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호의 빌리엘리어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뮤지컬 프로듀서 문미호에게 <빌리 엘리어트>는 지난 5년 간 한 번도 포기해본 적 없는 꿈이다. 그 꿈의 문턱에서 그는 긍정의 에너지를 설파한다. 행운은 결국 스스로를 믿는 이들에게만 찾아온다는 걸.::문미호,빌리 엘리어트,엘르,엣진,elle.co.kr:: | ::문미호,빌리 엘리어트,엘르,엣진,elle.co.kr::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키 150cm 이하 대한민국 소년 누구나’를 대상으로 한 빌리 찾기 대장정. 1년 반 동안의 고된 트레이닝을 마치고 마침내 무대에 올라갈 네 명의 소년들(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세용, 정진호, 이지명, 임선우)과 문미호. 우리, 스트레치할까. 소년 하나가 입을 연다. 군더더기라곤 없는 몸에 달라붙는 레오타드에 타이즈를 입은 네 명의 소년들, 김세용(13) 이지명(13) 임선우(11) 정진호(12). 곧 이어 소년 하나가 긴 다리를 180°로 완전히 벌린다.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길고 곧게 뻗은 탄탄한 팔다리를 새처럼 사뿐히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소년들. 웨스트엔드 2000회, 브로드웨이 500회 공연이라는 대성공을 거두며 이미 전 세계 420만 명을 감동시킨 뮤지컬 한국판을 위해 1년에 걸쳐 계속된 빌리 찾기 4차 오디션을 당당히 통과하고 다시 1년 반에 걸친 하드 트레이닝을 버텨낸 네 명의 주인공이다. 오는 8월 13일, 드디어 LG아트센터에서 첫선을 보일 뮤지컬 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하고 엘튼 존이 음악을 담당했던 오리지널 버전을 아시아 최초이자 비영어권 최초로 선보이는 무대이자 하반기 대한민국 공연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뒤에는 패션 디자이너에서 큐레이터로, 다시 해외 공연 프로모터, 영화사 투자 담당, 뮤지컬 프로듀서 등으로 끝없이 커리어를 확장해오다 지난 5년간 오직 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온 공연기획사 매지스텔라의 문미호 대표가 있다. 주인공 빌리를 발굴하는 것이야말로 이 뮤지컬의 시작과 끝이다. 긴 트레이닝을 마치고 이제 어엿한 빌리로 성장한 소년들을 보는 기분은 어떤가. 지금 여기까지 온 소년들은 정말 엘리트 중 엘리트라고 보면 된다. 빌리 스쿨에선 비단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교육뿐 아니라 다방면의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모든 걸 가르친다. 아이들로선 정말 경험하기 힘든 교육일 거다. 중요한 건 그 아이들은 충분히 그런 혜택을 누릴 만한 노력을 했다는 거다. 1년 반의 트레이닝 과정은 정말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학교 시험이 있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단 한 번도 늦거나 결석한 적 없었다. 대단한 정신력이지. 솔직히 우리는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세 시간인 경우가 허다한데. 네 명의 빌리 소년들이 특별하다고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사실 이 엄청난 프로젝트의 판권을 공연계에선 나름 신생인 매지스텔라에서 따냈다는 것부터 화제였다. 라이선스 계약을 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들었다.워낙 라는 영화를 좋아했고 그 영화와 뮤지컬을 제작한 워킹 타이틀이라는 회사의 팬이었다. 개인적으로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는 물론 이나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 워킹 타이틀의 행보를 늘 눈여겨보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엔 영화사 쇼이스트에 근무하던 무렵이라 접촉이 쉬웠다. 마침 런던영화제에서 작품을 처음 만난 후 바로 문을 두드린 거지. 그렇게 꾸준한 설득 작업을 거쳤나. 내가 그들에게 접촉을 한 시점 자체가 너무 초창기였다. 아직 뮤지컬도 나오기 전이었으니 그들에겐 런던에서 먼저 성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 다른 제안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던 거지. 직접 만나고 나서는 오히려 발전적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한국영화 시장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시아 최초의 공연을 한국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도 무모한 도전이었을 텐데. 뮤지컬만 제작하는 다른 회사였다면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겠지. 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제작비만 135억원 규모다. 비즈니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제작비 규모가 굉장히 큰 편인데 워낙 그렇게 투자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품이어서 그렇다. 무대만 해도 영국, 미국, 호주, 한국 4개국에서 함께 만든 굉장히 섬세한 영화 세트다. 80년대 배경을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소품에서 의상까지 모두 영국의 빈티지 숍에서 공수해왔다. 무대 바닥만 해도 사운드를 잘 잡아내기 위해 110개의 마이크로폰이 들어가 있는데 그게 다 돈이잖아. 