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을 살아가던 보헤미안들의 떨림이 2010년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션, 음악, 영화 등 전방위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작지만 반가운 흐름이 느껴진다. 마음을 흔드는 기타 소리로 어우러지는, 대화합의 시간. 1969년을 살아가던 보헤미안들의 떨림이 2010년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보헤미안,린지 톤버그,엔도바네라,뮤즈,벨앤 세바스찬,펫 숍 보이즈,장기하와 얼굴들,다코타 패닝,에밀리오 푸치,엘르,엣진,elle.co.kr:: | ::보헤미안,린지 톤버그,엔도바네라,뮤즈,벨앤 세바스찬

1 히피 정신을 계승한 미국 브랜드 엔도바네라의 디자이너 구루들.2 원시 부족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 디자이너 린지 톤버그.3 2010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뮤즈의 공연 장면.4 2010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하늘을 수놓은 ‘PEACE’ 깃발.뜨거운 햇빛 아래, 드넓은 풀밭 위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록 음악이 흐르고, 수천 명의 이들이 무대 앞에 모여 리듬을 타고, 어떤 이들은 뒤켠 풀밭에 앉아 음악을 음미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스테이지를 옮겨다니는 길엔 ‘PEACE’, ‘WAR IS OVER’ 등 유명한 문구를 새긴 깃발들이 너울거리고, 뜨거운 햇빛에 지친 이들은 그늘에서 낮잠을 자거나 수영장 혹은 개울로 뛰어든다. 그러다 해가 진 후 규모가 큰 공연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모두 무언가에 홀린 듯 열광하고 젖어든다. 그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페스티벌의 24시간은 그렇게 일상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흐른다. 그 공간, 그 시간 안에서 사람들은 온전히 자유롭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총6일간의 일정이었다. 그 중 3일은 텐트를 치고, 휴대전화도 방치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을린 피부로, 에너지가 채워진 뜨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지금 한국 뮤직 페스티벌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규모가 커지고 있다. 대형 페스티벌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필두로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글로벌 개더링,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이 각각의 색깔을 정립해가며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라인업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관객 수도 눈에 띄게 늘어간다. 21세기의 ‘페스티벌 제너레이션’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한 주 차이로 포진된 두 개의 대형 록 페스티벌을 모두 간다는 내게 많은 이들이 던진 질문은 “왜 가?”였다. 사실 대답은 간단하다. ‘즐거워서, 그리고 얻는 에너지가 좋아서.’ 무대 위의 뮤지션과 수만 명의 관객,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이 교감하며 만드는 에너지는 삼복더위에 먹는 삼계탕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더위에 굳이 비오듯 땀 흘리면서 놀고 싶을까. 하지만 한여름의 록 페스티벌을 찾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앞에 서서 뮤지션이 만들어내는 소리 음절 하나하나에 탄복한다. 그리고 소리치고, 즐기고, 때때로 감격에 울먹이며 일상을 ‘치유’받는다. 그것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공연이 선사하기 힘든, 자연을 무대 삼아 열리는 페스티벌만이 줄 수 있는 생생한 치유 에너지다. 이런 음악과 자연, 자유로움이 주는 에너지의 시발점은 1969년 뉴욕 주의 작은 마을, 베셀의 농장에서 열렸던 ‘우드스탁’이다. 기상 악화와 낙후된 시설 등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모인 50만 청춘은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다시 없을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그리고 새 역사를 썼다. 다음해에는 유럽의 히피들이 영국 남서부 글래스턴베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열리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세계 최고 록 페스티벌이 됐다. 1 에디터를 눈물 흘리게 한 벨앤 세바스찬.2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최고의 공연을 보여준 펫 숍 보이즈.3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중 열광적인 관객들.4 1970년대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런웨이인 에밀리오 푸치와 겐조의 룩.5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중 열광적인 관객들.6 의 다코타 패닝과 크리스틴 스튜어트.7 의 한 장면.우드스탁이 청춘 문화에 핵폭탄을 터뜨린 지 40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분야가 그 시절의 문화와 정신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이안 감독은 우드스탁을 향해 떠났던 청춘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낸 신작 을 내놨다. 또 얼마 전엔 다코타 패닝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1970년대의 밴드 ‘런어웨이즈’를 모티프로 한 영화 에서 열연을 펼쳤다. 런웨이에도 1970년대의 물결이 일었다. 끌로에 런웨이에는 70년대 TV 시리즈 가 연상되는 걸들이 등장했으며, 겐조 런웨이에는 그 시절 히피 감성으로 물든 서정적인 룩들이 가득했다. 또 마르니의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는 70년대 풍 옵티컬 프린트를 등장시켰으며, 에밀리오 푸치의 피터 던다스는 플레어 팬츠와 프린지 디테일, 화려한 프린트, 퍼로 럭셔리한 보헤미안 무드를 선보였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미국시장에는 뼛속까지 히피즘을 표방하는 디자이너들이 나타났다. 에스닉한 케이프들로 유명해진 린지 톤버그(Lindsey Thornburg)와 브랜드 엔도바네라(Endovanera)의 데이빗 허시버그(David Hershberger)가 대표적인 이들. 이들은 주류 디자이너가 되고자 굳이 애쓰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을 투영한 옷을 만들고, 자신들의 생각과 취향에 동의하는 이들을 반길 뿐이다. 이렇듯 1970년대 무드로 가득한 이번 시즌의 룩들엔 자유 정신을 계승한 따뜻함이 가득하다. 얼스 톤의 컬러는 포크송처럼 포근하고, 화려한 프린트들은 사이키델릭하며, 믹스매치는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유행이니까 입어야 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꼭 그럴 이유도 없다. 그건 자유 정신에 반(反)하는 일이니까. 아름답다고 느끼면 합류하면 되고, 구태의연하다고 느껴지면 물러서면 된다. 전 세계적인 페스티벌의 부흥, 그리고 유행처럼 번진 70년대 무드. 어쩌면 이는 지금의 각박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 시절의 히피들은 중년이, 그들의 자식들은 20, 30대가 됐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시대의 청춘들 역시 여전히 자유를 갈망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어졌을 뿐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 비친 ‘사랑과 평화의 시대’는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