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다듬고 칠하고 그리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장철수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후배들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10년 동안,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웠다. 오랜 공백을 인내하고 세상에 나온 데뷔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파국을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묘사한 회화다. 마땅한 것과 꺼려야 할 것들의 목록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덧칠해가면서, 장철수는 지금 자신만의 화법을 완성해가고 있다. |

기자 간담회에서 시를 읊었다. 그때 봐서 알겠지만,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칸에도 다녀왔고 부천에서도 상을 탔는데 나나 영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 한국에 참 사건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뉴스가 금세 확확 바뀌잖아. 기자 시사도 다른 영화보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이렇게 묻히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개봉도 거의 1년 정도 미뤘다.그렇다. 개봉관 잡기도 어려웠지. 메이저 배급사에서 지원받고 싶었다. 관심은 많이 가져줬는데 자신들이 해 오던 것과 달랐기 때문인지 모험하려 하지 않더라. 그분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언론이나 일반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걱정 때문에 원형탈모증이 생겼다던데.몰랐다. 머리카락이 이상하다고 누가 그러더라. 남들 얘기인 줄만 알았지.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 지금은 괜찮나?지금은 없어진 것 같다.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건 아니고. (웃음)칸에 진출했고 부천영화제, 신디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인생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편집 때문에 회사와 의견이 달라서 진짜 힘들었거든. 합의가 안 되고 후반작업이 길어졌다. 원래는 1, 2월쯤 개봉하려 했는데 아무리 해도 합의가 안 되더라. 나도 신인이지만 끝까지 버텼거든. 그러던 차에 칸에 초청됐다. 그 전에 조율이 잘 돼서 일찍 개봉했다면 초대되지 않았겠지. 어떻게 보면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고맙기도 하다. (웃음) 이후 칸 갔다 와서도 배급사들과 이야기가 안 맞아서 계속 개봉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부천에 초청되어서 상까지 받았다. 배급사들이 영화를 너무 못 알아준다, 돈이 될 영화를 왜 모를까 싶었는데 그들 덕분에 상을 받게 된 거지. 신디영화제도 배급이 좀 더 빨리 됐음 못 갔을 텐데. 일 주일 차이로 가게 되어서 아이러니하다. 인생 참 새옹지마다. 안 좋은 일 생겼어도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가 호랑이 해인데, 내가 호랑이 띠다. 호랑이 기운을 받은 듯도 하다. 서른여섯이라는 나이는 인생을 70년으로 봤을 때 딱 중간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좀 더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여태까지의 인생과 다를 것이다.가족들이 좋아하겠다.가족들이 제일 좋아한다. 만날 인간 노릇 못하다가(웃음)…. 맨 마지막엔 부모님까지도 버티다 버티다 그만두란 말씀을 하시더라. 곧 될 것 같았다. 5년 후에 될 것 같으면 나도 못 버텼을 텐데, 꼭 몇 달 뒤에 될 것 같으니까. 근데 그걸 듣는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속아 넘어가줬지만, 시간이 지나니 믿어주지 않더라. 스스로가 의심되는 순간까지 왔었다. 그래도 나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버틸수 있었던 것 같다.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오나?감독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지 않나. 현장 경험, 자신만의 시나리오, 연출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단편영화들, 그 다음엔… 인맥 같은 거라고 해야 되나? 사수 말인가?그렇지. 그리고 성격. 성격이 어때야 하는가?긍정적인 성격이어야지. 조감독도 했고 시나리오 많이 썼고, 단편도 찍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영화계에 아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 것들 중 몇 가지가 부족해도 감독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 나는 갖춰야 할 걸 다 갖춰놨는데 왜 안 될까 의아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은 끈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인생을 길게 봤을 때 겸손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빨리 감독 되는 걸 제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감독 하는 것으로 꿈이 바뀌었다. 가능한 꿈이다. 꿈은 가능한 걸 꿔야 한다. (웃음)잔인한 장면이 꽤 있다. 무서운 영화 못 본다며 어떻게 그런 걸 만들었나?세상에 영화들이 많잖아.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잔인한 것만 주로 보는 마니아들이 있더라.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게 하거나 짜릿한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과도하게 그쪽으로 흐르는 영화들은 보는 데 불편하다. 에서 소화기로 막 때리는 장면 같은 건 도저히 못 보겠어. 이번 영화 준비하면서 추천 받은 영화들을 보다가 ‘아, 저렇게 만들면 안 되겠구나’ 했다. 우선 내가 못 보겠으니까. 은 세긴 하지만 그런 영화를 잘 못 보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느꼈다. 