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연기? 좋으니까 한다.

입신양명의 목표가 최대한 많은 여자들과 자기위해서이며 독특한 여자라면 껌뻑 죽는, <방자전>의 ‘변학도’는 송새벽을 한국 영화계의 히든 카드로 만들어줬다. 올 하반기 그는 <시라노-연애조작단> 등 네 편의 영화에서 각기 다른 송새벽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프로필 by ELLE 2010.10.04


벌써 여섯 편째 영화를 찍고 있다. 이제는 영화 촬영 현장이 좀 편해졌나?
연극을 10년 정도 하다가 장편 영화로 처음 데뷔한 것이 <마더>였다. 촬영 첫날에 무척 긴장되고, 현장은 막 빠르게 돌아가는데 나 혼자 긴장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연기하다가 굉장히 큰 스케일에서 연기하려니까 왜 긴장이 안 됐겠나. 봉준호 감독님은 나의 그런 점을 배려했고, 다른 점을 끄집어내줬다. 안 지는 얼마 안 됐는데 대화하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느낌도 들고(웃음), 그런 친숙함에 금방 매료됐다. 그러다 보니 긴장을 인식할 틈도 없이 어느새 촬영을 마치게 됐다. 다른 작품에서도 현장에서 감독님과 배우들과 친해지다 보니 또 스윽 지나가게 되더라.

앞으로 하반기에 개봉할 많은 영화에서 ‘송새벽’을 보게 된다. <시라노-연애조작단>은 물론이고 <해결사>, <부당거래> 그리고 내년 여름 개봉할 <제7광구>까지. 각각 다른 감독들과 작업 스타일을 맞춰가는 과정이 어땠나?
처음에는 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감독님들과 호흡을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걱정스러웠다. 촬영 들어가기 전 가장 많이 걱정한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건 어떤 감독님이든 스타일만 조금 다를 뿐이지 한 분야에서 자기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란 점이다. 막상 촬영 들어가보니 즐겁고,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다. 연기자들은 다른 작품 할 때마다 새로운 배우들과 호흡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거 같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방자전> 개봉 이후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
굉장히 많은 것이 달라졌다. 변학도 역을 하고 나서 일단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다. 그리고 다른 감독님들과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래서 김대우 감독님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연극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또 다른 작품들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방자전>에서 변학도의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 이후에도 비슷한 역할을 많이 제의 받았을 것 같은데?
사실 나로서는 모두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연기하긴 했지만, 나중에 관객들이 보고 어떻게 평가해줄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순전히 관객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니까.

변학도는 사실 좀 무섭고 섬뜩한 면도 있어서…
변태 같다는 얘기 하려는 거 아닌가?

아니다! 내 말은, 새 영화 <시라노-연애조작단>에서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는 거였다. 왠지 이번엔 여자 관객들도 좋아할 만한 귀여운 면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
아, 그럼 정말 실망하실 텐데! (웃음) 내가 맡은 역할은 연애 쑥맥남 ‘현곤’이다. 극 초반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다가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 연애 코칭을 의뢰하게 된다. 시나리오도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명확해서 연기하기 편안했다. 만약 나에게 귀여운 매력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는데, 일단 개봉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판단해줬으면 좋겠다.

<시라노-연애조작단>의 김현석 감독이 특별히 연기 톤이라든가, 요구한 사항이 있다면?
감독님이 직접 ‘새벽씨가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하는 식의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시진 않았다. 내가 스스로 캐릭터를 찾아가게 열어주셨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송새벽’이란 연기자가 자기 것을 찾아가게 배려해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다. 감독님 딱 보면 얼굴에 장난기도 많고, 사람을 되게 편하게 해주시는 스타일이다. 나뿐 아니라 함께 출연한 많은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게 바로 ‘편안함’일 거다.

누구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엔 관심이 많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그냥 단순히 ‘재미있어서’인가?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고 유쾌했다. 사실은 그게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전부다. 연애라는 게 가슴도 콩닥콩닥 설레고, 남 연애하는 얘기도 들으면 재미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현곤’이란 캐릭터에도 많이 배어 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캐스팅만 해준다면 할 의향이 100% 있었다.