그런데 그걸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그걸 설치하지 않으면 그만큼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지 못할 테니까. 차이를 아는 이들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일 테니.절대 포기 못하지. 결국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진정성으로, 관객들이 느끼는 진짜 감동으로 남을 거라 믿는다. 티켓 예매 반응도 좋았고 지금까지는 순조로운 흐름이지만 흥행에 대한 부담은 어쩔 수 없겠지. 오픈런이라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장기 공연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LG아트센터에 올릴 1차 공연 관객 수를 25만 명으로 보고 있는데 그 25만 명이라는 수요 자체보다 한국시장에서 7개월 공연이라는 건 역시 만만치 않으니까. 하지만 작품 자체의 힘으로 충분히 끌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와 공연은 언뜻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분야인데 두 분야를 모두 겪어보니 어떤가.굉장히 다른데 솔직히 둘 다 욕심이 난다. 뮤지컬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하고 싶었고 또 영화를 하다가 다시 뮤지컬이 하고 싶어서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영화는 제작이 끝나고 포스트프로덕션이 완성되면 프린트 하나로 몇 개국이든 세일즈를 할 수 있는 데 비해 뮤지컬은 똑같은 작품을 다음 시즌에 다시 올리려 해도 또 그 만큼의 시간과 사람을 투자해야 올릴 수 있잖아. 하지만 라이브 공연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무대에 올릴 때의 그 짜릿함은 또 영화와 비교할 수 없거든. flashObject2('winTop','/elle/svc/elle_admin/etc/Sub_Video_Player.swf', '100%', '320', 'flvpath=rtmp://movie.atzine.com/vod/REPOSITORY/2010/08/09/MOV/SRC/01AST022010080942782011240.FLV',','transparent'); 무대의 중독성은 한 번 맛본 사람은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무대는 마약이다. 영화는 분명 매력 있지만 마약 같지는 않다.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여도 스무 번, 서른 번을 끝까지 보는건 힘들잖아. 그런데 뮤지컬은 똑같은 배우가 나와도 매일 밤 다르거든.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의 그 짜릿함, 전율. 그건 어떤 성취감과도 비교할 수 없다. 어쩌면 그 하나를 위해 다시 뮤지컬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장성만 놓고 보면 나는 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니 파이낸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또다시 정답이 영화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내가 영화계에 있었던 4년은 영화라는 장르가 가장 꽃을 피우던 시기여서 그 화려함이 아직 잊히질 않는 것 같다. 내년엔 를 올릴 예정인데 그 작품도 영화가 토대로 된 작품이어서 더 잘 맞지 않나 싶다. 지금은 뮤지컬에 올인하고 있지만 사실 패션 디자이너에서 공연 프로모터로 다시 영화에서 또 뮤지컬로 다양한 필드를 넘나든 커리어 전환이 드라마틱하다.워낙 내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이 사람은 좀 끈기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나? 하하.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 힘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결국엔 긍정적인 마인드인 것 같다. 나는 말의 생명력을 믿는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건 될 거야’ ‘반드시 돼’ 이런 생각을 가지면 꼭 된다. 그리고 약간의 행운. 나는 내가 재미있는 걸 하고 싶거든. 예를 들어 지금 하는 것보다 다른 무엇이 더 재미있다면 기꺼이 그걸 택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신감에서 재미가 생기고 그래야 열심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패션 디자인을 할 때 내가 생각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매일 스케치를 해야 하는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거다. 그래서 알았다. 아, 이게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너무 재미없으니 그만둬야지. 게다가 그땐 20대였으니 지금보다 무모하다면 무모했다. 그리고는 당시 한국 작가들을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80년대였으니 내가 생각이 좀 빨랐던 것 같다. 한국의 미술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뉴욕 소호나 첼시 같은 곳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때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쫓아 단계적으로 나아갔는데 생각해보면 늘 행운이 따라와줬다. 실패는 없었나?물론 있었지. 20대 후반에 회사를 차렸다가 쫄딱 망했다. 살던 집 팔고, 타고 다니던 차까지 팔아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무작정 파리에 갔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그림만 그리면서 살겠다고 작정한 거지. 