 처음에 시작하려고 할 때 굉장히 힘들게 발을 떼는 타입이기 때문. 하지만 한 번 작업을 시작해 몰입하면 순간 순간 즉흥적인 소스를 넣기도 한다. 드로잉 스타일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꿈의 한 장면, 상상속의 한 장면과 닮아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드로잉의 도구들 볼펜과 색연필, 형광펜 등의 간결한 재료들만을 가지고 드로잉을 완성했다. 특히 형광팬의 경우 처음 사용해보는 것인데, 내가 처음부터 표현하고자 했던 꿈결같은 동시에 버려진 듯한 세계를 완성하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됐다.이번 드로잉북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국가를 찾아 떠난 것과 같은 여행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직접적으로 드로잉을 통해 묘사된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실에 존재했던 바로크 시대의 유물같은 귀족과 기사들, 성, 모험담 같은 것들의 이미지에 근거해 표현한 것이다. 섬세한 펜 묘사와 거칠면서도 환상적인 형광펜의 색채, 고전소설에 나올 것만 같은 스케치가 전해주는 감상을 만끽해주길 바란다. www.flag.cc stephan marx스테판 막스 함부르크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31세의 아티스트. 1995년 손으로 만든 티셔츠와 각종 리미티드 소품들을 제작하는 ‘라우지 리빙 컴퍼니(Lousy Livin’ Company)’를 설립,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2004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소규모 독립 출판사 ‘니브스(Nieves)’와 다양한 진(zine)과 책을 출판해오고 있다. 첫 번째 여행 드로잉북 2007년도에 멜버른에서 출간된 여행 드로잉 진. 한 갤러리에 내 작업들을 보여주러 갔다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됐다. 멜버른에 머무는 마지막 날, 별다른 계획이 없던 우리는 소개받은 한 친구를 따라 그곳의 한 글로벌 인쇄전문업체에 방문했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진을 만들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특별히 무료로 진을 만들게 해 주었다. 나는 시드니를 여행하며 스케치북 안에 담아둔 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드로잉을 가지고 내 인생 첫번째 여행 드로잉 진 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드로잉 드로잉은 무엇보다도 좋은 친구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고, 간단하게 쉴새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도시 뉴욕과 도쿄. 수많은 사람들의 스쳐가던 얼굴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모두 다른 그런 신선함이 좋았다. 나만의 아카이브 그간 소규모 독립 출판사 ‘니브스(Nieves)’에서 여행 드로잉 진 시리즈를 5권 발간했다. 한정판으로 제작되었고, 비용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이른바 ‘로우-테크(low-tech)’인 이 진들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백과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좋다. 뿐만 아니라 내게 있어서도 지난 여행들을 기억하기 위한 최고의 아카이브다. 에 소개하는 이 진은 위의 5권 분량의 여행 드로잉 진 시리즈 중 뉴욕을 테마로 하고 있다. 2009년 6월 뉴욕에 한 달간 머물렀는데, 모든 것이 빽빽할 정도로 가득 들어찬 이 흥미로운 도시 앞에서 무언가를 그린다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이 책에 그린 사람들의 얼굴은 단지 얼굴 표정뿐만 아니라 뉴욕이라는 도시,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풍부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얼굴들 진 속에 담긴 얼굴들을 통해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결국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였다. 그곳의 문화와, 시간과, 쉴새없이 일어나고 무너지고 또 세워지는 다양한 표정들 말이다. www.s-marx.de*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