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작품 <낮>과 함께 서울을 찾은 마크 레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어차피 이건 소설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린 언제든 기꺼이 그가 창조한 아슬아슬한 모험과 미스터리에 빠져 현실의 번뇌를 잊고 희미하지만 아직 분명히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확인한다. 가장 소설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 아홉 번째 작품 <낮>과 함께 서울을 찾은 마크 레비를 만났다.::마크 래비,낮,엘르,엣진,elle.co.kr:: | ::마크 래비,낮,엘르,엣진,elle.co.kr::

우리는 자주 제2의 인생을 꿈꾼다. 아닌 척, 모두 잊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 혼자 품고 있던 소중한 꿈. 언젠가 지리멸렬한 현실의 고리를 끊어내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온 세상이 기억할 한 권의 책을 쓰고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 매혹되는 건 현실에선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우리 안의 꿈과 욕망이 아직 실현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생의 반전을 이야기할 때 그는 종종 동경의 모델이 된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대학생 시절 일찌감치 로지텍 프랑스를 차려 CEO가 됐다. 커리어를 바꿔 새로 회사를 차려 시작한 건축가로서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소설가가 됐다. 서른 일곱의 나이에 선보인 한 권의 책이 그 시작이었다. 출판사에 보낸 지 일주일 만에 출간이 결정된 첫 번째 작품 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판권이 팔려 영화화됐고 마크 레비는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삶은 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대로다. 등 출간하는 책마다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대중과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작가. 골치 아픈 현학과 잘난 척 대신 진짜 재미가 ‘보이는’ 소설을 쓰는 작가, 마크 레비. 그가 와의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것은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블랙 수트에 셔츠를 받쳐 입고 가벼운 미소를 띄운 채 그는 내게 명함을 건넸다. 두툼한 종이에 이름과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만 적혀 있는 심플한 명함이었다. 소설가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본 적은 많지 않았다. 작품 커버에 등장하는 사진만으로 이쪽에서 먼저 알아보는 건 당연했고 그들은 대개 그런 느낌을 풍기곤 했다. 굳이 속세의 명함 같은 건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 에이전트라던가 주변 전문가들이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그들은 세상 밖에서 마법처럼 뚝딱 작품을 들고 나타날 것 같은 느낌. 숨막힐 것처럼 날카롭게 재단된 톰 포드 수트를 입은 영화 의 완벽주의자거나 세상과 도통 어울릴 줄 모르는 은둔형 천재일 것 같다는 막연한 이미지. 하지만 그는 어줍잖은 이미지의 범주에서 가볍게 비껴나 있었다. 처음 악수를 나눌 때는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 같더니 카메라 앞에 세워 이런저런 요구를 하니 쑥스러워하 하면서도 금세 카메라에 적응한 셀러브리티로 변신했다. 지금껏 전 세계에 자신의 책을 1700만권 이상 팔아 치운 스타 소설가다운 모습으로. 촬영이 끝나고 아메리카노 한 잔과 토마토 샐러드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입에 문 채, 책과 사랑과 삶이라는, 답도 없는 거창한 주제를 함께 논하는 순간 비로소 그는 다시 내가 아는 마크 레비가 됐다. 한숨에 마지막까지 읽어 내리고는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지는 데뷔작 의 남다른 감수성 그대로, 신비한 목걸이를 둘러싸고 인류의 기원과 생명의 신비에까지 이야기를 펼치는 가장 최신작인 의 엉뚱한 모험심 그대로. 새 소설 은 지금껏 선보인 어떤 작품보다 두껍고 스케일이 큰 소설이다. 실제로는 재작년 뉴욕에서 쓰기 시작했지만 처음 이야기에 대해 생각한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료 조사만 몇 년이 필요했다. 소설을 위해 두 번 정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책은 두 권으로 출간했는데 거의 1000장에 가까운 분량이었다. 이쯤 되면 일종의 대하 소설인데 스케일이 커지고 소설이 길어질수록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아,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인형극을 조종할 때 등장하는 인형이 많아지다 보면 어떤 인형들은 잊혀지고 소외될 수도 있거든. 비슷한 마음으로 등장인물과 사건 사이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잠시 혼이 나갔던 것 같다. 계속 거대한 무언가에 지배당하는 느낌이었다. 탈고하고 난 후엔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이번 소설을 쓰며 새롭게 도전한 것이 있다면? 작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도전의 연속인데 소설 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우선 주인공의 직업을 알아야 했다.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니 별 수 있나. 주인공인 아드리안이 천체 물리학자인데 그가 말하는 대사에 전문성이 없으면 안 되지 않겠나. 게다가 작품의 무대가 전 세계가 된다는 건 그만큼 정보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리적 사실에 부합되도록 정확한 디테일을 위해 상당히 공부해야 했다. 사람들은 종종 소설은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엄청난 공부와 작업량이 뒤따른다.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쓰긴 했지만 소설가라는 것이 결코 편안한 직업은 아니다. 10년 전부터 생각해온 아이템이라면 그 사이 생각도 바뀌고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우선 인물들에 대한 구상을 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그 인물들이 많이 구체화됐다.