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유머가 어우러진 마르탱 파주의 언어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난해함’으로 정리되는 프랑스 문학에 대한 편견은 마르탱 파주를 만나면서 또 한 번 깨진다. 시적 감성과 철학적 사유, 발랄한 유머가 어우러진 마르탱 파주의 언어들. 이에 매혹된 <엘르걸>이 파리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마르탱 파주,엘르걸,엣진,elle.co.kr:: | ::마르탱 파주,엘르걸,엣진,elle.co.kr::

1 동료 작가와 함께 사용하는 파리의 아틀리에.2 3 글쓰기를 사랑하는 작가 마르탱 파주.4 정돈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서재.martin page 철학과 예술, 역사가 마술적으로 어우러진 언어로 이야기하는 마르탱 파주. 프랑스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인 그는 감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르탱 파주의 글은 일단 재미있다. 기발하며 유머가 돋보인다. 또한 시적이며 철학적이어서 입 안에서 곱씹게 된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는 나도 몰랐던 내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다. 최근 출간된 나 는 어린이책의 외향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성인 독자들에게 놀랍도록 풍부한 감흥을 안겨준다. 작가 마르탱 파주의 면면 역시 흥미롭다. 대학에서 일곱 가지의 전공을 공부했고, 여섯 편의 소설을 쓴 뒤에야 첫 번째 책을 낼 수 있었으며, 정돈되지 않은 창고 같은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글을 쓰는 행위를 얼마나 사랑하며, 삶의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가이다. EG 지난 5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러 한국을 다녀갔다고 들었다.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의 시간은 어땠나? 파리보다 훨씬 큰 서울의 규모에 놀랐다. 출판사 관계자가 소개해주는 흥미로운 장소들을 많이 방문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프랑스 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의 친근함이 인상 깊었는데, 특히 귀여운 소녀들이 나와 사진 찍길 원하며 스스럼없이 다가와주어 기분 좋았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내 소설 를 무대로 옮긴 연극을 보게 된 것. 한국의 어린 배우가 한국말로 내 소설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EG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등 무려 일곱 가지를 전공했다던데. 솔직히 내가 성실한 학생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일곱 가지의 전공에 대한 학업을 다 마친 것도 아니고. 단지 복수 전공을 통해 여러 분야와 학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길 원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그저 단순히 문학을 전공하고 싶진 않았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야간 경비원, 페스티벌 안전 요원 등 다양한 직업 체험도 해봤다.EG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어 첫 번째 책을 받아 들었던 때를 기억하나?작가 입문까지 그리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처음에 썼던 여섯 편의 소설 모두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고, 2000년 로 비로소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하지만 그 전의 시간이 허송세월이었던 건 아니다. 여섯 편의 소설을 쓰면서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한 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보면 창피할 만큼 부족한 글이지만. EG 최근 한국에 ‘마르탱 파주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세 권의 책 , , 가 출간됐다. 모두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딱히 어린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맞았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기고,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자만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한한 장점을 지녔고 오히려 우리 어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EG 에서 주인공 소년은 전쟁이 남긴 상처로 ‘지진’이 되어버린다. 혹시 당신도 ‘지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나의 소설들은 모두 자전적인 성향이 짙다. 몇 해 전 개인적으로 나쁜 일들이 겹쳐 슬럼프에 빠졌는데, 마치 내 안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정신질환을 앓으신 아버지 때문에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는데, 결국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지진들을 이겨낸 것 같다. EG 그렇다면 초콜릿 케이크와 대화를 나눈 적도 있나? 에서 생일을 맞은 외로운 소년이 그러하듯. 하하. 아직 케이크와 대화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작가란 직업의 특성상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때때로 물건이나 주변 상황에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비처럼…. EG 당신이 쓴 비에 관한 에세이 를 인상 깊게 읽었다. 여전히 비를 좋아하는지? 비는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비가 오면 마치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을 맞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존재감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모른다. EG 당신의 글쓰기 습관이 궁금하다. 그리고 글쓰기 외의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도.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내용 구상은 노트에 메모해두지만, 글을 쓰고 교정을 하는 작업은 컴퓨터를 사용한다. 낮에는 글을 쓰느라 대부분 혼자 있으니, 저녁에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영화를 보거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EG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 글을 쓰는 목적이나 기쁨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줄곧 책을 읽고글을 썼다. 어떠한 목적을 운운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에겐 이미 산소처럼 꼭 필요하며, 내 모든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작가로 살면서 얻는 큰 기쁨 중 하나는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쓴 책들이 15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이를 통해 낯선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다.EG 하지만 갈수록 출판업은 쇠락하고 젊은이들은 책을 멀리한다. 이에 대한 작가로서의 생각은? 나는 요즘에도 독서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양한 교양 서적을 접하지 않고 흥미 위주의 책만 읽는다는 것.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과 배움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EG 요즘 프랑스 문학계의 경향은 어떤가? 또 주목할 만한 작가를 추천해준다면? 예술계 전반이 그러하듯 문학계에서도 비상업적인 문학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 상업적인 작가, 상업적인 작품만 주목받는 풍토가 안타깝다. 문학계에 발을 내딛는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할 만한데, 그중 자코타 알리카바조비크(Jakota Alikavazovic)를 추천한다 (1979년생인 그는 2007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받은 신세대 작가이다).EG 파리에서의 삶이 주는 최고의 특혜는 무엇인가? 알다시피 파리는 풍부한 문화를 지닌 매력적인 도시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많은 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최신 개봉작뿐만 아니라 고전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파리에서는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으니까. 다만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요즘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집을 구해 파리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EG 현재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나? 그리고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현재는 ‘여성’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으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의 아버지에 대해 써보고 싶다. 어린 시절 병든 아버지 때문에 상처 입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덕분에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에, 지금은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