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여자> 권우정 감독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대학 동창인 선희, 희주, 은주, 세 명의 여성은 농촌의 삶을 선택한다. 어느새 10년이 흘러 농민운동을 꿈꾸었던 그들도 30대 후반의 아줌마가 되었다. 권우정 감독의 카메라는 1년 동안 그들의 농촌 생활과 일상을 따라간다. 영화는 농촌 속에 포함된 혹은 농촌 속에서 배제되어 있는 '여성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바라보고 고민한다.::엘르,프리미어,엣진:: | ::엘르,프리미어,엣진::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는가?뿐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에서 쭉 작업을 해왔다. 처음에 '다큐인'이라는 제작 단체에 들어오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어떤 작업을 고민하고 있던, 대학 갓 졸업하자마자 였다.그럼 10년 전?벌써 10년인가, 역사가 오래 됐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대학 때 우연하게 농활을 많이 가게 되었다. 그 때 인연을 맺었던 학교 선배들도 계시고, 같이 농활에 갔던 분들이 있었다. 학교 선배가 농활 들어갔던 마을에 귀농을 하셔 간사로 계셨다.2004년에 를 제작했다.의 주인공은 농활에 같이 갔던 선배셨다. 그 분이 저한테 우연히 연락을 하셨다. 내가 들어갔던 마을이 당시 2000년에 오렌지 수입개방을 했는데 과실 채소가 엄청나게 폭락을 했다. 그 마을에 젊은 농부 네 분이 자살을 하신 거다. 솔직히 독립영화라는 공간 자체도 서울 도시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까 농촌이라는 것은 주류 뿐만이 아니라 비주류인 독립영화 안에서도 소외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라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가격 폭락이라든가 농업정책의 문제점 이런 주제로 다큐를 많이 만들었었다.는 보기가 힘들었다.그럴 수 있다. 그 당시에 이거를 작품으로 만들기보다는 열린 채널이라던가 공공 채널을 통해서 많이 알려야겠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작업을 하고 보니까 조금 허전하더라. 독립 영화라는 것이 주류의 채널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도 없는 상태고, 또 한편으로는 농업 정책의 문제점을 방송에서 많이 다루고 있어서 도시인들이 모르는 것도 아닌데.농촌 관련된 문제는 언론에서 계속 떠드니, 오히려 많이 아는 것처럼 인식을 하는 게 문제다.그렇게 인식을 하는 것도 문제기도 했고, 작업을 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근본적으로 농어촌 측의 문제를 몰라서 도시민들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그 거리만큼의 정서적 괴리감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적인 이야기보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있고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감정적, 정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농촌을 알리는 데 괴리감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방송 다큐가 아닌 독립 영화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1년 동안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젊은 농부의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농사를 같이 지어 봤나?물론이다.농활 때 대학생들이 도와 주는데, 그런 일회성은 아닐 테지?그건 도와 주는 게 아니고 민폐만 끼치는 거지.(웃음) 때부터 그런 방식이 됐었다. 어쨌든 주인공 분은 농활 때부터 봤던 선배고, 젊었을 때 총각으로 농사를 지으러 내려와서 거기서 정착을 하고 결혼을 하셨던 분이다. 나도 영화감독 초년생이었고, 그 분도 농사 짓는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서로 관계 형성에서 그런 것보다는 농사 짓는 걸로 시작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차츰차츰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농촌이라는 커뮤니티가 내가 촬영하는 사람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같이 생활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려면 농사를 짓고 함께 생활하는 모습들이 있어야지 인정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찍으러 농촌에 내려갔을 때, 도시생활을 하다가 가는 거니까 특별한 느낌 같은 게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을 변화시킬만한 계기가 있었나? 그렇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영화를 계속 찍는 거 아닌가?일단은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근데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생업의 현장이 아닌 또 다른 부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는 일이고 경제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나와 보는 입장이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서 의미가 있고 좋았던 것 같다. 그게 또 내가 친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고. 같이 동화 되어서 찍느라고 힘들었겠다.아무래도 농촌 인력이 항상 부족하다 보니까.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얘기되는데, 그런 건 아니다.촬영은 다른 분이 하신 건가?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했다. 부터 스텝들이 생겼지.그럼 는 홈 비디오 형식으로 계속 붙어 있었으니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겠다. 