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취소할게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저희 레스토랑으로 오실래요? 오늘 제가 쏩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유명 오너 셰프가 느닷없이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 음식 담당 기자가 레스토랑에서 ‘공짜밥’을 먹게 되는 별별 이유를 다 떠올리며 레스토랑을 찾았다.::레스토랑,외식,엘르,엣진,elle.co.kr:: | ::레스토랑,외식,엘르,엣진,elle.co.kr::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저희 레스토랑으로 오실래요? 오늘 제가 쏩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유명 오너 셰프가 느닷없이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 ‘레스토랑을 하나 더 냈나? 메뉴를 새로 개발한 건가? 아니면 레스토랑을 레너베이션 했나? 외국에서 유명한 셰프를 초청해서 부르는 걸까? 설마 업종 변경을 한 건 아니겠지?’ 음식 담당 기자가 레스토랑에서 ‘공짜밥’을 먹게 되는 별별 이유를 다 떠올리며 레스토랑을 찾았다.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셰프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식재료가 아주 고급이었다. 점심 식사 치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탤리언 요리를 풀코스로 먹고 나서야 공짜밥에 대한 사연을 들었다. 이유인즉슨 이날 점심에 단골손님이 여섯 명을 위한 식사를 예약했는데, 예약 시간 30분 전에 그것을 취소했다는 거다. 기껏해야 테이블 네 개를 두고 점심, 저녁 예약을 받는 셰프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면 억울한 일이다. 우선 비싸게 주고 산 식재료를 낭비하게 되었고,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예약 시간까지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레스토랑 스태프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도 허사가 되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 이와 같은 기회비용이 일반 식당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 단골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해서 메뉴를 짜고 식재료를 구입했고 예약 시간 전에 조금씩 요리를 준비한 상태이기 때문에 식재료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은 당연지사. 아까운 재료를 버릴 바에야 지인에게 식사 대접을 하거나 레스토랑 스태프들끼리 나눠 먹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한국의 레스토랑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외국 셰프나 외국에서 유학을 한 한국인 셰프들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한국의 캔슬 문화’가 악명 높을 정도다. 이는 손님이 음식이 아닌 미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요리는 그저 30분~1시간 사이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것 정도로 가볍게 인식하고, 제아무리 고급스럽게 식사를 한다 해도 그것은 일상 그 자체인 것이지 문화를 향유한다라고는 인지하지 않는다. 만약 단골손님이 급한 볼일이 있기 전의 스케줄이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오페라나 연극 공연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지간히 급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공연 예약한 것을 식사 예약의 그것처럼 쉽게 취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아직까지 진정한 미식이 없다는 근거로 레스토랑과 셰프, 요리의 수준에 냉정한 잣대를 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바꿔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과연 미식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셰프와 레스토랑 오너를 취재하고 레스토랑의 속내를 들어보면 ‘미식에 대한 손님들의 자세’는 10점 만점에 3점도 아까운 게 현실이다. “한국에는 프렌치 요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프렌치 요리는 2~3시간 동안 길게 먹는다는 인식 말이죠. 프렌치는 코스를 길게 즐기는 것은 있어도 요리를 길게 즐기는 건 없어요. 수프나 스테이크, 샐러드 등 그것이 최상의 상태가 되어 있을 때 먹어야 프렌치를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죠. 남자 손님들 중에는 비즈니스 자리에서 상대방과 얘기하느라 스테이크 하나를 30분 이상 먹고 있을 때가 있어요. 다 식어빠진 스테이크가 맛있을 리 있나요? 그러면서 그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별로라고 쉽게 생각하죠.” 프랑스에서 요리를 하다 한국의 레스토랑으로 스카우트된 어느 셰프의 얘기다. 반대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10가지 이상의 코스를 즐기러 온 손님들 중에서도 일반 식당에서 그러하듯 ‘빨리빨리’를 외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파스타를 ‘알 덴테(너무 익히지도 않고 너무 덜 익히지도 않은, 파스타를 맛있게 삶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준비하면 왜 덜 삶고 가져왔냐고 돌려보내는 손님, 스테이크가 한우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 자꾸 물어보는 손님, 매니저가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 하면 손사래를 치며 돌려보내는 손님, 다 먹은 접시 위에 담뱃재를 털어놓는 손님, 와인 코키지 내는 것을 무척 아까워하며 깎아달라는 손님, 서비스를 요구할 때 ‘이렇게 비싼 돈 내고 먹는데!’