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그 여름,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단상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지나간 시간은 오직 겪은 이들의 가슴속에만 살아 있는 것이지만 그 계절이 여름일 때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감춰지지 않는 특별한 열기와 묘한 설렘이 있다. 그해 그 여름,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단상들.::이석원,오소희,ALAIN DE BOTTON,정형모,엘르,엣진,elle.co.kr:: | ::이석원,오소희,ALAIN DE BOTTON,정형모,엘르

two men on highway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찬란하다 할 만한 여름을 보낸 적 없는 사람이다. 그저 평균 수명대로 살게 된다면 앞으로 족히 40~50년은 더 살아야 하니 이제부터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물론 여름이라는 어느 한 시즌을 통째로, 그야말로 남들처럼 뜨겁게 보낸 적은 별로 없지만 여름에 관한 소중한 단상들은 그래도 몇 개 갖고 있다. 그것들은 사진으로는 없지만 나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아직껏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때때로 그 장면을 되살리곤 하는데 한 30년 전의 일이다. 차가 한 대도 없는 한적한 2차선 고속도로에서 아버지는 하늘색 포니 5323 자가용에 나를 태우시곤 어딘가로 유유히 달리고 계셨다. 당시엔 고속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과속방지 카메라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들은 자유롭게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차들끼리 중앙선을 넘나들며 속도 경쟁을 벌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누군가 우리를 추월하려 했을 때 아버지는 있는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으셨고 두 차는 그렇게 한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격전을 벌였다. 지금의 운전자들처럼 악다구니로 이기려 드는 그런 경쟁은 아니었다. 악의 없이 겨루다 헤어지는 순간엔 서로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경찰 단속이라도 있으면 맞은편 차들이 쌍라이트를 깜빡이며 신호를 주던 낭만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는 기억의 편린 같은 것들이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아버지가 나를 태우곤 말없이 도로 위를 달리시던 그때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와 나눈 대화라곤 “물 떠 와.” “네.”가 거의 전부였던 우리 부자지간이었지만 대화란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30년 전 여름. 아버지는 젊었다.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을지도 모른다. Words 이석원, 작가moonlight that night 블루 코브. 그 어여쁜 이름을 가진 섬에 우리가 도착한 것은 5월이었다. 더위에 익숙한 필리핀인들조차 방학하고 휴가를 낸다는, 낮이면 40℃를 훌쩍 넘기는 그들의 ‘진짜’ 여름이었다. 열대기후라면 이력이 붙은 나는 겁도 없이 열 살 아들 그리고 아들과 눈이 맞아 함께 지내게 된 동네 아이 ‘타이손’을 데리고 블루 코브로 뛰어들었다. 혹독한 더위 때문에, 섬을 찾은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낮에는 천국이었다. 우리는 등껍질이 벗겨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망나니들이었으니까. 아이들은 보트의 노를 저어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했고 나는 물속에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했다. 온갖 생김의 물고기들이 “아이고, 반갑소!”하고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후끈 달아오른 태양이 깊은 곳의 산호에까지 닿아 바다 속은 그야말로 총천연색 장관이었다. 물에 잠긴 채 고개를 삐죽 내밀고 바라본 뭍은 참 작았다. 뭍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작았다. 뭍에서 나를 들볶았던 시름들도 더불어 작아졌다. 나는 물속에 뛰어들고 또 뛰어들면서 바다의 위로에 귀 기울였다. 문제는 밤이었다. 손님이라곤 셋뿐인 그 오두막의 뒤쪽은 거대한 정글이었는데 굶주린 모기들이 ‘때가 왔도다!’ 일제히 외치며 우리에게 덤벼들었다. 정글의 모기는 항시 말라리아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모기장을 치고 드러눕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오두막은 눅눅했고 뜨거웠다. 