눈치 보여서라도. (웃음)맞다, 일을 해야 했다. 벌에도 쏘여 보고 별에 별 거를 다 해봤다. 오가와 신스케 감독 영화를 좋아하나? 신스케 영화에 나오는 농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인생에 대해 툭툭 던지듯이 얘기하는데, 놀라운 말들이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참 현명한 얘기다.그런 게 감동적인 것 같다. 그런데 나 도 그런 이야기를 찾으러 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향수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 속 농촌이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촌이라는 어떤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있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민들과 똑같이 삶의 여러 가지 척박함과 어려움들을 헤쳐나가거든. 농촌이라는 특성 안에서 가진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혹은 단점이 되는 부분들이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귀농 프로젝트를 방송이나 언론에 많이 노출이 되고 있는데, 화려하고 포장된 부분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이 포스터도 너무 귀엽고 예쁘게 나와서 20-30대 여자 분들이 내려 가서 그냥 토마토 기르고 맛있는 거 먹고 쉬는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약간의 허와 실이 있을 것 같은데.영화를 보면서 ‘어, 뭐야’ 이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고. 또 한편으로는 언니들 스스로도 지금의 화려함을 꿈꾸고 들어갔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20대 때 이상만 가지고 들어가서 실제로 현실 안에서 부딪히는 모습들이 지금 귀농을 꿈꾸는 자들에게 또 다른 교본이 될 수도 있는 거지. 허나 그 안에서 그냥 꿈만은 아닐 수 있는 즐거움은 분명 있다. 농사 짓는 자체의 즐거움이라던가, 개인화 되어 있는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갈등이나 어려움 등 혼자 풀지 않고 같이 풀 수 밖에 없는 구조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장점이 있다. 이상적인 측면들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체적인 즐거움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농사를 지었던 게... (웃음) 마냥 힘든 것 만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에, 그 곳에서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나도 농촌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포스터나 이미지로 봤을 때는 커뮤니티나 농민운동으로 퍼지는 스토리라 예상을 잘 못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감동적인 것 같다. 그냥 단순하게 1년 반 동안 농사를 재미있게 짓고 이런 거 보여줄 것만 생각했는데, 거기서 확장되서 더 나가는 모습이 좋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정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다.12월 달에 촬영을 마무리 하고 올라오기 전에 언니들이랑 송년회를 같이 했다. 그 때 언니들이 ‘넌 특혜 받았다’ 그러면서 세 분이 각자가 특히 그 해에 너무나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사건들이 있었다더라. 일단 크게는 선희 언니 남편 분이 돌아가신 거였지만, 은주 언니에게도 11년 만의 분가라는 엄청난 큰 사건이 있었고, 희주 언니도 가볍게 드러났지만 남편 분과 이혼까지 결심하기도 했었다. 운동과 가사 이런 부분에서 갈등이 있었던 건데, 그것들을 극복하는 과정들이 1년 안에 다 있었던 거지.어떻게 보면 이런 우여곡절은 4-5년 정도 찍어야 나올 것 같은데.(웃음)그러니까. 언니들이 이런 일이 드물 거라고 하더라. 지금도 계속 만나지만 언니들한테 그만큼의 큰 사건이 있진 않거든.그렇다고 사건이 많으면 안 될 것 같다.(웃음) 때 주인공의 아버님과 같이 농사 짓는 분도 돌아가셨다. 언니들은 또 봤었으니까 ‘니가 하면 뭔가 큰 사건을 만드는 것 같다고’ 그랬다. 약간 그런 죄책감도 솔직히 있었다. 나에게 행운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독과 주인공을 떠나서 인간적 관계에서는 되게 힘든 위치였던 것 같다. 내가 계속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맞는가라는 고민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부부싸움부터 장례식장면까지. 홍콩 원정 투쟁 때 고부 모습 보여주면서 '돌아와서 보니 모습이 달랐다'다고 얘기만 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안 하더라. 그게 어떤 느낌인지 상당히 궁금하다. 물론 뒷부분은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게 암시일 거라 짐작은 가능하다.홍콩 때는 이상적인 고부간의 롤모델이었다. 사실은 우리가 운동이라고 하면 일상이 아니라 보여지는 모습만을 보잖아. 특히 가족간에 관계에서 가지는 갈등이나 어려움들이 많이 드러나지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그게 큰 문제인데 그게 비춰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여성이 운동이 한다고 하면 더욱 두드러지는데, 친정 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같이 한다는 거는 내부적으로 엄청난 힘을 받을 수 있는 구조고, 롤모델인 셈이다. 그런 부분이 내 눈에 띄었고, 실제로 두 분이 홍콩 언론에서도 엄청나게 이슈가 되었었다. 심지어는 홍콩 언론이 한국에 와서 촬영도 하고 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는 막상 들어가 봤는데, 선희 언니와 어머니가 생각하는 운동의 관점이 약간 다르더라. 그 중간에 김종호라는 남편 분이 있었다. 물론 둘 사이의 고부를 넘어선 운동의 합의점도 있었지만, 그 분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유지되는 면도 있었다. 