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흔히들 뉴욕은 시크, 밀란은 글램, 파리는 아티스틱, 도쿄는 아방가르드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패션,디자이너,스타일,엘르,엣진,elle.co.kr:: | ::패션,디자이너,스타일,엘르,엣진

어느 날 지도교수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안 하는 걸까? 아니면 못하는 걸까?” 패션미학을 전공하고, 박물관 큐레이터로도 근무했으며, 오랫동안 코넬대학에서 재직 중인 샬럿 저루세크(Charlotte Jirousek) 교수는 왜 뉴욕에서는 알렉산더 맥퀸이나 후세인 샬라얀처럼 아트를 다루는 책에 등장할 정도로 획기적이면서 창의적인 패션쇼가 없는지 늘 의문을 품었다고 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정형화된 뉴욕 컬렉션의 현재 모습이 상업적 측면과 연계된 전략적이고 계획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실용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뉴욕 패션 성향에 길들여진 디자이너들의 창의성 부족 때문일까요? K 솔직한 Y의 생각은 뭐야? 뉴욕의 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하는 걸까? 아니면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기준을 넘지 않으려는 걸까? Y 글쎄, 정말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걸. K 2001년 Y&Kei 첫 뉴욕 컬렉션을 위해 준비해간 옷과 소품을 펼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던 스태프들 기억하지? Y 응. 특히 통나무로 제작된 웨지힐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잖아. “당신들의 취향은 알겠어요. 솔직히 멋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뉴욕이에요. 마놀로 블라닉의 날렵함에 익숙한 뉴욕의 에디터나 바이어들은 이 신발을 아주 싫어할 거예요.” 이 말에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디자인이 뉴욕 식 모던함에 길들여진 그들의 이해를 얻으려면 결코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을 할 수 있었어. K 쇼나 무대 관련 미팅 때마다 “패션쇼 10분은 옷만 보여주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왜 불필요하게 무대 연출에 신경을 분산시켜 옷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려야 하는가?”라는 그들의 의견에 맞서 매번 논쟁과 설득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지. Y 우리는 패션쇼란 디자이너로서의 철학과 옷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욱더 강력한 비주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왔잖아.그런데 뉴욕에서는 상업적인 옷으로서 바이어와 관계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지. K 컬렉션 준비 기간 내내 우리의 ‘쇼적인 비주얼적 과장’을 우려한 스태프들이 제발 뉴욕의 상업성을 잊지 말라는 잔소리가 끊이질 않았잖아. Y 맞아. 시즌 컨셉트 설명하는 동안에도 아방가르드(Avant-garde)나 스피리추얼(Spiritual) 같은 단어라도 등장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랐지. K 응. 사실 바이어뿐 아니라 매체의 비주얼을 다루는 뉴욕의 스타일리스트들도 마찬가지였어. 막상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하면 뉴욕 식 ‘시크, 모던, 에지’를 주문처럼 외우곤 했어. Y 뉴욕에서 만난 대부분의 스타일리스트가 집중했던 공통의 키워드는 심플(Simple)과 모던(Modern)이었잖아. 티나 라쿤 기억나? 프랑스에서 에디터로 일한 경력과 스웨덴 출신이라는 점, 게다가 그녀 자체도 아방가르드하게 스타일링했고, 무엇보다 꼼 데 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를 가장 좋아한다는 취향 때문에 함께 일했잖아. K 하지만 막상 스타일링을 시작하자마자 여느 뉴욕의 스타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벨트를 휘두르며 모델의 허리를 잡아 매느라 바빴지. 여기는 뉴욕이기 때문에 반드시 허리나 다리를 드러내 여성성을 강조해야 하며, 스타일링에 있어 뉴욕 식 모던과 에지를 흐트러뜨리는 단 한 치의 오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갖가지 공연과 이벤트가 열리고 제한없는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뉴욕에서, 패션에서만큼은 다른 무엇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러던 중 이번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는 한 달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스위스에서 바젤아트페어를 보고 주요 도시에 있는 좋은 뮤지엄과 갤러리를 순회하며 아트세계의 아름다움을 탐험해 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K 바젤아트페어에서 본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아. ‘Fashion as art, art as Fashion’이라는 주제로 배웠던 지난 학기의 각종 세미나들이 너무 이론적인 학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됐고.Y 그 동안 우리가 디자인을 접근하는 시각도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조작되고 제어된 채 너무 이성적으로만 외부 세계를 탐색했던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주변 사물과 현상에만 집착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과 함께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지. K 응. 런던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 파리의 꼴레트, 밀란의 10 꼬르소 꼬모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멀티숍도 인상적이었어. Y 아티스트의 크리에이티브한 작품들과 각 도시가 주는 이미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낯선 아름다움이란! 패션이란 궁극적으로 바로 그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브랜드의 같은 옷도 어느 도시의 어떤 환경에서 보여지느냐에 따라 주는 느낌도 달랐어. 그렇게 패션은 그 도시의 이미지나 정신과 어울릴 때 가장 매력적으로 어필되는 것 같아. K 밀란에서의 돌체 앤 가바나 매장도 많은 걸 느꼈어. 현재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레이스 드레스와 플라워 프린트 뷔스티에에 아직도 밀란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다니. 그래서인지 그 어떤 도시보다 밀란에서의 모습이 가장 돌체 앤 가바나 같았어. Y 어쩌면 폄하된 뉴욕 패션의 실용주의도 정의와 가치 판단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있는 명백한 이미지와 그 도시만의 분명한 색깔이 있을 때 다음 단계로의 진보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거든. 그런 면에서 뉴욕은 이미 분명한 이미지가 있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나라 패션의 이미지를 단어나 기호,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패션은 해외 브랜드에 밀리고 있으며, 패션계의 속사정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력 있는 차세대 디자이너가 성장하기에 어려운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한 단어로 대변되는 우리만의 어떤 이미지도, 스타일도, 컬러도 부족합니다. 패션 코리아의 진정한 개성과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크리에이티브를 찾아 다양한 즐거움과 가치를 창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우리가 패션 코리아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건 그 필요성을 느끼고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시도와 노력으로 우리나라 패션의 이미지와 색깔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끊임없이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통해 패션 코리아의 미래를 변신시키고 책임져야 할 주체가 우리 자신임을 깨달아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언젠가 한 단어로 규정 지을 수 있는 패션 코리아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는 사실입니다. 오스트리아 빈 시의 제안으로 획기적인 주거 건물을 지어 사람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은 화가이자 조각가인 훈데르트바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낮 꿈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 된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