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쓴 우산, 갓 구운 식빵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작가는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로 결정된다고 츠지 히토나리가 말했다. 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배우 정성화는 가지고 있는 배우다. 눈빛만으로 바로 알 수 있다. ::정성화,엘르,엣진,ELLE.CO.KR:: | ::정성화,엘르,엣진,ELLE.CO.KR::

오디션에 강한 배우라는 소문이 있더라. 이번 작품 도 경쟁이 치열했나?이 작품의 경우 오디션을 보진 않았다. 그전에 교섭이 있었다. 뮤지컬에서 코미디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을 꿈꿔왔던 터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박영규 선생님과의 더블 캐스팅도 기대가 됐다.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 문제는 12월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었다. 공연 기간이 한 달만이어도 괜찮겠느냐는 답변을 했고, 그래도 좋다는 회신을 받았다. 짧게나마 할 수 있어 기쁜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원작은 봤나?원작 뮤지컬은 못 보고 영화 원작인 (1975)는 봤다. 개그 영화의 시초격인 영화인데 대부분의 코미디가 요즘에도 먹힐 만하더라. 워낙 견고하고 튼튼한 코미디라 요즘 시대의 교과서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 탄탄함이야말로 대극장 뮤지컬로 부활해 여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저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기자 회견에서 이 작품을 두고 한국적 코미디로 표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을 했다. 나라마다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 개그라는 건 대부분 패러디다. 패러디라는 것엔 기본적으로 역사가 있어야 한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 국민성 혹은 영화와 뉴스. 패러디는 원본에 기생하는 코미디 기술이라는 얘기다. 등장인물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어디어디 지방에는 전염병, 이곳에는 전염병, 저곳에는 전염병” 웃기나? 근데 미국인들은 뒤집어진다. 전염병이라는 단어와 발음 자체를 웃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번역해서 연기를 한다고 치자. 우리나라 관객은 아무도 웃지 않을 거다. 그럴 경우 이렇게 바꾼다. “어디어디 지방에는 전염병, 이곳에는 전염병, 저곳에는 전립선염” 이런 식. 거봐, 지금 웃고 있지 않나.타협점을 찾으며 가는 걸 보니 연출가 스완은 사람이 참 좋은가 보다.맞다. 이 바닥 까칠한 연출자들과 비교하면 무척 좋은 사람이다. 그도 그렇지만 웃음이란 것엔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회의하며 가는 것도 있다. 관객이 웃지 않으면 그 코미디는 의미 없다. 특히 이 연극은 가슴속에 감동을 심어줄 작품이 아니라 단지 잘 짜여진 코미디다. 태생적으로 웃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아무리 뛰어난 연출가라도 이런 상황(아무도 웃지 않는 상황)에선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전 스태프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맞춰가고 있다. 서로 속으로는 아니, 이게 왜 웃겨? 정말 쟤네는 이게 안 웃겨?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울리는 건 연습으로 가능하지만 웃기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인 것 같다. 이를테면 같은, 개그의 끓는 피를 표출할 수 있는 작품을 할 때 좀 더 편한가? 아시다시피 개그맨으로 시작을 했고, 고등학교 때까진 꿈이 개그맨이었다.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뮤지컬이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어렵지. 코미디라는 건 여러 사람이 같이 가는 호흡이다. 쫙쫙 맞아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웃기지가 않다. 각자 웃기다 생각하는 코드가 다르다 보니까 의견 충돌이 있기도 하고. 코미디극에서는 이런 세세한 부분을 맞춰나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은 성공적인 타협점을 찾고 있나.뮤지컬을 찾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반드시 기대하는 것이 감동이다. 사실 이 작품에 그런 것은 없다. 결말부에 주제 의식이 있긴 하다. 아더왕이 성배를 찾는 장면, 진짜 성배는 우리 마음속에 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의 성배를 꼭 찾으라는 명확한 주제를 던져주고 끝난다. 그러나 한국 관객이 생각하는 감동은 눈물이다. “내가 저 작품을 보며 울었어”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돈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몹시 웃기는 뮤지컬이다. 눈물 나는 감동은 없다. 진짜 웃을 사람만 와라.너무 자신만만한데?아, 너무 그런가? 우리가 관객에게 보여드릴 것은 이런 웃음도 있을 수 있구나 라는 거다. 감동의 관성에 젖어있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그냥 웃어보는 것도 재미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거다. 만날 밥만 먹을 수 없지 않나. 