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위로, 바비 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트럼펫 주자인 아버지를 보며 음악에의 꿈을 키웠던 소년. 그 소년이 이제 트럼펫 같은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한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잘 여문 슬픔과 속 깊은 울림을 발견한다.::바비킴,엘르,엣진,elle.co.kr:: | ::바비킴,엘르,엣진,elle.co.kr::

그는 한국말이 서툴다. 말이 서툴다 보니 순화할 줄도 모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고 해야 할 것을 “집이 쫄딱 망했다”고 하고, “광주 음식을 좋아한다”를 “광주에 아주 미쳐버린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뭘 말하려는지 안다. 그가 온 마음을 다해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그의 노래가 그러하듯이. 올 여름휴가 내내 바비 킴의 음악을 들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는 줄곧 허스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행중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흥에 겨운 누군가가 짧게 소리쳤을 뿐이다. “바비,넌 말이 필요 없어!”. 바비 킴이 인터뷰 도중 담배를 물었다. 모자챙을 만지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손놀림이다. 그가 노래하는 모습도 꼭 그렇다. 별로 힘들이는 기색 없이, 숨을 뱉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른 노래가 무섭게 사람 맘을 적신다. 퍽퍽하게 먼지 날리던 가슴을 순식간에 녹녹하게 만든다. 천부적인 목소리. 타고난 리듬 감각. 이 동물적인 보컬에게 달리 무슨 수식어가 필요할까. 읊조리듯 중얼대는 그의 창법은 알 켈리와 어셔의 후예들로 넘쳐나는 국내 가요계에서 단연 독보적인 것이다. 그에게는 착실하게 단련된 요즘 가수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소울’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연습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아왔느냐의 문제다. “두 살 때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의 활동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근데 생활이 생각만큼 잘 안 풀렸죠. 돌이켜보면 저희가 너무 가난했던 거 같아요.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일하셨고, 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죠. 한국에 돌아온 건 집이 쫄딱 망해서였어요.”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아버지 같은 트럼펫 주자가 되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홀로 핀 조명을 받으며 솔로 연주를 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한때는 트럼펫 신동이라는 말도 들었던 그이지만 정작 그의 음악 활동을 가장 반대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고, 그는 그렇게 잠시 꿈을 접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없었다. 부모님은 옷가게, 음식점, 꽃집 등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갔고, 어릴 때부터 모사(模寫)에 능했던 그는 좋아하는 흑인 음악을 따라 부르며 외로움을 달랬다.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아야 했던 사춘기. 1980년대 빌보드 차트를 수놓은 곡들은 그대로 바비 킴의 희망가가 됐다. 한편 1992년 바비 킴의 가족은 미국 LA폭동을 겪으며 빈손으로 귀국해야만 했고, 그 역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TV 드라마 엑스트라, 영어 테이프 녹음, 유아 TV 프로그램 영어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는 사이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겪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인종차별과 가난으로 점철된 20년의 미국 생활, 그리고 뒤이은 10여 년의 무명 생활. 숱하게 회자됐고,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바비 킴의 쓰디쓴 인생 이야기.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종종 그가 ‘아프다’고 말한다. 밝은 노래를 부를 때조차 그의 목소리에는 뜻 모를 애환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한편 귀국한 지 2년 만에 닥터레게의 멤버로 데뷔한 바비 킴은 2001년 힙합3인조 부가킹즈를 결성하면서 래퍼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보컬로 데뷔하고 싶었지만 시대가 그를 원치 않았다. 얇고 또렷한 목소리가 각광받던 시대였다. 포효하듯 뱉어내는 바비 킴의 보컬은 트렌드에 맞지 않았다. 친한 선배들조차 가수는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의 음악적 기호가 바뀌었고,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대망의 첫 솔로 앨범 발표. ‘고래의 꿈’이 수록된 이 앨범을 통해 바비 킴은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바다의 큰 고래’처럼 세상이라는 수면 위로 펄쩍 튀어 올랐다. 