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사람이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김상만은 여유롭다. 막연한 선망을 차곡차곡 제 것으로 만들면서 여기까지 왔다. 멀티 플레이어란 호칭은 이제 부담스럽다. 그는 사람들이 지금의 김상만을 주목하길 바란다. 이번엔 스릴러다. |

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구상을 내가 한 건 아니다. ‘주말의 명화 대표님이 만들기 전 함께 영화를 해보자는 연락이 왔었다. 기획안이 괜찮았다. 초고도 완성도가 좋더라.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작업해 지금까지 온 거다.1999년도에 스릴러 영화를 찍을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미술감독 끝나고 난 뒤, 명필름에서 감독 한번 해 보라고 했었다. 당시 한국 영화 제작 풍토에 안 어울리는 SF스릴러 장르여서 2년 가까이 만든 시나리오를 접게 됐다. 이 그 이야기를 빌려온 건 아니다. 밝고 유쾌했던 전작 와는 다른 장르다.전작과 이번 영화를 아주 다르게 보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영화의 색채를 결정하는, 타이틀롤을 맡고 있는 배우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일 거다. 는 코미디 성격이 가미된 루저들의 누아르로 만들고 싶었다. 어찌 됐든 분명 밝은 성격의 영화였는데, 이번엔 좀 더 어두운 성격인 게 확실하다. 내 성향을 아는 분들은 이게 더 나답다고 생각한다. 미술감독 때의 결과물도 그렇고, 스릴러나 장르 영화처럼 색이 강한 영화들을 좋아해왔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조금 더 내 본질에 맞을 것 같다. 한 장르로 쭉 밀고 가려는 욕심은 없나.영화적 특성, 미술적인 요소가 적극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그게 스릴러나 호러처럼 어떤 장르로 아직 규정되어 있진 않다. 대표 장르야 자연스럽게 쌓이는 게 아닐까? 나랑 안 맞는다 싶은 장르는 있지. 전격 코미디라든지 아주 명랑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애와 DJ역할이 잘 어울린다.아이 엄마에다 베테랑 아나운서 출신의 DJ라는 설정이어서 처음엔 좀 더 나이가 있는 배우를 생각했다. 수애 씨가 너무 젊어서 아기 엄마 역할에 위화감이 들까봐 걱정 좀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적절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유지태가 또 한번 악역을 맡았다.지태씨를 선택한 이유가 두 가지다. 연기가 출중하다는 거야 모두들 아는 거니까 그건 빼겠다. 라디오 DJ를 협박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려 한다는 비현실성이나 자가당착에 빠진 최종적 논리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은 그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장르 영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 방에 들어가는, 순간적 위압감이 필요했던 거다. 유지태는 스크린에 서 있을 때 압도적이다. 그 두 이유에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지태 씨가 너무나 당연한 1순위였다. 오히려 너무 전형적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다가 첫 미팅을 하면서 생각을 굳혔다.유지태는 감독 경험이 있어서 캐릭터 설정할 때 주장이 뚜렷했을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전형적인 악인의 성격이었다. 목소리를 깔고, 말 끝날 때마다 ‘크크크…’ 비소를 날리는. (웃음) 시나리오 작가와 초고를 볼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어미를 고치는 거였다. 버럭버럭 외치며 말을 맺는 틀에 박힌 악인의 모습은 재미없잖아. 배우, 스태프들과 상을 고쳐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계획적으로 짜인 걸 선호한다. 그런데 이번엔 직관적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개입됐고, 배우들도 아무것도 없던 데서 만들어갔다. 물론 그 와중에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겠지.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많았나? 영화의 톤이 그렇다기보다 제작 할 때 이미 짜여진 것을 구현해내는 방식, 예를 들어 배우의 동선이나 호흡까지 관리하는 걸 피했다. 영화만 놓고 봤을 때 도리어 순수한 장르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장르 영화로선 전형적이지만 한국 영화의 틀은 벗어나려 했다. 적어도 원한, 복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를 배경으로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편집이 중요했겠다.따로 떨어진 두 공간 속에서 두 인물이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야기의 축이 한 번 꺾이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간에 서로의 공간을 뚫고 나가는 방식을 취했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시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동선이 복잡해지니 무리한 부분은 조금 있었다. ‘충무로의 멀티 플레이어’라고 불린다.그런 얘기 이젠 안 듣고 싶다. (웃음) 물론 그걸 피해 갈 순 없지. 엄연히 남아 있는 거니까. 솔직히 말해봐라. ‘멀티플레이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말 그대로다. 미술, 음악, 디자인처럼 여러 분야의 재능이 합쳐져 영화에 녹아들 수 있지 않나?맞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면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한 게 많았던 거다. 그런 과정이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데 수렴되는 것 같다. 다양한 요소들이 다 소양이 될 수 있겠지. 스태프들과 얘기할 때는 좀 거북스러워하기도 한다. 알고 있는 점이 많으니까. 내 생각을 좀 더 구체화 시켜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장점 아닐까? 수정하거나 설명할 부분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콘티를 그릴 수 있고, 음악감독님과도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전문용어’ 나왔다며 놀리기도 하지만. (웃음)‘스타일이었다’고? 과거형이다. 지금은 신중한 타입이란 말인가?아니다. 워낙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더 새로운 일을 벌이기엔 무리가 있다는 소리다. 새로운 다리를 걸치는 건 힘들 것 같다. 음반 사업도 아직 하고 있고 디자인 영역도 그렇고, 거기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감독을 하다 보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다른 것까지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음 영화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 이번 영화는 감독 역할 말고는 한 게 없는데, 이후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콘티, 음악, 이것저것 손 대보려고.지금까지 해온 영역 중 어떤 게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주나?가장 순수하게 즐거운 건 음악이다. 자신의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선보이고 현장에서 바로 반응을 느낀다는 점에서 연극배우와 비슷하다. 성공적인 무대였을 때야 가능하겠지만.(웃음) 교감되는 한 순간의 쾌감이 있다. 무대의 즐거움을 안다면, 배우도 해볼 만하겠다. 못할 건 없다. (웃음) 스스로 일을 벌이는 게 반이라면, 밖에서 던져주는 게 또 반이다. 감사하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 뭘 보고 일을 주는 건지. 아무튼 배우의 기회를 주신다면 마다하진 않겠다. (웃음)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걸 다 한 셈이다. 재능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림은 차치하고서라도, 음악은 그렇지 않다. 사실 연주 실력이 부족한 편이다. 무모함이 원동력이었다. 최상의 기준치를 두고 매진하기보다는 옆으로 가곤 했다. 내 정도 연주로 가능한 음악의 성격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음악만 해도, 항상 완벽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자기 편한 대로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테크닉적 완성도만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진 않는다. 그걸 알고 있어서 무모할 수 있었다. 지금 하고싶은 일은 뭔가?두 가지다. 묵혀놨던 곡들을 빨리 녹음하고 싶다. 솔로앨범 낼 것도 아닌데 녹음해서 어쩌겠다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 막연하지만 그 곡들을 영화와 접목시켜보는 건 어떨까 싶다.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하나?일단 재미있다. 마음 비우고 보러 가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