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무한 크리에이티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낡은 것, 구태의연한 것, 어제까지 해오던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 경계를 넘나들며 놀이와 직업 사이에서 삶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이들.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쉽게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 인텔과 바이스가 공동 주최한 ‘The creators project’에 참여한 10인의 아티스트와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조합하고 재창조해내는 8인의 무한 크리에이티브.::최정화,송호준,장기하,이윤정,이현준,니키 리,버버리 프로섬, 티아이포맨,라코스테, 프레드 페리 ,엘르,엣진,elle.co.kr:: | ::최정화,송호준,장기하,이윤정,이현준

HOI JEONGHWA. pop artist회화 전공, 1987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그의 작품은 홈페이지(choijeonghwa.com)에서 더 볼 수 있다. 이태원 골목길엔 신비로운 건물이 있다. 시멘트 벽, 구슬 샹들리에, 옥상의 경찰 마네킨이 방종한 듯 조화로운 곳,‘가슴골 라운지’다. “작품 창고 겸 젊은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에요. 이곳은 다 같이 쓰는 게 어울리지 않나요? 화장실의 구슬들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꿰맨 거예요.” 이곳의 주인이자 팝 아티스트 최정화. 그가 성큼성큼 들어서며 말을 던졌다. 그는 80년대 후반 미술계의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해 건축과 공공미술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그의 크리에이티브는 여전히 넉넉하지만 이를 꺼내 쓰는 마음엔 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엔 아이디어를 던지고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시간을 좀 더 ‘뜸들이기’를 해죠. 아이디어가 바로 튀어나오면 나를 의심해요.” ‘하하하’ ‘모이자’ ‘해피 투게더’ 등 그간의 프로젝트를 볼 때 그는 외부의 우연 요소들(사물이든 사람이든)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결과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은 중국에서 풍선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바람을 넣었다가 빠지고 터지는 것까지 지켜보는 거죠. 생활 속 물건들이 곧 미술이라고 봐요. 나는 디지털도 안 쓰거든요. 하이테크가 아니라 로테크죠. ‘눈이 부시게 하찮은’ ‘치밀하게 엉성한’, 이게 내가 의도하는 거예요.” 인터뷰 중 가슴골 라운지는 저녁 파티 준비로 분주했다.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오프닝 파티를 이곳에서 한다고 했다. 이들을 물끄러미 보던 최정화가 말했다. “성공하는 전시가 어떤 건지 알아요? 아주머니들이 반응하는 전시에요.” flashObject2('winTop','/elle/svc/elle_admin/etc/Sub_Video_Player.swf', '100%', '320', 'flvpath=rtmp://movie.atzine.com/vod/REPOSITORY/2010/10/27/MOV/SRC/01AST022010102793445014927.FLV',','transparent'); CHANG KIHA. MUSICIAN 지난해 장기하와 얼굴들로 데뷔, 곧 일본에서 1집 라이센스 앨범 발매 예정이며 현재 2집 준비중. 지난해 그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분명 가수긴 한데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신기해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가수. 그 시절 숱하게 받던 질문 중 하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거나 힘들지 않냐는 거였다. 그는 덤덤하게 아니라고, 별일 없이 산다 했다. 빈틈은 어느 날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잠시 스케줄이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하지만 여전히 좋은 음악을 듣는 게 제일 재미있고, 안 좋은 음악을 듣는 게 가장 괴로워요. 정말 음악과 먹는 것 외에 관심사가 없어요.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여전히 즐거운 건 또 있다. 바로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그걸로 무대를 누비는 것. 두 번째 앨범도 조급해하지 않고 그 어느 날에 준비된 무엇을 보여줄 작정이다. “생겨 먹은 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나는 내가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지난해에는 좀 부풀려진 측면도 있었죠. 내 음악이 특별히 창조적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워낙 한정돼 있다 보니 그게 아닌 게 두드러져 보였던 거겠죠.” 그는 아직 크리에이티브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그 무엇을 해내고 싶을 뿐. 지금까지 좋아해온 음악들이나 다른 뮤지션들에게 꽤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마음에 이제는 그걸 갚아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빛나는 크리에이터는 폴 매카트니에요.” YE RANJI. fashion designer2009 S/S 서울컬렉션 신진디자이너쇼로 데뷔, 보아 4집 의상 담당, 현재 2011 S/S 컬렉션 준비 중. 