사람들은 그의 개성 있는 보컬에 열광했고, 래퍼가 플로를 타듯 리드미컬하게 미끄러지는 그의 창법에 열광했다. (‘고래의 꿈’에는 그의 아버지 김영근 씨의 트럼펫 연주가 삽입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터뷰 때마다 종종 “아버지가 나를 살렸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정규 솔로 앨범과 부가킹즈 앨범, 스페셜 앨범을 번갈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면서 음악 인생에 또 한 번 전환점을 맞는다. “아까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한 모녀 분이 사인을 청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소나무’ 팬이고, 딸은 ‘사랑, 그놈’ 팬이래요. (웃음) 드라마 OST에 참여하면서 팬층이 넓어졌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게 됐죠. 처음엔 고민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아, 바비 킴 인기 좀 얻더니 아예 대중적으로 가는구나’ 할까 봐. ‘소나무’는 저에게 ‘고래의 꿈’ 다음으로 중요한 기점이 된 노래예요. 그 노래 덕분에 제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죠.” 그래서인지 나이 어린 사람들 중엔 바비 킴을 발라드 가수로 인식하는 이가 많다. 그저 노래만 잘 하는 보컬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는 데뷔 17년 차 가수이자, 자신의 앨범 전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또한 힙합신의 대표적인 크루인 무브먼트의 큰형님이자 여전히 부가킹즈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엄연한 힙합 뮤지션이기도 하다. 한편 그는 지난 4월, 정규 3집 앨범 을 발표했다. 힙합, 레게, 발라드, 포크, 트로트 등 각종 장르를 맛깔스럽게 비벼낸 앨범으로, 발매하자마자 이효리와 2PM을 제치고 국내 음반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타이틀곡 ‘남자답게’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전국투어 콘서트 ‘My Soul’도 어느새 마지막 대장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야흐로 바비 킴의 시대다. 바비 킴이 무대 위에 오르기 전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남을 위해”다. 자신의 노래 제목인 ‘파랑새’처럼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인생의 생채기가 많은 그는 다 잘될 거라고 섣불리 격려하지 않는다. 나이 어린 가수들이 새치 혀로 희망의 메시지를 쏟아낼 때, 그는 다소 체념한 시인처럼 관조하듯 읊조릴 뿐이다. ‘인생은 가시밭길’이라고, 그래도 ‘신발 없이 나는 걸어간다’고.(‘하루살이’ 중)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 이 가시밭길을 걸어보지 않겠냐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보통의 위로. 우리가 바비 킴을 사랑하는 이유다. 지나치게 솔직한 바비 킴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던졌다. 물론 기대해도 좋다.바비 킴은 발라드 가수? 힙합 가수?다 하고 싶은 가수. 3집 앨범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소울풀(soulful). 요즘 즐겨 듣는 앨범 3장 바비 킴 1, 2, 3집. (일동 폭소) MP3 다운로드에 대한 생각 (에디터의 아이폰을 가리키며)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이런 기계를 별로 믿지 않는다. 괜찮은 뮤지션이다 싶으면 레코드숍에서 앨범을 구입해 CDP로 듣는다. 요즘 힙합신에서 가장 경계하는 인물 지금 군대 가 있는 다이내믹 듀오. 존경하는 드렁큰 타이거와 윤미래. 그리고 요즘 떠오르는 샛별들. 슈프림팀과 더블K. 나보다 랩,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 너무 많다! 일단 랩은 우리 무브먼트 식구들.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노래는 김범수, 임정희. 목소리 톤이 좋은 사람으로는 케이윌, 길학미. 뮤지션 친구 중 내가 봐도 정말 얄미운 천재는? 타블로. 너무 똑똑해서 짜증 난다. 대화할 때 보면 항상 남들보다 한 계단 위에 있다.당신의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던 적이 있나? 어떻게 내가 내 목소리를 싫어하겠나. 그저 데뷔 초에 남들이 하도 목소리 가지고 구박을 하니까 ‘아, 내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안 맞는구나’ 싶었지. 본인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소리 인간으로 따지면 할아버지. 악기로 따지면 트럼펫.트럼펫을 다시 불 생각은 없나?없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뭘 하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뒤늦게 다시 시작하는 건 싫다. 무명 시절 바비 킴의 희망가는?‘고래의 꿈’. 그 노래를 만들 당시에는 무명이었다.노래방 18번 노래방을 굉장히 싫어한다. 24시간 하는 일이 노랜데… 근데 요즘은 술만 마시면 자꾸 노래방을 찾는다. 미칠 노릇이다. 18번은 신촌블루스의 ‘골목길’. 가창력이 그다지 필요 없는 노래라 편하게 부르기 좋다. 국내 인디 음악에는 관심 있나? 있다면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밴드는? 관심 많다. 가끔 홍대 카페 같은 데서 인디밴드 친구들하고 통기타 치면서 놀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낀다. 특히 이번 내 앨범에서 피처링을 맡은 ‘10센티’와 ‘우주히피’를 좋아한다. 당신이 가장 자신 없는 음악 장르는? 헤비메탈. 목소리 때문에. 어렸을 적 동경했던 사람은? 그때그때 바뀌었다. 무하마드 알리, 이소룡, 야구선수…. 영원히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 처음 아버지의 트럼펫 공연을 본 순간. KBS에서 주최한 큰 무대였는데, 아버지가 어떤 유명 가수의 노래 중간에 솔로 연주를 하셨다. 그 모습에 반해 ‘나도 아버지처럼 돼야지’ 생각했다.최근 전국투어 콘서트 중 먹었던 음식 중 최고의 음식 광주의 모든 음식. 광주에서는 어떤 식당에 가건 밥에다 겉절이만 있으면 오케이다. 요리 선수라던데,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일단 정정하자면 나, 요리 선수 아니다. 