잠은커녕 숨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문명의 보호를 받지 못할 때 인간은 얼마나 약한 존재이던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더위 속에서 어렵사리 잠든 아이들에게 모기 퇴치 크림을 발라주는 것, 덤벼드는 모기를 히스테릭하게 쫓으며 밤을 꼴딱 새는 것뿐이었다. 끔찍하게 기나긴 밤이었다. 저 멀리 달빛만이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아침이 되었다. 밤새 처덕처덕 바른 모기 퇴치 크림과 그 위로 흘러내린 땀과 수면 부족으로 엉망진창이 된 내게 오두막 주인이 물었다. “굿모닝! 오늘 떠나시나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네! 당장 보트를 불러주세요!”라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내 입이 비뚤어졌단 말인가? 나는 말했다. “아니요. 하루 더 묵을게요.” 나도 번번이 이런 내가 싫어! 달빛 때문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놀랍도록 아름다웠던 그 달을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블루 코브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두막에선 못 자겠어요. 바닷가에 모기장을 쳐 주실 수 있나요?”다시 두려운 밤이 됐다. 주인은 하나뿐인 고객을 위해 바닷가까지 매트리스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나무에 모기장을 묶어주었다. 아이들과 나는 미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등 완벽하게 취침 준비를 한 뒤 모기장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그리고 안쪽에서 빈틈없이 모기장을 여몄다. 베스트 초이스였다. 때때로 정글에서 울부짖는 짐승이 금방이라도 허술한 모기장을 찢고 들어올 듯 두렵기는 했지만 적어도 모기는 없었다. 게다가 바닷가 바람은 선선했다. 아이들은 금세 부드러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곤히 잠든 아이들 사이에 드러누워 달을 기다렸다. 아, 그리고…….달님이 두둥실 모습을 드러내셨다. 썰물로 드넓어진 촉촉한 개펄 위로 달빛은 마치 야구장의 서치라이트처럼 떨어졌다. 사막에서도, 화산 분화구 속에서도, 놀라운 달과 별의 잔치를 보아왔다. 그러나 그런 달은 처음이었다. 마치 천상의 세계에서 진귀한 존재가 밤 동안 잠시 하강하기 위해 내는 길처럼 달빛은 선명하고 은혜롭게 내려앉았다. 천지의 사물이 표표히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모국어처럼 명징하게 전달된다. 달은 속삭이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썰물이 아스라한 자장가처럼 철썩거렸다. 나는 오래전 엄마 품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돼 잠들었던 때처럼 잠이 들었다.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Words 오소희, 여행 작가romanticism & nature여름은 내게 온통 자연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제한된 시간을 조금이나마 나눠 자연에서 보내려고 애쓰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알다시피 유럽의 여름은 1년 중 유일하게 공식적인 휴가철이다. 여름을 자연에서 보내야만 한다. 숲이나 바닷가에서 단 3일을 보내도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효과는 훨씬 크다. 내가 여름을 보내는 방식이 자연을 경험하는 것으로 굳어진 데는 우리들의 위대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영향이 크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이었던 그는 1790년의 어느 날, 알프스에 갔다. 그는 그곳을 거닐며 느낀 감상들을 적어 여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앞에 떠다니는 이 순간, 나는 대단히 즐겁다. 이 이미지들은 앞으로도 내 삶에 부족한 부분들을 대신해 어떤 행복을 끌어내주리란 생각이 들어서 더 그렇다.” 이건 과장법이 아니다. 수십 년이 흐르도록 알프스는 계속 그의 삶 안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알프스를 떠올릴 때마다 그에게 힘을 주었다. 자연이 숨쉬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그때의 경험을 상기하는 순간 현재의 어려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윌리엄 워즈워드는 이런 심리적인 현상에 대해 ‘시간의 지점들(Spots of Time)’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는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때 일어난 소소한 일들과 그때 느낀 감정들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는 걸 강조했다. 그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윌리엄 워즈워드가 얘기하는 특별한 순간들, 그러니까 ‘시간의 지점들’을 몇몇 가지고 있다. 몇 해 전 여름, 호숫가를 방문했던 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물가를 따라 늘어선 나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들은 아주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윤택한 삶을 사는 듯한 인상을 뿜어냈다. 