패션 디자이너 예란지와 그녀의 브랜드 ‘센토르’. 이들은 보이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쉽사리 알려주지 않을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대중은, 또 미디어는 패션 디자이너 예란지에게 매혹당하나 보다. 그녀는 서울컬렉션 신진디자이너쇼를 통해 데뷔했고, 세 번 연속 쇼에 참여한 후 제일 먼저 그 그룹을 졸업했으며, 얼마 전엔 가수 보아의 의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금 2011 S/S 컬렉션을 만들고 있어요. 서울컬렉션 메인 쇼에는 처음으로 서는 건데 준비 시간이 넉넉지 않아 걱정이에요. ‘진실이 뭘까? 나를 포장하는 것도 진실, 결국 아름다워지는 허상도 진실.’ 여기서 출발해 풀어나가는 중이에요.” 그녀는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내 옷이나 쇼에 대해 피드백이 없었다면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혹스러울 때도 있어요. 내 옷에 대해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단어들의 조합을 보기도 하니까요. 한편으로는 내가 만들어놓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래서 예란지는 아이디어를 순방향으로 풀어내기보다 세 번 정도 트위스트하려고 한다. 이왕이면 사람마다 자기 방식대로 볼 수 있도록. “어차피 모든 사람이 다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생각’하고, 그 때의 생각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잖아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기술적인 차이는 별것 아니에요.” PETER LEE. GAME MAKER2000년 ‘GAME LAB’ 창업. 2006년 ‘INSTITUTE OF PLAY’ 설립.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이자 ‘놀공발전소’ 소장. ‘놀공발전소 1호기’ ‘잠재력 담당’ ‘활력.’ 피터 리의 명함에 적힌 몇 개의 단어들은 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피터 리는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게임은 컴퓨터와 모니터라는 단순한 사각 프레임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홍대 앞 작은 골목에 문을 연 놀공발전소는 그 전초기지. 장난감들이 널려 있고 칠판 가득 낙서인지 회의 흔적인지 구분이 불분명한 메모가 가득하고 늘 먹을거리가 넘치는, 별 용건 없이 들린 손님이 오히려 더 환영받는 공간이다. 잠재력을 담당하는 1호기에서 13호기까지 세상과 호흡하는 게임을 만들고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는 비밀 병기들. 그렇게 만들어낸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공간. “크리에이티브 이야기를 할 때 꼭 ‘등가교환’이란 말을 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내 안에 들어간 것이 변환돼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내겐 공간이나 일상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결국 경험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가 항상 지키는 원칙이 있다. 절대 야근하지 않고 주말에 일하지 않는 것. 또 하나 조금은 생경한 구호, 바로 ‘노력 금지’다. “크리에이티브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와요. 노력하지 말란 건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걸 억지로 시도하지 말자는 거예요. 그리고 작은 관심사에서부터 시작해 뭐든 해보는 거죠. 그만두기 전까지는 실패한 게 아니니까. 크리에이티브는 나이와도 상관없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의 문제이자 정신적인 영역이에요.” DJ SOULSCAPE, music producer & dj1998년 데뷔, (2002) (2003) (2007) (2008) 등 정규 앨범, 싱글, 컬래버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이는 중. “작업한다고 며칠씩 처박혀 있진 않아요. 그때그때 놀러 다니면서 재충전을 잘하죠. 음악이 보이지 않는 예술이다 보니 더 많은 상상력이 더 다양한 차원에서 필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을 위해 감성을 채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진 않아요.” 13년차 DJ 소울스케이프는 선비 같은 청년이다. 모두가 전방위 크리에이터를 외치는 요즘, 한눈팔지 않고 기복 없이 양질의 디제잉과 음악적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음악은 여전히 그에게 새롭고 또 그를 즐겁게 한다. “불규칙한 시각적 정보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음을 계산해낸다든지, 사운드의 시간과 주파수 영역의 함수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많아요. 곡이라는 재료 선정부터 변형까지 디제잉은 미디어아트의 크리에이티브와 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크리에이터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음악에 있어서 훌륭한 아이디어들은 이미 70년대에 대부분 나왔어요. 신중현, 김희갑, 심성락 등의 음악을 들으면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순간의 것에 영속성을 줄 수 있는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극적이고 새롭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슈퍼노말’이라 불리는 창작의 감성이 주목받는 것도 같고요.