일본에서 어학연수하면서 새벽에 신문배달을 했는데, 갑자기 머리 하얀 할머니들이 고양이랑 개 끌고 나오면 너무 무섭고 놀랐었다. 그때는 공포영화 포스터도 안 봤지. 근데 히치콕 감독 영화처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좋아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로부터의 충격은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히치콕 감독의 말이 있다. 잘 만들기만 하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기억에 남는 영화도 될 거라 여겼다. 작위적인 영화는 싫다고 했다.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많이 묻는다. 좋아하는 영화가 하도 많으니 일일이 댈 수가 없다. 외려 싫어하는 영화를 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극영화는 태생이 작위적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들은 보기에 불편하다. 갑자기 울리고, 없던 사랑의 감정이 생기고 억지로 끌어내는 영화들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잖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속이 편한 밥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을 약자에 대한 대리 해소 차원의 영화라고 말했다.영화에서 복남이는 원없이 복수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 복남이도 머리를 쓴다. 어쨌든 마지막에 더 이상 가슴에 쌓여 있는 것 없이 풀어버리잖아. 우리가 실제로 살다 보면 그렇게 풀지 못한다. 가슴에 쌓고 쌓아서 한이 되고 응어리가 된 사람들이 이걸 보면 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대리해소만 하는 게 아니라 운명에서 몸부림 치기도 원한다. 그리고 한이나 응어리 없는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에 해를 입히면 안 되겠단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간담회에서 정치적 입장에 엮이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방관’이란 정서에서 작년 용산 참사가 떠올랐다.영화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당신에게 그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개인적인 아픔이든 타인의 슬픔이든 타인의 고통을 보며 여러 생각을 생각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확대만 하거나, 개인적으로만 국한시키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으로 가두고 싶지 않다. 열어두고 있는 거다. 영화를 본 블로거가 ‘채소 파는 할머니를 보고 예전엔 그냥 지나쳤는데, 처음으로 사게 되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영화라는 게 그래서 좋다. 수전 손택의 책 을 본 적이 있나?아직 읽진 못했다. 제목이 와 닿긴 하더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할머니들이 가장 악한 두 남자보다 먼저 죽는다.다른 영화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두 가지 입장만 있다면 은 방관자, 그러니까 제3자의 위치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방관자가 되기는 정말 쉽잖아. 방관자로 있다가는 어느 순간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하려 했다. 해원이나 할머니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영화를 찍으며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려고 시도했다.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더라. 영화가 그런 역할까지 할 수는 없으니까. 행동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해원을, 변화 하려고 하지만 변화하기엔 늦은 캐릭터라고 했다. 그게 행동의 어려움을 뜻하는 건가?마지막에서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미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걸 잃은 상태다. 그런 감정으로 해원은 결말을 맞는다. 해원이가 그 이후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을 취했다. 이 사람은 중요한 걸 잃고 이렇게 되었다는 식이지. 혼자 남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변해야 하는 거다. (웃음)이미 해원에겐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니까. 해원이도 피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어렸을 적 기억 때문에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섬으로 갔는데, 자기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결국 복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제거해버리는 걸로 자기 운명을 극복하려 한 거다. 서영희는 피칠갑 영화에 자주 출연한다.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내가 철수니까.(웃음) 운명적인 게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예전엔 의지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했지만 차차 뭔가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른들을 보며 왜 저렇게 살까 싶었고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보다 안 좋은 상황에서 극복해내기도 하니까.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 인간 역시 강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 듯하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고. 어, 근데 무슨 질문에 내가 이런 얘길 하고 있나. 괜찮다. 맘껏 해라. 결국 이번 작품이 서영희의 운명이란 소린가? (웃음)그러니까. (웃음) 서로의 운명이지. 서영희만 생각했던 건 아니거든. 