이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실제로도 연애 코치가 필요한 타입은 아닌가?
에이, 이제 서른두 살인데 이 나이에 연애 코치 받으면 좀…남들이 욕할 거다. 자기 삶 자기가 알아서 개척해야지.(웃음)


송새벽의 20대 인생 대부분이 연극과 연기로 채워졌던 거 같다. 서른두 살의 당신이 돌이켜봤을 때 연기 외에 다른 걸 해보지 않았던 점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없나?
연극 했을 때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니까 투잡으로 다른 걸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연기 말고 다른 걸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왜냐면, 좋았으니까. 단 한 번이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면 그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 같다. 좋으니까, 한다. 그렇게 인생을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살다 보니 1년이 가고 5년, 10년이 갔다. 그리고 좋은 인연이 계속 닿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욕심이 없는 편인가?
아니다. 물욕은 없는 편이지만 연기에 관해선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연기자 되기 위해선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욕심이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기에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는 편이다. ‘세월아 네월아’ ‘구름에 달 가듯이’, 이런 건 고수들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연기에 있어서 가장 냉철한 조언자가 있다면?
너무도 많다. 연극 같이 하고 영화 같이 하는 선배님들이 전부 다 조언자라 어느 한 분만 꼽긴 좀 그렇다. 굳이 정하자면 관객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연극할 때는 공연장에서, 영화 할 때는 인터넷 영화평으로 직˙간접적으로 와 닿는 조언들이 있다. 그런 것에 배우로서 고민을 하게 된다.

관객들은 <방자전>의 변학도를 그냥 재미있거나 독특한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말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에게 변학도는 애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을 것 같다.
그건 어찌 보면 연기자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태도인 거 같다. 어떤 인물이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해명하고 표현하는 게 연기자의 역할이니까. <방자전>의 원작 <춘향전>도 작자 미상의 작품이지 않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 속 변학도는 극 중에서 가장 큰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방자전>에서 순진무구하게 여자랑 자려고 공부했단 얘기를 몽룡에게 털어놓는 솔직한 남자로 그려진다. 시나리오가 워낙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해놔서 명확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변학도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거 같아 특히 더 좋았고.

잠깐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선, 캐릭터의 인생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준비하는 방식이 있다면?
일단은 시나리오 상에 나와있는 캐릭터가 입체적이든, 평면적이든,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가장 충실한 편이다. 그 인물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연민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표현할까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스물 대여섯 살 때는 ‘인물분석’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다. 내가 연기할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분석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작업하는 감독님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정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보통 그런 질문을 잡지에서 보거나 하면, ‘결혼해서 아이 가진 것’ 뭐 이런 대답들을 많이 하던데. 난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사실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다. 굳이 대답한다면, 연기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난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한 편도 아니고 잘 놀았던 편도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닌 우유부단한 학생이었다가 연극을 처음 시작하면서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아니 사실 잠깐보다 조금 더 길게 생각했는데(웃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독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순간순간 집중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런 작품, 이런 커리어를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득보단 독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생각 같다. 작품 하나하나 맡을 때 마다 올인하다 보면 5년 후나 10년 후에 어떤 큰 그림이 나오겠지. 물론 궁극적으론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게 아주 큰 목표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인생을 대하는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 실제로 서른 살이 되면서 인생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맡겨보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가?
서른 살 딱 되고 나서 노래방 가서 광석이 형님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면서 생각해봤다. 주변의 선배들 보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른 살을 맞이하더라. 누군가는 어깨에 더 큰 책임감을 얹기도 하고, 누군가는 더 편안해지기도 하고. 나는 반반이었다. 사실 좀 내가 많이 애매했다.(웃음) 서른 살이 된 나의 인생관이나 내가 하고 있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을 생각해봤더니, 그렇게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살려고 한다.
벌써 십 수년 째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지?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지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다. 이를테면 소극장에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듣고 있는데, 그걸 같이 울고 웃고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게 바로 연기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고. 스타가 돼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싶단 마음으로 시작했다면 1년을 못 버틸 거다. 정말 재미있고 신나니까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도 만나게 되는 것 같고.

연기자로서 궁극적인 꿈이 있다면?
모든 배우들의 로망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순재 선생님이나 신구 선생님처럼 오랜 시간 훌륭한 배우로 사는 것. 누군가 잭 니콜슨처럼 그 연배에도 섹시한 남자 역할,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데, 나 역시 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엉뚱하고 독특한 역할 말고, 좀 멋진 역할을 해볼 의향은 있나?
아니, 왜? 난 변학도 멋지던데.(웃음) 왜 그렇게 다들 변태로만 보는지 모르겠다. 변학도, 솔직하고 괜찮지 않나? 숨김 없고 가끔 또 순진하기도 하고. 내 입으로 이런 얘기하려니까 쑥스럽긴 하지만. (웃음)

Credit

  • 글 서동현
  • 사진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