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오리지낼러티’는 어느 한순간의 번뜩임만으로 얻어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SONG HOJUN. ARTIST & ENGINEER 등 기술과 감성을 융합한 작품을 선보이는 엔지니어이자 아티스트. 운영체제 하나 제대로 설치하지 못하던 불량 공대생은 졸업을 앞두고 새로운 발견을 했다. ‘이거라면 내가 하고 싶던 말들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겠구나.’ 기술의 영역을 아트와 결합한 미디어아트라 불리던 분야였다. 그에게 기술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택한 수단이다. 정작 세상과 나누고 싶은 건 언제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다. 지금의 송호준을 널리 알린 역시 누구나 인공위성을 쏠 수 있고 그 행위로 희망을 담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그에겐 훨씬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컴퓨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처럼 그 모두가 굳이 기술이라기보다 삶의 일부잖아요. 중요한 건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장르가 나뉘어진 삶이 아니라 알고자 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에요.” 그는 천재를 믿지 않는다. 타고나길 정상인 이상의 뇌 활동이 일어나는 이들이 천재라는 병을 앓고 있는 거라면, 멋진 창작자는 무조건 많이 관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데이터베이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조합해내는 사람이야말로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크리에이터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왜 굳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야 하냐고. 그걸 쏘면 돌아오는 ROI(투자수익률)는 대체 뭐냐고. 그들에게 그 또한 반문한다. 당신은 왜 종교를 믿냐고. 산을 오르고 교회에 갈 때도 돌아오는 수익률을 생각하느냐고.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위한 1억원이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 스폰서라는 방법 대신 티셔츠를 판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그가 쏘아 올릴 인공위성은 그의 꿈이자 모두의 희망이기에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 기술의 틈새를 무한한 감성으로 채우며 공학자와 아티스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어느 몽상가의 유쾌한 믿음. SUH SANGYOUNG. fashion designer2004 S/S 컬렉션으로 데뷔, 현재 에스유에이치컴퍼니를 운영 중이며 서울컬렉션 멤버로 참여 중. 크리에이터와 기술자, 어쩌면 양끝에 있는 것 같은 두 가지 키워드. 놀랍게도(!) 패션 디자이너 서상영은 이 두 가지 자질을 같이 가지고 있다. “옷은 만들면 돼요. 사진도 찍으면 되잖아요. 다만, 절대적인 미 대신 다양한 미의 양식과 관점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어떻게 나의 고유의 미를 보여주느냐 이거죠.” 그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뜬구름도 팽팽히 당겨 지상으로 내려준다. “마음이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하죠. 하지만 순수하게 내 머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훌륭한 결과물이라 할 순 없거든요. 오히려 정보가 점점 더 중요해져요. 어차피 시대 흐름이 있고, 그것과 완전히 동떨어지는 행보는 불가능해요. 자식이 아버지를 닮듯, 일에서도 아버지가 있지 않겠어요? 이걸 인정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 남성복의 새 세대를 대표하고 수많은 팬을 둔 서상영이 이런 얘기를? 아니, 그는 오히려 더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아야 한다. 크리에이티브와 패션디자인 작업에 대한 그의 신념엔 힘이 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커뮤니케이션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와도 흔쾌히 소통하는 그이기에 더더욱.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규정 짓는 아이덴티티와 타인이 불러주는 게 맞아야겠죠? 하지만 프로는 푸념할 필요는 없어요. 내 크리에이티브가 잘 안 통한다 싶으면 딴 데서 해야죠. ” LUMPENS. art DIRECTOR광고에서 뮤직 비디오, 전시 및 공연, 영상 등 비주얼에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한다. “이제 디자이너가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요. 중요한 건 나만의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영상과 디자인, 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주얼 작업을 하는 룸펜스의 최용석은 여지껏 수능시험 외엔 억지로 해본 일이 없다. 어쩌면 진짜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춤을 췄다. 음악은 물론 워낙 움직임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찾아낸 것이 영상이었다. 