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여행을 다닌 것 같은, 그들과 친구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사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은 일반 독자들에겐 가장 신비한 대목이다.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탄생시키냐는 거지. 당신은 어떤가. 당신 안에 늘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골라 그때 그때 소설로 탄생시키는 스타일인가? 굳이 분류하자면 맞다. 목수를 떠올리면 쉬울 것 같다. 작업실에 장비가 여러 개 걸려 있으면 그 중에서 오늘은 저걸로 작업을 해야지, 하는 스타일이랄까. 하나씩 하나씩. 어떤 계획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작품을 한다기보다는 방향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바다에 나갈 때 아무리 목적지를 정해도 바다를 헤엄치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나. 커다란 방향을 정해놓고 나아가다 보면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좌우된다는 편이 맞겠다.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예를 들면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지 설정은 하지만 어느샌가 그 인물이 오히려 작가인 나보다 앞서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거다. 그게 결정적으로 작품 속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목소리를 내고 운명까지 정하게 되는 것 같다. 소설 을 집필하면서 온 세계를 누비는 동안 가장 마음에 들었거나 인상적이었던 곳은? 세계일주라고 하면 몹시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가기 힘든 곳들만 골라 다녀서. 하하. 소설을 읽은 이들이라면 이해할 거다. 우선 한 군데를 고르는 건 어렵겠는데. 시베리아 벌판과 그리스 섬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니까. 각 지역별로 독특한 특성을 가진데다 마치 마법처럼 신비한 기운을 풍기는 곳이 많았다. 여행이란 건 결국 그런 것 같다. 지리적 환경뿐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 내가 그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무엇을 했는지가 그곳의 기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당신의 소설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숙명적인 사랑이라거나 꿈같은 사랑이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유령과의 사랑 이야기까지. 당신은 운명을 믿나? 운명적인 사랑은 믿는다. 내가 그걸 찾아간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가장 멋진 모험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자기를 맡긴다는 건 때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랑하는 데는 겸손도 필요하고 용기도 있어야 하며 때로는 고통받을 각오도 돼 있어야 하니까. 사랑이란 어쩌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가장 대단한 경험일 거다. "10년 후에, 지금까지 내가 지내온 10년이 참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고, 10년을 더 살고 싶다 생각했으면 좋겠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을 10년 후에는 더 사랑하고 싶다.” - 마크레비하지만 영원한 사랑이야 말로 판타지가 아닐까. 맞다. 판타지지. 더 멋진 건 우리가 항상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는 거지. 그래서 사랑은 ‘빠지는’ 거고 ‘일어나는’ 거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우리 삶에 희열을 주는 영원한 향기라 할 수 있다. 나는 일생 내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단 하나의 사랑만 이어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삶을 버티는 힘이라 믿는다. 동상을 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일 텐데 나는 비둘기만 앉고 먼지만 쌓이는 것 같아 그건 싫다. 영원이란 건 사람의 감정 안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둘만의 사랑 이야기가 모두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작품이야 말로 영원히 남는 것 아닌가. 아, 그런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다. 여러 번 직업을 바꾼 당신의 화려한 커리어는 어떤 이들에겐 분명 동경의 대상일 거다. 특히 작가로서 제2의 커리어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을 것 같다. 글쎄. 굳이 충고한다면 아무런 충고도 듣지 말라는 것 정도? 하하.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 쓰는 것을 직시하라는 거다. 막연하게 글을 쓰는 모습을 생각하거나 남들이 당신이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라고 보는 것이나 복잡한 출판까지 미리 생각하지 말고 우선 글을 쓰는 것 자체만. 물론 글을 쓰는 것이 고통스럽긴 하다. 하지만 어떤 모델도 원칙도 틀도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길고 고독한 여행 아닌가. 겸허한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소설을 쓴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한다는 거다. 괴로운 순간에 수없이 직면하겠지만 그래도 쓰고 완성해내는 즐거움이 더 크니까 계속 글을 쓰는 거겠지. 내 경우엔 쓰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이유는 다양하거든. 이번 소설 처럼 수많은 자료조사와 공부가 수반돼야 하는 경우엔 특히 지치게 되고. 소설을 탈고하고 나서는 유난히 더 피로감을 느꼈다. 게다가 소설 속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겪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늘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관한 것만은 아니니까. 힘들었던 순간을 복기하는 건 다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을 살아 숨쉬게 하려면 모두 감수해내야 하는 부분인 거지. 그런데도 결국엔 모든 피로를 싹 잊을 만큼 커다란 기쁨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첫 소설을 쓴 계기가 불면증에 걸린 아들을 위한 거였다는 이야긴 유명하다. 