그게 나에게 놀라웠던 사실이고 그걸 어디까지 보여줘야 될까가 고민이기도 했다.원래 고부에서 시작을 했던 건데, 왜 이렇게 세 명의 여인으로 이야기를 나눠서 가게 된 건가?를 하게 된 배경이 때 남자 선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여자다 보니까 부인의 입장에 너무 많이 동질화될 때가 많아서 그때부터 여성들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를 찍는데, 여성 농민의 보편성을 얘기한다는 거 자체가 애매하고 어디까지 얘기할 것인지가 어려웠다. 적어도 여성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어려움들 (가사와 육아, 농사 등)의 포인트들을 강선희 씨만으로는 얘기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희주 언니와 은주 언니도 각각 캐릭터들이 보여지는 모습들에서 다른 부분이 있었고, 그게 여성 농민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하나씩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하긴 세 분이 다 너무 재미있긴 했다.강선희 씨만을 얘기하게 되면 어떻게 보면 여성 농민의 운동 부분만 보여질 수 있는데,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편집할 때도 안배하는 거에서 엄청 어려움을 느꼈다. 시사를 한 6번 정도 했던 것 같다.제일 기대했던 건 세 분이 언제 한 자리에 모일까 하는 거였다. 사실 생각보다 길진 않았다. 근데 셋이 서로 신나게 때리기도 하는 사이더라.그렇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줘야지. (웃음) 근데 나도 몰랐다. 작업하다가 그 셋이 동창생이라는 걸 알았다. 홍콩 때 그냥 친한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또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 같다.만약에 처음부터 알고 찍었다면 그 관계 때문에 더 의식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재미있는 건 내가 돌아가면서 그들의 소식을 전하게 되더라. 그게 언니들이 더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영화 끝나고 나서 셋이 친해진 부분도 있고. 사실 동창생이고 귀농 모임을 같이 했다고 해도, 한 시간씩 떨어져 있는 거고 가족이 있고 그 커뮤니티가 있는데, 이건 또 별도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거니까.묘한 경쟁 느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좋은 의미로 보면.희주 언니 자체가 그런 거에 무관심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은주 언니하고 선희 언니는 더 친한 선후배가 된 것 같다. 어려움들을 가져가는 부분들을 얘기를 통해 만나게 되고 서로 고민을 나누게 되는 그런 관계가 된 것 같다.어쨌든 영화를 마친 지 꽤 되었다. 그 이후에 뭐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나, 또 농촌으로 가는 건가?모르겠다. 어떤 분들은 3부작으로 농촌 또 해야 한다고 충고도 하신다. 한편으로는 운동을 하는 건지 농사를 지어야 하는 건지 장기적 전망도 물어보시는데, 난 아직까지 경계인으로서 농촌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게 참 좋다. 지금 현재로는 농촌이라는 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환경의 문제라든가 팔당 유기농 단지나 4대강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고 있다. 그게 도시민들에게 확 다가오진 않지만 먹거리 문제라던가 이런 부분들이 슬금슬금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농촌이라는 하나의 커뮤니티 자체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4대 강이나 여러 가지 정부의 농업정책에 문제들만이 아니더라도 농촌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나 도시민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끈이 없어지고 있는 상태다. 10년이 지나 농촌을 살린다고 해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곳이 농촌이다. 그런 공간이나 커뮤니티의 문제, 그 안에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할머니들을 얘기를 어떻게 엮어낼 것 인가 이런 것들도 고민하고 있다. 작업을 조금 더 천천히 해볼 예정이다.방금 말한 그런 문제는 그럴 거라는 추측만 하고 있는 거지, 직접적으로 가시화 된 게 아니다.4대강 문제만 해도, 예를 들면 은주 언니네도 그렇게 농사 규모가 커서 싸웠는데 지금 그걸로 부부싸움을 안 한다. 땅이 없어진 거다. 낙동강의 공용 토지를 아예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하느라 없애버리고 나니까 농사 규모가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또 문제가 생기는 거다. 땅이 필요하니까 빚을 내서라도 땅은 사야 되고, 땅값은 오르니까 또 문제가 생기고. 의 부여 백마강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은 원래 감자 농자 짓는데 지금은 하우스 농사로 다 바꿨다. 결국은 땅의 문제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바꿔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 단순히 농촌이 이렇게 살고 있다라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들이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부 관계와 친구 관계를 포함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교육적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남자인 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 게 좋았다.그건 여성의 힘인 것 같다. 개인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연대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