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 몸뚱어리는 재산이다.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 요즘 더 절실해진다. 최근 청와대는 의료 민영화에 적극적인 인물을 보건복지 비서관에 발탁했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치와 관련한 법률은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의료 민영화, 이 오싹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막말로,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고, 암도 정복해가는 시대에 무슨 ‘오버’냐고? 병원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만 골라 받고, 값비싼 수술비로 산 송장을 치러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미국의 얘기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식코>)는 9·11 테러 당시 구호 활동을 벌였던 ‘버림받은 영웅들’을 데리고 쿠바의 아바나로 향했다. 그리고 아바나는, 미국의 의료제도가 버린 그들을 치료(유)했다. 미국과 쿠바.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두 나라는 의료제도에서도 대비된다. 지난 3월, 미국 의회는 의료보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가결 정족수에서 불과 3표 더 얻은 결과였다. 법안의 현실화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려 100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열었다. 전 국민의 98%가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는 쿠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이다(<또 하나의 혁명, 쿠바 일차의료>). 이 선명한 대비는 국민의 건강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윤 동기에 근거한 보건 정책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국민의 건강을 인권으로 천명한 쿠바의 의료제도는 근본부터 다르다. 1959년 혁명 이후, 쿠바는 최우선으로 의료혁명에 착수했다. 쿠바의 의료혁명은 ‘건강은 모든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부가 보장해야 할 인권의 하나’로 정의했다. 건강을 사회정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 형평성이다. 성별과 인종, 거주지역과 경제 능력 등 어떤 이유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쿠바 의료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전 국민 무상의료’였다. 쿠바의 의료혁명의 동력은 일차 의료제도에서 나왔다. 혁명 후 세워진 지역종합진료소는 일차의료 모델의 핵심이다. 외래진료 서비스를 기본 뼈대로 한 종합진료소는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전염병 관리와 마을 위생 개선 사업 등을 주도했다. 이 모델은 노인층과 만성질환자를 위한 의료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 기반 의료모델’로 진화했고, 1984년 마침내 ‘가족주치의 모델’로 발전했다. 가족주치의 제도는 120~150가구로 구획한 지역 단위에 의료진을 배치하는 것이다. 주치의는 병원 2층에 살면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책임진다. 기본적인 검진은 물론 당뇨와 고혈압 등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 주민들의 생활습관을 관찰하고 교육한다. 쿠바 의료혁명의 결과는 놀랍다. 혁명 이후 쿠바 사회는 빠르게 감염성 질환을 퇴치했고 영아 사망률과 모자 보건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개선됐다. 국민의 기대 수명 또한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쿠바는 국가 간 의료 협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활발한 학술 교류는 물론 많은 의료인들을 다른 나라로 파견한다. 1998년 <뉴욕 타임스>는 ‘아이티 농촌 지역에는 자국 의사들보다 쿠바 출신 의사들이 더 많다’고 보도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또 하나의 혁명, 쿠바 일차의료>의 공동저자가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쿠바의 의료혁명이 ‘쿠바라는 특수한 정치체제’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정치나 이념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념과 정치적 노선을 가진 정부에 투표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교육 역시 의료제도만큼 중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무상급식’ 논쟁으로 뜨겁다. <학교 급식 혁명>은 이와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다. 런던과 뉴욕, 로마 등의 학교 급식 사례를 생생하게 보고한 이 책은 학교 급식이 단순한 제도를 넘어 먹을거리라는 인간의 기본권, ‘지속 가능한 사회’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로컬푸드와 음식주권, 먹을거리의 공급 사슬과 지역 경제, 정크푸드와 유전자 조작 먹을거리, 기아와 비만, 환경과 ‘돌봄의 윤리’까지, 학교 급식은 우리 시대의 다양한 쟁점들이 얽혀 있는 상징적이고도 실제적인 이슈다. 의료제도가 그렇듯, 학교 급식 역시 정치적인 의지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당신은 어떤 정부를 선택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