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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새벽의 20대 인생 대부분이 연극과 연기로 채워졌던 거 같다. 서른두 살의 당신이 돌이켜봤을 때 연기 외에 다른 걸 해보지 않았던 점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나? 연극 했을 때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니까 투잡으로 다른 걸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연기 말고 다른 걸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왜냐면, 좋았으니까. 단 한 번이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면 그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 같다. 좋으니까, 한다. 그렇게 인생을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살다 보니 1년이 가고 5년, 10년이 갔다. 그리고 좋은 인연이 계속 닿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욕심이 없는 편인가? 아니다. 물욕은 없는 편이지만 연기에 관해선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연기자 되기 위해선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욕심이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기에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는 편이다. ‘세월아 네월아’ ‘구름에 달 가듯이’, 이런 건 고수들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연기에 있어서 가장 냉철한 조언자가 있다면? 너무도 많다. 연극 같이 하고 영화 같이 하는 선배님들이 전부 다 조언자라 어느 한 분만 꼽긴 좀 그렇다. 굳이 정하자면 관객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연극할 때는 공연장에서, 영화 할 때는 인터넷 영화평으로 직˙간접적으로 와 닿는 조언들이 있다. 그런 것에 배우로서 고민을 하게 된다.
관객들은 <방자전>의 변학도를 그냥 재미있거나 독특한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에게 변학도는 애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을 것 같다. 그건 어찌 보면 연기자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태도인 거 같다. 어떤 인물이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해명하고 표현하는 게 연기자의 역할이니까. <방자전>의 원작 <춘향전>도 작자 미상의 작품이지 않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 속 변학도는 극 중에서 가장 큰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방자전>에서 순진무구하게 여자랑 자려고 공부했단 얘기를 몽룡에게 털어놓는 솔직한 남자로 그려진다. 시나리오가 워낙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해놔서 명확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변학도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거 같아 특히 더 좋았고.
잠깐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선, 캐릭터의 인생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준비하는 방식이 있다면? 일단은 시나리오 상에 나와있는 캐릭터가 입체적이든, 평면적이든,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가장 충실한 편이다. 그 인물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연민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표현할까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스물 대여섯 살 때는 ‘인물분석’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다. 내가 연기할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분석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작업하는 감독님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정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보통 그런 질문을 잡지에서 보거나 하면, ‘결혼해서 아이 가진 것’ 뭐 이런 대답들을 많이 하던데. 난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사실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굳이 대답한다면, 연기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난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한 편도 아니고 잘 놀았던 편도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닌 우유부단한 학생이었다가 연극을 처음 시작하면서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아니 사실 잠깐보다 조금 더 길게 생각했는데(웃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독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순간순간 집중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런 작품, 이런 커리어를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득보단 독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생각 같다. 작품 하나하나 맡을 때 마다 올인하다 보면 5년 후나 10년 후에 어떤 큰 그림이 나오겠지. 물론 궁극적으론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게 아주 큰 목표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인생을 대하는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 실제로 서른 살이 되면서 인생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맡겨보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서른 살 딱 되고 나서 노래방 가서 광석이 형님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면서 생각해봤다. 주변의 선배들 보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른 살을 맞이하더라. 누군가는 어깨에 더 큰 책임감을 얹기도 하고, 누군가는 더 편안해지기도 하고. 나는 반반이었다. 사실 좀 내가 많이 애매했다.(웃음) 서른 살이 된 나의 인생관이나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을 생각해봤더니, 그렇게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살려고 한다. 벌써 십 수년 째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지?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이를테면 소극장에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듣고 있는데, 그걸 같이 울고 웃고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게 바로 연기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고. 스타가 돼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싶단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1년을 못 버틸 거다. 정말 재미있고 신나니까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도 만나게 되는 것 같고.
연기자로서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 모든 배우들의 로망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순재 선생님이나 신구 선생님처럼 오랜 시간 훌륭한 배우로 사는 것. 누군가 잭 니콜슨처럼 그 연배에도 섹시한 남자 역할,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데, 나 역시 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엉뚱하고 독특한 역할 말고, 좀 멋진 역할을 해볼 의향은 있나? 아니, 왜? 난 변학도 멋지던데.(웃음) 왜 그렇게 다들 변태로만 보는지 모르겠다. 변학도, 솔직하고 괜찮지 않나? 숨김 없고 가끔 또 순진하기도 하고. 내 입으로 이런 얘기하려니까 쑥스럽긴 하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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