그냥 있는 재료를 다 섞는 게 내 방식.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퓨전 볶음밥. 잘하는 스포츠 축구보단 야구.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 여기, 압구정동. 연예인을 의식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다. 뮤지션으로서 영향 받고 싶은 동네는 홍대. 주량은 얼마나? 어우, 분위기만 좋으면 무한대지. 요즘 자주 가는 술집압구정에 있는 모 꼬치집. 이름을 까먹었다. 문자가 오갈 때 마지막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당신인가? 선배들한테는 그렇고 후배들한테는…(웃음) 대부분 끝은 내가 맺는 거 같다. 내가 남한테 문자 씹히는 걸 워낙 싫어해서….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 있을 때 기대하게 되는 누군가가 있나? 옛날 여자친구들. 마지막 연애는 언제? 8년 전. 이런 여자 멋있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여자.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이 있다.만나보고 싶은 직업의 여자 선생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너무 멋있다. 엄마같이 푸근한 느낌도 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나의 노래 ‘사랑, 그놈’.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 쌍꺼풀이 있는 여자? 없는 여자? 상관없다. 그나저나 질문 참 재밌네. 계속해봐라. 요즘 갖고 싶은 IT기기 아이폰. 쉬는 시간에 주변 사람들은 다 아이폰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만 CDP 듣고 앉아 있자니 좀 심심하더라. 트위터는 하나? 전혀.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격투기. 야구 시즌에는 ‘미안하지만’ 롯데 경기. 그리고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의 경우 동물이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본다. 유튜브에서 CCTV 영상 찾아보는 것도 좋아하고. 누가 도둑질하는 장면이나 경찰이 일반 시민을 때리는 영상 같은 거. 리얼리티에 미친다. 자주 하는 욕 안 한다.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발음이 웃겨서. 무대에 오르기 전 스스로에게 하는 말 남을 위해.탤런트 박준규와는 무슨 관계?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사이) 근데 내가 봐도 자꾸 닮아가는 거 같다.저스틴 팀버레이크와는 무슨 관계? 오, 그 사람은 멋있지 않나. 동네 형 같은 이미지도 있고. 좋다. 마음에 든다. 내인생 최고의 규칙위반 한국에서 어학당 다니던 시절, 편의점에서 육포 훔치다 경찰한테 잡혔을 때. 너무 배고파서 그랬다. (매니저 왈, 그런 얘기 좀 하지마…) 자신의 외모 중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과 불만족스러운 부분 코. 그리고 더러운 피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멋있을 때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나서 관객들한테 박수 받을 때. 예의상 박수 치는 게 아니라 정말 가슴으로 느꼈다는 게 전해지는 순간. 기분 좋은 별명과 기분 나쁜 별명 ‘랩 할아버지’는 좋고, ‘힙합 대부’라는 별명은 좀 부담스럽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 가족, 하나님 그리고 이제는 마이크로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울 때 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볼 때. 한 접시에 있는 음식을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민족이잖나. 어릴 때부터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에 관한 가장 화났던 기사 미국에서 조카를 업고 있는 나를 보고 어떤 기자가 쓴 기사. ‘바비 킴, 사실은 68년생 애기 아빠다’라고 보도가 나갔다. 나이가 드는구나 싶을 때는 언제? 힘든 스케줄을 끝내고 나서 다리가 풀렸을 때. (웃음) 내 마음속 ‘어린 바비’에게 하고 싶은 말 아직 갈 길이 멀다. 거만해지지 마라. 가장 최근에 운 기억은? 얼마 전에 처음으로 집을 샀는데 부모님이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아마도 이제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신 거 같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 올 추석에는 뭐 하나? 전국투어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 간다. 휴가가 아니다. 치료 받으러 가는 거지. (웃음)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유럽.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여행 갈 때 꼭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 지갑, 나의 모든 모자들 그리고 비누. 피부가 예민해서 외국에 가면 꼭 트러블이 생긴다. 바비 킴에게 모자란? 팬티 다음으로 꼭 챙겨야 하는 물건. 그리고 나의 자부심. 인터뷰 끝나면 뭘 할 건가.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 거다.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모를 때가 많고, 정체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질하면서 “넌 이러면 안돼!”라고 말해주는 선배들이 필요하다.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면? 일단 음악은 계속할 거 같고… 어쩌면 술장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도 기회는 많은데, 아직은 음악적으로 할 일이 많다. 아참, 그리고 와이프랑 아들이 한 명 있을 거 같다. 당연히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