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남자를 만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송승헌은 지금껏 '모든 여자들의 남자'였다.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였으니까. 아직도 '낭만적 송승헌'을 그리는 이들에게 조금 놀라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무적자>의 '영춘'은 그에게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해줬다. 물불 안 가리는 다혈질에, 피 끓는 의리로 무장한 거친 남자다. |

의 송해성 감독과는 11년 전 에서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로 처음 만나지 않았나. 지금 각자 인정받고 있는 위치에서 다시 만났을 때, 감회가 새로웠겠다.그런데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꽤 많다. 송해성 감독님 역시 기억을 잘 안 하려고 하신다. 감독님은 자꾸 지우려고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웃음) 농담처럼 내가 “그걸 왜 쑥스러워 하시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감독님이 같이 술 마시면서 “우린 예전의 송해성도, 송승헌도 아니다” 뭐 그런 얘기 하고 그랬다.의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춘’이를 연기했던 게 정말 신났던 것 같다. ‘영춘’이가 대체 어떤 캐릭터기에 그렇게 재밌었던 건가?영춘이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가장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물론 나머지 세 명의 캐릭터들도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영춘’이는 기존에 다른 작품들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여태까지 나는 가족간의 관계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굴레 때문에 내가 모든 걸 다 끌고 짊어지고 가는 인물들을 맡았다. 어떻게 보면 ‘쟤 정말 힘들게 산다,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였다. 반면 ‘이영춘’은 주진모씨와 김강우씨가 연기한 두 형제가 만들어내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한 발 물러나 혼자 놀 수 있는 캐릭터다. 내 마음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굉장히 자존심이 세면서 활달하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보면 처음과 달리 망가진 모습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통쾌하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총도 실컷 쏴보고.(웃음)여태껏 주로 감정을 삭이고, 삼키는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좀 시원하게 내지르게 되나?맞다. 예전 캐릭터들이라면 주변 상황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 안 하고 삼키고 그랬을 거다. 사실 연기하면서도 가끔 답답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번엔 시원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뱉었던 게 좋았다.그래도 이영춘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늘 마냥 신날 수 만은 없었을 것 같다. 반대로 이영춘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이영춘은 북한 특수부대원 출신의 잘나가는 무기 밀매상, 겁 없는 행동대장이다. 극 초반의 카리스마와 물불 안 가리는 성격, 그리고 친구에 대한 의리 있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런데 이 모습과 후반의 모습이 확연한 차이가 난다. 3년 후 망가진 ‘이영춘’을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감독님이 후반 장면을 촬영하던 날, 모니터를 하시더니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며 찍지 말자고 하시더라. 분장으로 가릴 수 없는 눈빛이나 피부 톤이 아직 3년 후의 모습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눈빛도 탁하게 만들고, 끊은 지 5년 된 담배도 다시 피우라고 하면서 “누가 봐도 한눈에 망가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래서 한 보름 정도 내가 나오는 신을 안 찍고 기다렸다. 영화가 완성되고 기술 시사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저런 모습 때문에 감독님이 날 기다리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시간에 쫓겨서, 해야 하는 다른 일들 때문에 서로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지금보다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이번 영화는 네 명의 캐릭터가 극을 같이 이끌어나간다. 배우들끼리도 영화에 대해서 많이 대화하고 조율을 해야 했을 텐데?정말 많이 했다. 촬영 가기 전부터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같이 분석하고 준비도 많이 했다. 송해성 감독님이 배우와 대화를 많이 하시기 때문에 서로 의견 교환도 활발했다. 감독님이 고집하는 부분, 배우들과 생각이 다른 부분을 서로 맞춰보려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작품 보다 대화를 많이 했다. 그러다 서로 싸우고 삐치기도 하고, 또 풀어주고 이렇게 친형제처럼 6개월 가까이 지냈다.는 액션 누아르의 느낌보다 정통 드라마가 더 강조된 영화 같다. 그게 원작과의 확연한 차이점인가?우리 영화는 이라는 원작이 있지 않나. 하면 주윤발의 쌍권총, 장국영의 멋진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원작을 똑같이 흉내만 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감독님은 우리 나라 정서에 맞게 드라마를 강화하자고 얘기하셨다. 네 명의 인물들이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드라마에 포커스를 맞췄다. 어떻게 보면 액션을 그 드라마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에 비해 더 화려하고 멋진 액션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액션이 처지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를 강화한 게 더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로 인해 배우 송승헌이 가장 크게 얻은 점이 있다면?그 어떤 작품보다도 많은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일단 총 조립과 분해를 비롯해서 총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또 처음 시나리오에는 피아노 치는 장면도 있어서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 같은 경우는 실컷 배웠더니 편집되긴 했지만(웃음) 이런 표면적인 준비도 물론 열심히 했지만, 사실 이 영화 하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대본 연습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많이 준비했다. 거의 매일 매일 감독님과 촬영 두 달 전부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웃음)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처럼 모든 배우들이 열심히 함께 고민하고 했다. 그런 노력들이 영화에 보여질 것 같다. 20대 때는 맡은 역할들 때문인지 몰라도 항상 나이에 비해 더 어른스럽고 성숙한 느낌이 있었다. 오히려 요즘 예전보다 더 어려진 것 같단 얘기 듣지 않나?그건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게 조금 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엔 뭔가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걸 꺼렸다. 정작 내 성격은 안 그런데, 누군가와 처음 보는 자리에서는 괜히 말이 없어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드는 생각은,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서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거다. 이왕이면 누군가 나를 만났을 때 한 마디라도 좋은 얘기 해주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그게 가식적이든 형식적이든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실 내 성격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고집 세고 하기 싫은 거 절대 안 하는 다혈질이다. 많은 분들이 작품 속에 내 모습 때문인지 이런 성격을 전혀 상상 못하는 것 같다. 난 정말 B형의 안 좋은 면을 다 가지고 있는데!(웃음) 작품 속에서 부드러운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웃음) 그래도 예전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됐다.배우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송승헌과 송승헌이 연기하고 싶은 송승헌은 차이가 큰 편인가?영화 에서도 거친 남자로 나왔고, 드라마 에서도 가족들을 위해 조직에 몸 담은 남자로 나왔다. 사실 에서는 지금도 직업이 헷갈릴 정도의 만능인이긴 했지만.(웃음) 어쨌든 이번 작품 역시 남자다운 거친 모습을 연기하게 됐다. 그래서 팬들은 내가 를 찍겠다 했을 때 반대를 했다. 예전 나 같은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시는데, 서른이 넘어가면서 그런 모습들을 바꿔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은 어떻게 보면 이런 거칠고 남자다운 모습의 캐릭터인데, 팬들과 대중이 원하는 건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 같다. 그런데 사실 내 실제 성격과 많이 다른 그런 자상한 남자의 캐릭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현실과 타협을 한 걸 수도 있는데, 다음 드라마 속 캐릭터는 좀 더 로맨틱한 남자다. 까칠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로맨틱한 남자를 연기하게 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부드러운 캐릭터를 많이 해와서 거친 모습을 연기하면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는 진짜 남자들의 영화다. 송승헌이 생각하는 진짜 남자란 어떤 남자인가?(한동안 생각에 잠기다) 친형이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데, 형을 보면서 요즘 느끼는 점이 많다.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가정의 가장으로 충실하게 식구들 돌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누구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쉬운 일 같지가 않다. 남자로서 책임감 있게 가족을 이끌고 행복을 느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형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정말 남자답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에게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터프하고 거친 것이 진짜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남자, 특히 자신의 가정을 제대로 지킬 줄 아는 남자가 진짜 남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