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와 매니시의 경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레이디와 매니시의 경계를 따지지 말 것. 이미 패션계는 젠틀우먼이 평정했으니.::피비 파일로,틸다 스윈턴,프레야 베하,엘르,엣진,elle.co.kr:: | ::피비 파일로,틸다 스윈턴,프레야 베하,엘르,엣진

젠틀우먼의 발견잘생겼다, 사귀고 싶다, 사랑에 빠질 것 같다…. 마치 아이돌 팬 사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유아기적인 미사여구는 다름 아닌 한 패션 사이트에서 발견된다. 스크롤의 압박이 조여오는 고화질의 사진과 동영상 앞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손가락이 오글거리는 모습이라니, 마초적인 남성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덴마크 출신의 모델 프레야 베하 에릭슨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삐쩍 마른 몸매와 360°를 돌아가며 입체적으로 깎아놓은 콧날,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막 만져주고 싶은 복슬거리는 짧은 웨이브 헤어를 차례로 훑다보면 설레기까지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아니다. 샤넬 캠페인에서 몇 시즌째 전속 모델처럼 활동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의 뮤즈가 될 정도로 그녀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마성의 여인’이라는 별명까지 달았을까. 예부터 프레야처럼 중성적인 스타일의 여성은 있어왔고, 갑작스런 이슈도 아니다. 단어의 느낌은 약간씩 다르지만 과거에는 유니섹스로 불렸고, ‘Boy Meets Girl’이라는 문구도 한창 사용됐으며, 때로는 보이시(Boyish)나 매니시(Mannish)라는 트렌드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단어도 치명적인 중성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외국의 한 잡지를 마주하게 됐다. 의 창간호 모델인 ‘피비 파일로’.패션 셀러브리티들을 표지 모델로 기용하기로 유명한 에서 창간한 . 첫 번째 모델로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비 파일로가 블랙 재킷에 빈티지 스카프를 늘어뜨린 채 오묘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는 젠틀우먼에 압도당할 기세다. 피비 파일로, 그녀만큼이나 셀린 컬렉션에서는 젠틀우먼을 위한 의상들로 가득하다. 처음 셀린을 맡은 후 인터넷에 공개한 그녀의 첫 번째 2010 리조트 컬렉션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로맨틱과 섹시, 부풀려진 어깨 각과 각종 장식이 혼재된 여성 컬렉션의 난잡한 세계가 마치 그녀의 등장으로 단숨에 평정된 것 같았으니까. 벨트까지 착용한 채 발끝까지 오는 단정한 팬츠, 하드한 레더 소재로 된 직선적인 톱, 성역을 표현하지 않는 베이지, 화이트, 블랙 등의 관대한 컬러들. 로맨틱한 요소를 배제했음에도 남성적인 요소와 적절히 어우러져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의상들 말이다. 트렌드보다 입기 편한 의상을 염두에 뒀고 한 사람의 옷장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는 와의 인터뷰에서처럼 1부터 10까지 클래식하면서도 클린한 컨셉트의 의상을 담아냈다. 물론 비슷한 이미지의 중성적인 옷들은 다른 S/S 컬렉션에서도 발견된다. 키튼힐로 중성적인 매력을 업그레이드한 끌로에의 레몬 컬러 수트를 입은 금발의 모델은 마치 미소년 같고, D&G의 데님 셔츠에 보잉 선글라스를 쓴 채 척척 걸어오는 커트 머리의 모델은 어느 훈련소의 교관 같았다. 랄프 로렌은 남성복을 그대로 여성복에 옮겨와 시가를 물고 포커를 칠 것 같은 유쾌한 댄디 보이가 연상된다. 캐릭터는 각각이지만 각기 다른 중성미의 여인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젠틀우먼의 마성 중성미에 대한 관심은 트렌드와 상관없이 여성들에겐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같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던 부류는 라라 스톤이나 조지아 재거처럼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익스트림한 여성성의 소유자보다 커트 머리에 반항기 있는 눈빛을 보내던 ‘오빠’로 통하는 언니들이었다. 바로 모델 프레야 베하나 안냐 루빅 같은 부류 말이다. 두 모델의 데뷔 연도는 꽤 됐지만 부침이 심한 모델계에서 오히려 인기가 사그라들기는커녕 쇼트 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모델 아기네스 딘과 타오 오카모토 역시 주목받을 수 있던 데에는 커트라는 머릿발의 힘이 한몫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신기한 일이 분명하다. 