한 가지 덧붙여 말하자면 제작사와 연출가가 합의를 한 모양이다. 원작은 얘기가 중구난방으로 간다. 미국인들은 그마저 웃겨서 뒤집어진단다. 그 부분만큼은 한국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야기의 줄기만큼은 하나로 가기로 했다. 의 한국식 정리 버전인 셈이다. 미국적 코미디를 한국적 코미디로 어떻게 풀어냈는지 그 방식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본인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눈빛이 있다는 걸 아나? 정성화를 다른 뮤지컬 배우와 다르게 하는 지점인 것 같다. 무대 위에 오른 배우의 눈빛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이외의 것을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이입하고 있는 배우에 관객이 이입한 순간 둘은 서로 동기화 된다. 관객은 배우의 눈에서 캐릭터뿐 아니라 나의 인생, 그의 인생까지 읽는다. 이 순간은 물론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런 눈빛만 믿고 배우 생활을 지속하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나에게 주어진 보너스지만 남용하지는 않을 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려고 노력하고 있다.뮤지컬 배우로는 크나큰 성공이다. 길을 굳힌 건가?배우라는 직업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자리에는 최고도 없고, 정년도 없다. 직장인들은 실수하면 감봉으로 만회가 되지만, 공인의 실수는 매장과 파국이다. 무대 위 실수뿐 아니라 사적인 생활까지도. 항상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말썽꾸러기 같은 삶을 살 것 같은 이미지인데.술도 많이 먹고, 담배도 많이 핀다. 인생 자체가 즉흥적인 데다 감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 반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방금 전 한 대답을 잘 기억해달라. 특히 노력하고 있다는 부분 말이다.대답을 잘 할 수 있는 상투적인 질문 하나 하겠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역시 많이 당해본(?) 질문이다. 의 장발장이나 자베르 경감 역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한국에 라이선스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다. 오디션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장유정 감독의 에 출연한 걸 봤다. 정성화의 연기도 연기였지만 한국 뮤지컬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한국도 소프터웨어적인 인프라는 상당히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작가와 좋은 시나리오, 이를 토대로 좋은 음악을 만들 사람은 많다. 그러나 연출가의 부재, 부족한 자본 유입이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장 힘든 건 극장 대관 시스템이다. 장기공연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건 크나큰 리스크다. 의 꾸준한 성공 이유는 계속해서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 1년 후, 2년 후에도 그 극장을 찾아가면 똑같은 감동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좀 다져지기만 한다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을까.정성화가 생각하는 웃음이란?웃음이라는 것은 행복의 문이라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많은 일들이 웃음으로 해결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코미디언은 그 문을 여는 문지기다. 하지만 그 문을 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의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문을 여는 사람을 나보다 아랫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게 좀 슬픈 일이지만 웃음을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현재 가장 중요한 일은?은 10월1일부터 11월 7일까지다. 연습에 바로 들어가서 12월 3일부터는 안중근으로 산다. 내년에 예정된 작품이나 집안 대소사보다는 이거다. 연습 또 연습.정성화를 표현하는 세 가지 단어를 꼽으라면.팔색조. ‘좋은 친구들’ 할 때 얻은 별명인데 그 별명을 무척 좋아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쓴 우산, 갓 구워진 식빵이란 단어도 생각난다. 전자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있는 것들이 떠올라 행복한 단어고, 후자는 오래전부터 먹어와 친숙하면서도 갓 구운에서 풍기는 새로움이 있어 좋은 단어다. 친근하면서도 늘 새로운 이미지로 살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단어들인 것 같다.이것만은 변하지 않겠다는 신념은?열정만큼은 변하지 말자는 것. 배우생활을 하든 안 하든,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열정만큼은 계속 안고 가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자는 것. 한때는 그랬었다. 계란 한 판 넘기고 나니까 대중가요 듣기가 힘들더라. 노래는 형편없고 얼굴로만 밀어붙이는 가수라고 질타하고 그랬다. 그런데 그 친구들, 알고 보면 얼마나 뛰어난가. 그건 단지 내가 익숙해지지 못한 거지, 새로운 게 후진 게 결코 아니더라는 거다. 모든 새로운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