파리에서 다락방을 하나 얻고 벨기에 국경에 가면 중고차가 싸다길래 거기까지 가서 단돈 3천달러짜리 털털 소리 나는 10년 된 아우디를 하나 샀다. 그런데 인연이 닿으려니까 거기서 또 굉장히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팀을 알게돼 결국엔 6개월 촬영 내내 현장에 있으면서 영화라는 게 참 매력적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런 건 솔직히 운이지 않나. 하지만 그런 행운을 불러오는 건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큰일났어’라며 동동거리기보단 ‘될 거야’ ‘다, 임자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다. 자기가 믿어야 행운이 오고 그 행운에 감사해야 다음에 또 행운이 오는 거라 믿는다. 두 번째 회사 매지스텔라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뭐가 가장 달라졌나. 역시 경제 관념이지. 예전엔 부모님에게 받은 자금으로 쉽게 썼다면 이젠 자금에 대한 계획이나 스케줄링에 대해 아주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나간다. 단돈 100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간직하고 있는 열정의 색깔은 조금 다른가? 어쩌면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겠으나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상대를 알고 이해해야 물건도 팔 수 있듯이 모든 일들이 그런 것 같다. 나는 정말 뜨거운 사람이다. 열정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자금 부분 외에 비즈니스를 하면서 꼭 지키는 원칙?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것. 타협을 하면 굉장히 일이 쉬워질 수 있는데 워낙 대나무 같은 성격이다 보니 그게 내가 생각하는 원칙과 어긋나면 아니라는 거지. 어떤 게 맞는지 아직까진 모르겠다. 50대가 되고 조금 더 현명해지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업이라는 게 원래 타협의 연속 아닌가? 억지 부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말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긴 한데 원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경우, 사실 타협만 하면 되는데 성격상 그게 안 되더라. 참 피곤한 스타일이지. 크리에이티브가 강조되는 공연은 물론이고 비즈니스에서도 결국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자 숙제다. 솔직히 사업보다 더 어려운 게 인간관계 아닌가. 사람들이 늘 묻는다. 친한 사람 많죠? 그러면, 물론 아는 사람은 굉장히 많아요, 라고 대답한다. 솔직히 정말 친한 사람은 몇 안 된다. 40대가 되니 인생에서 뭐가 소중한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과연 누군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답은 항상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20대 혹은 30대에도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한 감사하게 된다. 얼마 전 한 배우와 40대로 사는 진짜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눈 적 있었다. 정말이니 믿어도 된다.30대보다 40대가 더 낫다. 가장 왕성하게 일할 때기도 하고 사는 게 즐겁다는 느낌이거든. 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운 40대가 저절로 오는 건 아닐거다. 먼저 무단히 노력하며 치열한 30대를 보내야겠지. 나 또한 나름 굴곡 있는 30대를 보냈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들이었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 잠깐의 실패 시기를 제외하고는 혹시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것 아닌가?생각해보니 그렇네. 20년을 계속 그랬구나. 술도 못 마신다면서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다 어쩌나. 결국엔 또다시 일로 스트레스를 푼다. 밀린 일을 해치우면서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 같은 거 있잖아. 그거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도 남는 거지. 워커홀릭이다. 이메일이 밀려 있으면 주말에도 불안하다니까. 빨리 열어보고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지.잠들기 전에는 뭘 하나.음. 근사한 대답을 해주고 싶은데 솔직히 그냥 쓰러져 잔다. 워낙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서. 하루는 아침 이메일로 시작하는데 그냥 쓰러지니까 밤 생활이 없다. 솔직히 최근 5년은 소셜 라이프라는 게 없었다. 이러다 친구도 모두 없어질까 봐 걱정이라니까.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행복하다. 가 시작하면 더 행복해지겠지? 나는 말의 생명력을 믿는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건 반드시 될 거라 믿는 거지. 그리고 늘 내가 재미있는 일, 자신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자신감에서 재미가 생기고 그래야 열심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주 약간의 행운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