영상이라면 원하는 음악에 그림을 넣어 움직이게 만들고 하나의 유기체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가능했다. “과제 대신 골방에서 뭔가 하고 있으면 교수님들이 혀를 차면서 ‘으이구, 이런 룸펜 같으니’ 하셨는데 그게 어울리는 것 같고 괜찮았어요. 내게 룸펜은 전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에요.” 대학교 3학년 때 만든 EE의 뮤직비디오를 비롯 그때의 골방 작업은 결국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야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게 당연한 시대. 모두가 크리에이티브를 논하는 시대. 그 또한 모든 주파수를 비주얼 아웃풋에 맞춰 생각하지만 아직은 피곤보다 재미가 더 크다. 새로운 것을 짜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고민 자체를 즐긴다. “아직 내 색깔을 찾는 중이지만 꼭 집어넣고 싶은 건 있어요. 유머와 룸펜스러운 것. 속물적인 부르주아가 되기보다 가장 멋진 룸펜이 되고 싶어요.” 이제 그의 꿈은 익숙한 네모 프레임을 점차 벗어나 궁극적으론 자신만의 공연을 만들어 세계 투어를 하는 것이다. 이미 사비를 털어 시작한 공연은 그래서 그의 꿈이자 미래다. NIKKI S. LEE. artist & filmmaker 1999년 첫 개인전. 1997년~2001년 시리즈 작업, 2002년~2005년 시리즈 작업, 2006년 다큐멘터리 발표. “크리에이티브는 어떤 분야에나 존재해요.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각각 다른 방법론을 적용하는 거죠. 예술 안에서도 분야가 나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의 유무예요. 그리고 사진이냐 혹은 다른 미디어냐, 이건 부수적이죠.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적당한 도구를 고르는 거니까요.” 니키 리와 함께 학부에서 사진을 전공한 동기와 선후배들은 지금 한국 패션 사진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같은 길을 걷는 대신 뉴욕으로 훌쩍 떠났다.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비롯해 개인 작업들을 했고, 그녀의 작품들은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 뮤지엄 등에 전시됐다. 뉴욕에서건 서울에서건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작품을 얘기하고, 전시장에 있는 그녀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전문 비평과 대중의 반응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둘 다 중요해요. 나 이외의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내 의도가 전달됐는지 확인한다는 측면에서요.” 지금까지는 자신이 의도한 바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 그녀의 직관과 집중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작업 환경이나 새로운 테크닉 같은 것들은 니키 리에게는 매우 가변적인 요소다. 그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 순간의 자신에게 집중한다.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기를,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늘 바라죠. 하지만 사실은 내가 생각하고 경험했던 것들이 조합돼서 나오는 거예요. 예술가는 지식인이 아니에요. 머리로만 작품을 만드는 건 좋지 않아요.” EE. TOTAL ARTIST 1995년 삐삐밴드로 데뷔한 가수이자 스타일리스트 이윤정과 설치미술가이자 음악 프로듀서 이현준이 뭉친 듀오. 음악에서 비주얼, 퍼포먼스까지 장르 구분 없이 시도 중.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어떻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본 거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재미있는 걸 잔뜩 할 수 있겠구나.” 15년 전 삐삐밴드로 이름을 알린 이래 가수 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던 이윤정과 조소를 전공한 설치미술가이자 음악 프로듀서 이현준. 음악과 미술, 패션을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의 공통 관심사는 그들을 커플로, 더 나아가 평생을 함께할 부부라는 인연으로 맺어주었다. “굳이 비주류에 집착한다기 보단 무대를 가리진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죠.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있고 함께 즐길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들은 이른바 토털 아트를 지향한다. 즉흥적인 퍼포먼스든,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패션쇼든, 영화든, 책이든, 여태껏 해보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장르 구분 없이 일단 함께 덤벼볼 생각이다. “크리에이티브라는 것도 어찌 보면 네 살짜리 꼬마가 바닥에 그림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누구에겐 예술이 되고 또 누구에겐 단순한 낙서처럼 보이는 거겠죠.” 그들은 곧 런던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그 곳에서 또 작은 클럽에서 일하며 함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딱, 지금처럼만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생각이다. “우린 둘 다 아직 생각이 젊으니까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해요.”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