투자사에서 서영희로는 부족하단 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서영희와 다시 하게 된 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것이겠지. 같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만난 것도 운명이지 뭐. (웃음) 서영희가 소위 말하는 톱스타 계열에 있는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투자를 받는 게 어려웠다. 쉽게 할 수 있는 배우랑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은 못 하겠단 얘기를 많이 하더라. 역할이 자신에게 몰고 올 파장이 무서운 거다. 오래 남을 수도 있으니까. 서영희는 보자마자 한다고 했다. 되게 고맙지. 알수록 연기만큼 성품도 훌륭한 사람이다. 본인 어머니가 시집살이나 결혼생활 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자랐더라. 엄마의 인생이라며 가만히 내버려뒀던 게 아니라 끊어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복남이 근대화 과정의 어머니들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서영희는 맏누나의 느낌이다. 노래도 있지 않나. ‘엄마야 누나야’. (웃음) 누나, 엄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기를 그렇게 잘할 수 있었을 거다. 요새 복수극이 많다. 그런데 피해자는 늘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복수까지도 남자가 대신 해준다. 에서는 피해자인 여성 자신이 직접 복수한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신을 도와준다는 건 영화적 설정이겠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굉장히 적다. 그러다 보니 복남이 같은 캐릭터가 생겨났다. 주변에서 누군가 도와주길 기대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거지. 그런 면에서 보다 현실적이다. 그래서 복수가 비현실적으로 잔인하더라도 통쾌함과 여운이 더 오래 남는 듯하다. 여성의 복수라는 점에서나 “넌 너무 불친절해” 라는 대사에서 생각이 났다.그 대사를 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많이 했다. 어쨌든 복남이가 꼭 해야 했던 말이기 때문에 빼지 않았다. 때문에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은 안 했다. 복수라는 코드 외에 닮은 건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는 마지막이 불편했다. 많이 돌아서 영화를 표현한 거잖아. 그런데 은 직설적이고 단순하며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렵게 꼬아 놓은 얘기보다 깊숙하고 센 얘기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징해야 되는 것 같아. 복남이가 곧바로 복수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다.인상 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웃음) 참 뿌듯하다. 기억에 남는 게 그만큼 있다는 거니까. 일단 복남이가 미쳐서 한 행동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굉장히 갑작스러운, 큰 슬픔을 당하면 그러지 않을까 싶다. 복수를 꿈꿀 겨를도 없는 거지. 그렇다면 이미 딸이 죽을 걸 예측하고 있었던 사람이란 얘기밖에 안 되니까. 외려 실제로 보편적인 반응인 것 같다. 복남이는 특히나 늘 당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든 적도, 그럴 힘도 없었다. 무서운 집단인 걸 아니까 함부로 덤빌 수 없는 거다. 다른 영화랑 다른 느낌으로 가고 싶었던 욕심도 조금은 있었다.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건 김기덕 감독 영향인가?그럴 수도. 감독님 영화 세 작품에 참여했다. 일본에서 영화 공부하려다 감독님 작품 을 보고 귀국했다. 다른 감독님과 비교해서 김기덕 감독님만의 힘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감독님은 인위적인 거나 꾸미는 걸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지’를 참 좋아하긴 한다. 나는 가급적이면 이미지는 안 쓰려고 했다. 내러티브를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김기덕 사단과의 차이점은?김기덕 감독님의 수제자는 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감독보다 데뷔를 늦게 했다. 그들이 데뷔하는 걸 보며 ‘수제자란 생각은 나만 했던 건가’ 싶었다. (웃음) 감독님이 더 아끼는 사람은 다른 데 있었구나!서운했겠다.그런 건 아니고. 계승해 주고 싶었던 건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는 감독님이 직접 쓴 시나리오잖아. 나는 일부러 상업적인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어서 감독님이 주신 시나리오를 안 했다. 예술영화 감독이 힘들게 생활하는 걸 봐왔으니까. 봉준호, 박찬욱 감독처럼 돈도 벌고, 대접도 받고, 예술적으로도 인정 받고, 존경 받고, 친구도 많고.(웃음) 완벽하다. 처음에 귀여니 소설을 각색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영화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그래도 가장 김기덕 감독님이 생각나는 것 같다. ‘김기덕 감독 조감독 출신.’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장훈 감독은 조금 더 상업적으로 갔고 이상우 감독 영화는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오버그라운드에서도 통용이 되는 이야기인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나 같은 경우엔 특히 외국 나갔을 때 김기덕 감독님 덕분에 사람들이 알아봐주니 감사하지. 크게 누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고 느낀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자꾸 만들어낼 거다. 장르적으로도 다양하게 연출하려 한다. 가장 상업적인 할리우드와 가장 예술적인 칸 모두 가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잊혀지지 않는 영화가 좋다. 어쨌든 재미있는 영화여야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 역시 궁금하고 기대된다. 또 운명적인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