여성성을 줄였더니 오히려 더 인기 있어지더라는 결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다. 아이러니한 이론과는 달리 예부터 불분명한 성정체성 소유자들은 남녀 불문하고 ‘후리고’ 다녔다. 90년대 홍콩영화의 카리스마 언니로 통하던 임청하가 영화 에서 수련을 열심히 한 결과 마성의 여성으로 변했다는 계산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그 영화에서도 임청하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모두 혼줄을 빼놓게 하는 인물로 등장했다. 실존 인물도 엄연히 존재한다. 말할 필요도 없는 30년대의 고전 아이콘인 마를렌 디트리히! 당시 육체파 여배우들이 가슴과 힙을 과시하며 여성성으로 어필할 때 중절모에 더블 패드가 들어간 수트, 다리를 꼰 채로 담배를 피는 남성적인 모습으로 오히려 섹시하게 어필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지 않나. 2000년대 초반, 모델계를 평정하며 전설로 통하는 스텔라 테넌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금발의 커트 머리가 한눈에도 우아해 보이는 그녀는 왕족 출신이라는 신분까지 더해지며 샤넬과 버버리와 같은 클래식 브랜드의 얼굴로 통했다. 또 다른 대표주자인 배우 틸다 스윈턴은 로마시대 석고상 같은 마스크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풍긴다. 1 섹시한 중성미로 패션계를 사로잡은 모델 ‘프레야 베하’.2 로마시대 석고상 같은 신비로운 마스크의 배우 ‘틸다 스윈턴’.마성의 여인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중성미가 매력적이라는 건 알겠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예쁘기보단 멋지고 쿨하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들이 평가받길 원하는 단어 ‘에지, 시크함’을 대표하는 스타일인 것이다. 게다가 매니시한 재킷을 즐겨 입는 케이트 모스나 빅 셔츠로 스타일링하는 알렉사 청의 내추럴 시크와 교집합을 이룰 정도로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그 결과 중성미에 대한 여성들의 갈망은 스타일링 아이템 면에서도 많은 진보를 가져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명 트렌드세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남성적인 테일러드 재킷, 화이트 셔츠, 옥스퍼드 슈즈는 이제 일상적인 아이템이 됐으니까. 활동이 자유로우면서도 세련돼 보이기까지 하니, 굳이 잡지에서 선구자처럼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아이템이 될 수밖에. 이제는 레페토의 플랫 슈즈나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재킷은 구태의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너무 일반화된 아이템이다. 오히려 남성복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늘어나 톰 브라운, 패트릭 어벨,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등의 젊은 감각의 남성 컬렉션을 챙겨보기도 하고 구매로 이어질 정도다. 그렇게 스멀스멀 자라나던 중성미에 대한 관심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니멀리즘의 컴백과 함께 셀린 컬렉션을 도화선으로 삼아 최고조에 다다랐다. 발맹 효과로 불렸던 ‘어깨뽕’을 장착한 전사들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셀린 효과로 재빨리 대체되고 있음은 최근의 2011 F/W 컬렉션이 증명한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옷이 심플해질수 있나 싶을 정도로 직선자를 대고 패턴을 뜬 룩들이 질 샌더와 캘빈 클라인, 지방시, 발렌시아가, 끌로에 등에서 목격됐다. ‘잇’백처럼 한철 지나면 촌스러운 아이템이 돼버릴 것이 뻔한 과도한 힘주기나 ‘매니시’나 ‘레이디’라는 용어조차 지겨울 대로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피비 파일로 식의 중성적인 스타일링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대안으로 여겨진 게 분명하다. 보이시한 의상을 즐겨입던 사람에게는 성숙함을, 매니시한 의상 선호자에게는 배합이 잘된 여성미를, 레이디라이크 룩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비즈니스 우먼에게는 섹시함과 파워풀함을 안겨줄 것이기에! 쿨함과 시크함의 최상급 단계인 젠틀우먼 스타일은 타이레놀처럼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당분간은 잊게 해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