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 등등. 레스토랑의 셰프와 오너뿐 아니라 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들까지 난감하게 만드는 이 같은 일은 아직도 한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국가적인 정책들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고,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북 도 들어왔다. 또 레스토랑 평가에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도 조만간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미식 문화를 둘러싼 대외적인 환경들은 갈수록 국제화되어 가는데 미식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인지나 의식은 아직도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국제적인 기준과 따로 노는 레스토랑과 셰프 그리고 미식에 대한 어떤 의식이나 이해를 갖지 않고 있는 손님들이 있는 한 한국의 미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WINE STORY카레에 어울리는 와인을 아시나요?프랑스의 론 와인은 초보자들에겐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식과 찰떡처럼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소주 맛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와인 초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두 가지. 달콤하거나 아니면 아주 진득하거나. 그래서 칠레나 이탈리아 와인부터 손을 뻗친다. 하지만 안주를 따지는 사람이 맛봐야 할 와인은 따로 있다. 바로 프랑스의 론 와인이다. 많은 사람이 프랑스 와인은 도도하고 어렵고 비싸서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같은 값이면 프랑스 와인보다는 호주나 칠레 와인을 마시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론 와인은 좀 다르다. 보르도 와인이 고전적이고, 부르고뉴 와인이 섬세하면서 우아하다면, 론 와인은 자유분방하고 캐주얼하다. 꼭 순수한 시골 청년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질이 낮은 건 아니다. 론 지방은 프랑스의 3대 와인 산지 중 하나로 와인 역사가 2000년이나 된다. 특이한 점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0%가 레드 와인이라는 점이다. 포도 품종은 주로 그라나슈나 시라를 사용하는데, 북부 론은 진한 시라만, 남부 론은 감미로운 그라나슈를 시라에 더해 블렌딩한다. 신맛과 떫은 맛이 적고 체리 향이 폴폴 나는 그라나슈가 시라와 만나면 시라 특유의 후추처럼 진하고 매콤한 맛이 적당히 감칠맛 나기에 개인적으로는 남부 쪽 와인을 더 좋아한다. 론 와인을 만났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라벨 때문이다. 작은 종이 딱지에 이것저것 무엇이 그렇게 많이 쓰여 있는지 읽기조차 쉽지 않다. 론 지방 와인도 부르고뉴 지방과 똑같이 한 와인을 여러 회사에서 생산한다. 론의 대표적인 AOC(원산지 통제 명칭 등급)인 코트 로티(Co^te-Rotie)를 예로 들면, 이 와인의 이름으로 수많은 회사에서 같은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론 지방의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명 AOC 와인을 외우고 유명 와인 회사까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늘 지름길은 있는 법이다.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보다 덜 알려진 론 와인을 고를 땐, 이 기갈이나 폴 자볼레처럼 유명한 네고시앙의 와인을 고르는 게 실패할 확률이 적다. 다음은 맛이다. 론 와인은 특유의 후추 향, 독특한 매콤함 때문에 와인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지 않은 와인이다. 그렇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자꾸자꾸 생각나는 매력적인 와인이기도 하다. 처음 마셨을 땐, 특유의 구수한 향 때문에 얼굴을 찌푸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청국장처럼 그 맛이 두고두고 생각나니까. 청국장을 처음 먹을 때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맛을 순화하는 것처럼, 론 와인을 처음 마실 땐 카레랑 먹으면 쉽다. 카레 속 갖은 향신료 맛에 혀가 일단 길들여지고 나면, 론 와인의 매콤새콤한 맛 정도는 제법 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 마셔볼 만한 론 와인은 한국식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리는 이 기갈, 코트 뒤 론 루즈(E. Guigal, Co^tes du Rhone Rouge),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마셔도 풍미가 제법 있는 폴 자불레 에네 코트 뒤 론 파랄렐 45(Paul Jaboulet Aine Co^tes du Rhone Parallele 45), 론 와인 중에서도 고수처럼 독특한 매운 향이 개성 있는 샤토 보솅 코트 뒤 론 프리미어 루아(Ch. Beauchene Co^te du Rhone Premier Terroir) 정도다. 이 와인들은 꼭 카레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한국의 가정식과 잘 어울린다. 제육볶음이나 김치만두, 족발처럼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과 합이 좋기에 맛에 호기심 가득한 식도락가라면 한 번쯤 시도할 것을 강권한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