그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작품에 대해 뭐라 이야기하나. 나빠도 나쁘다고 말할 리 있나, 내 아들인데. 하하. 아, 하지만 정말 아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용돈도 안 줄 거다. 이제 그 아이도 많이 자랐고, 자신을 위해 쓴 소설이라는 걸 알지만 워낙 착하고 너그러운 아이라 속을 모르겠다. 일단 좋다고는 하는데 말이지. 작품을 마치면 처음 보여주는 독자는? 나의 에이전트. 가장 가까운 친구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건 그만큼 개인적인 관심사의 범위도 넓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질문 그대로, 소설을 핑계로 내가 알고 싶던 분야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의학, 천체물리학, 고고학, 구호단체 등등. 사실 소설가라는 직업이 그래서 특이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해변가에 앉아 끼적거리면 ‘소설가는 저렇게 일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라면 거기서 뭔가 관찰하고 있을 거다. 작가에게는 관찰이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을 관찰하는 건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될 테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다. 사람의 삶이야말로 굉장히 흥미진진하거든. 사람들이 지나갈 때 대화하는 것을 듣다 보면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랑에 아파하는지 고독 때문에 몸서리치듯 괴로워하는지 추측해 보기도 한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좋은 소재고 가장 잘 쓰여진 책이다. 그렇게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발전시키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다. 어쩌면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맞다. 사실 나는 굉장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글을 쓰면서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게 된 거지. 소설을 쓴다는 게 치유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여전히 부끄러움을 타는 건 남아 있어서 사람에게 다가가거나 인물을 만들 때 약간 조심스러워 하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 막연한 시점의 어떤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이나 그림이 있다면. 너무 많은 것이 바뀌진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즐기고 있는 것을 그때도 즐겼으면 좋겠다. 10년 후에, 지금까지 내가 지내온 10년이 참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고, 그러한 10년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을 10년 후에는 더 사랑하고 싶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그 말은 지금 몹시 행복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글쎄. 그보단 삶을 즐긴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나는 어찌 보면 어린아이처럼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다. 오늘 촬영장에 오기 전에 저녁 모임에서 겨우 이틀 머무르려고 여기까지 왔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지. 이틀이라도 머무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런 생각으로 나는 기쁘게 열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왔다. 스케줄을 보고 내가 ‘고작 이틀이야?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식으로 순간을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도 촬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반갑고 이 순간이 즐겁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여러 스태프들이 작업하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오늘 받은 질문들도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할 거다. 서울에서 팀과 사진을 찍었어! 토마토를 먹으면서 기자와 즐겁게 인터뷰도 했고 등등…. 이야기해줄 게 너무 많다. 이게 바로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인 것 같다. 아마 10년 후에도 나는 계속 아이처럼 주변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살 것 같다. 나의 삶이 계속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이라는 매 순간을 사는 걸 즐긴다.” 피곤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에 진짜 웃음을 담아 마크 레비가 말하는 순간 나는 묘한 부러움에 빠졌다. 그리고 세 번이나 커리어를 바꿔 늦은 나이에 문단의 벼락 스타로 떠오른 그가 매번 성공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즐기면서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이들은 엔간하면 막을 수 없는 법이니까. 어느 날엔가 지금은 당연히 붙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수식이 사라져도 그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 언제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고작 한 시간 반 남짓한 만남으로 그를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분명해진 몇 가지. 만나기 전보다 그의 소설이 더욱 궁금해졌고, 앞으로도 오래, 멈출 생각이 없다는 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싶다는 것. 행복해지고 싶은 날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쳐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녹음기를 껐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마신 그가 한국어판 첫 장에 사인을 하더니 내게 내밀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