세상은 점점 나이 들어가고 종종 슬프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는 충동이 일었다. 나무들 사이에 얼굴을 한껏 파묻고 싶어졌다. 나무들의 생기와 냄새를 내 몸에 그대로 입히고 싶어서다. 형형한 여름 빛과 공기 그리고 나무들. 자연은 그 자체로 완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여자, 남자, 행복 그 어떤 것에 대한 염려도 없이.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다. 내가 그 장면을 눈으로 귀로 코로 완벽히 기억해둬야만 한다는 걸 몰랐다. 그 장면에 완전히 몰입했지만 내 감성은 단 1분간 지속될 뿐이었다. 이 나무들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건 얼마 전이다. 늦은 오후까지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런던의 교통 체증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 안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체증에 갇혀 있었다. 그건 매일 같이 내게 나타나는 걱정들이 만든 체증이었다. 엄청난 미팅들, 진척 없는 서류들, 그리고 억압 받은 의식들 속에서 나는 그때 그 여름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괴로움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보호해주었다. 그때가 바로 윌리엄 워즈워드가 얘기한 ‘시간의 지점들’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그 여름의 단상을 계속 가지고 있고, 내 일상 속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야 이 최첨단 기술들로 둘러싸인 생활 속에서 만연하는 압박들에 약간이라도 무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Words ALAIN DE BOTTON, 소설가march under the sun멋진 날이었다. 태양은 뜨거웠고 바람은 시원했다. 세 고교 동창 남정네의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회색 빛 재수 시절을 함께 끝냈다는 안도감, 대학 입학 후 첫 여름방학이라는 해방감, 그리고 남정네끼리 하는 첫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뭔가 은밀한 기대감은 여행길 버스 안에서 계속 부풀어올랐다. 충무 비진도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겨울 오는 종로학원 / 옥상 위에 / 팔베개를 하고 누워 / 연기만 뿜네/…/ 나두야 간다 나두야 간다 / 젊은 나이를 재수로 보낼 수 있나….”(김수철의 ‘나두야 간다’ 개사곡, 1984년 겨울 학원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막 배우기 시작한 통기타에 ‘삐꾸’도 신나게 긁어댔다. 거기까지였다. 태양은 너무 뜨거웠고 텐트 속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그 맛있다는 충무김밥도 매일 먹으니 시들해졌다. 여대생에게 비진도는 마치 출입금지구역이라도 되는 양 ‘멋진 걸’들의 모습은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첫날 훌렁 벗고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논 후폭풍이 무서웠다. 선 크림에 대한 무개념이 문제였다. 살이 벌개지고 따끔거려 제대로 누워 잠을 청하기 힘들 정도였다. 기타와 텐트는 거추장스런 ‘혹’이었다.희망 찬 여행은 어느새 고난의 행군으로 변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뭔가 추억에 남길 게 있어야 했다. “기념품 파는 데가 어디 있지?” “시장 쪽으로 가보자.” 여행지에서 파는 그냥 그렇고 그런 것들 말고 뭔가 새롭고 특이한 것을 사고 싶었다. 시장을 쭉 둘러보며 가는데 내 눈에 쏙 들어온 게 있었다. 짚신이었다. ‘아, 충무가 짚신 특산지인가? 슬리퍼 대신 신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값은 어떨까. 괜찮으면 여러 개 사가야지.’ “아저씨, 짚신 270 있어요?” 그때 친구들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날 쳐다보던 주인 아저씨의 표정이 묘했다. 난 그제야 ‘짚신 가게’를 둘러봤다. 가게 천장엔 누런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삼베 적삼이 바람벽에 걸려 있던 곳, 그곳은 바로 장의사였던 것이다. 해골 물을 마시고 잠든 원효대사가 아침에 일어나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장의사의 짚신과 특산품 가게의 짚신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왜 화들짝 놀라 가게를 나온 것일까. 꼭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대학 초년생이 가졌던 그 여름의 의문은 25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내 머릿속 한 켠을 맴돌고 있다. Words 정형모, 문화에디터*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