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자의 일생, 제인 캠피온 감독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여자를 찾아라! 당신은 아마도 요즘 여자 배우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배역들을 맡겨온 제인 캠피온 감독을 얻게 될 것이다. 제인 캠피온이 오랜만에 우리 곁을 찾았다. 존 키이츠 시인을 사랑하는 여인 역을 맡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배우 애비 코니시와 함께.::제인 캠피온, 피아노, 스위티, 인터 컷, 애비 코니시, 엘르, 엣진, elle.co.kr:: | ::제인 캠피온,피아노,스위티,인터 컷,애비 코니시

제인 캠피온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여자 감독들 중 하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유일한 여자 감독이기도 하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주변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이 여류 감독은 언제나 자유를 추구하며 투쟁하는 여인들을 그린 작품들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이제 55세를 맞은 거장이 6년의 침묵을 깨고 일곱 번째 장편 를 선보인다. 자네트()나 아다()처럼, 사랑에 빠진 새로운 주인공 패니도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욕망의 문제가 당신의 영화를 떠나지 않는다. 당신은 왜 이번 영화에서 첫사랑의 탄생을 다뤘나?앤드류 모션이 쓴 엄청 두꺼운 존 키이츠 전기를 읽고, 그와 이웃집에 사는 패니 브론을 이어주는 사랑의 뜨거움과 순수함 때문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시각적으로 다시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아주 젊은 두 남녀 사이의 이 유일무이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드러나도록 해야 했다. 그 위에 약간의 마법을 더했다.어떤 마법인가? 시나리오 쓰기? 캐스팅? 연출?나는 말하자면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여러 재료들을 한데 모으는 요리사다. 그 재료들을 적당한 분량만큼 덜어서 잘 섞는다. 하지만 나 자신도 그것들이 서로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예상하지 못한다. 자, 냄비에서 어떤 것이 나오게 될까? 만일 내가 그걸 알고 있다면, 마음이 좀 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이미 알려져 있는 레시피를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 새롭다거나 예기치 못했던 건 하나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 감독이란 직업이 가져다주는 행복이란 바로 그런 거다! 아주 원초적인 감정에서 출발해서 그걸 살아있는 무엇인 가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다. 만일 냄비에서 살아있는 무언가가 나오면 성공한 것일 테고, 설명적이고 고정된 게 나오면, 그 요리는 망친 거다. 당신에 대해 영화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 '제인 캠피온은 패미니스트 인가?'라는 글이 올라왔더라.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뭔가 의도가 있는 코멘트다. 그렇지 않나? 엄밀히 말해서 나는 신조 있는 감독이다. 이번 작품을 보면 내가 패니의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관점에서 표현을 했을 뿐이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영화로서 받아들여야지 정치적 의도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하긴 다들 자기 의도대로 영화를 보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웃음) 왜 이런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하나? 영화판이 남자들의 세계라서?흥미롭게도, 아마도 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던 오세아니아에서는, 모든 영화가 정부 지원금으로 제작된다. 한 친구가 말하기를 '오세아니아에서 페미니즘은 정부 지원금의 수혜자가 되기 어렵다' 라고 했다. 영화 시장에서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를 원했다. 같은 세금을 내고도 적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지. 이러한 상황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같다.그런 상황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나?아니, 그건 오해일 뿐이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여성들이 그런 생각으로 자신들을 퇴보 시킨 다는 건가?이런 생각은 남성은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오는 것 같다. 남성과 여성이 느끼는 감수성이 다르고, 감독이라는 지위가 사회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나는 남성들도 여성들과 똑 같은 감수성을 가질 수 있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감수성이 특별히 예민하다거나 하다고 생각치 않는다.존 키이츠라는 유명한 시인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당신은 패니라고 하는 알려지지 않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여자를 찾아라! 시인의 백지는 그 여자였다. 존 키이츠가 패니 브론에게 보낸 편지와 시들을 읽다 보면, 어떻게 그처럼 젊은 여자가 그 정도의 열정을 감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자문하게 된다. 그 여자는 아주 예외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 여자 나이 또래에, 애인이 나한테 '나는 우리가 여름날 사흘 밖에 살 수 없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라면 이 사흘은 평범한 50년보다 훨씬 아름다울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면, 나는 아마도 부리나케 도망가 버렸을 거다.두 사람의 이야기에, 어떤 내용을 더 보탰나?키이츠의 시와 편지, 그리고 패니의 일기에서 출발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도 놀랍기 때문에 더 보탤 필요도 없었다. 한 사람이 결핵에 걸려서 스물 다섯 살에 요절하게 되면서 종말을 맞이하는 이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나는 최대한 공정 하려고 노력했다. 가령 대화를 쓸 때에는 감정적인 것은 빼고 확실한 사실만 적는 식이다. 예를 들어서, 패니와 존은 1818년 성탄절 전야를 함께 보낸 것이 확실하다. 그 때 무언가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패니가 일기장에 "내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라고 적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엇이 젊은 아가씨에게 그런 느낌이 들게 할까 상상해 보았다. 그건 마치 감정과 정서의 퍼즐 조각 맞추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패니는 자기 시대와 더불어 호흡한 여자였다. 당신은 어떤 면에서 패니가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나? 패니는 영웅적인 여자였다. 패니와 동시대인 가운데 한 명은 패니를 가리켜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열정을 보인 여자라고 묘사했다. 패니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 덕분에 자신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었다. 독립심 강하고 고집스러운 패니는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처럼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았다.패니와 키이츠가 아이처럼 놀이를 하다가 첫 키스를 나눈 후의 장면이 매우 아름답다.배우들이 잘 해주었다. 길을 가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걸 보았는데 그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했다. 애비 코니시와 벤 위쇼는 어떻게 캐스팅 했나?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그 전에도 그들을 알고 있었고 둘 다 배역에 아주 잘 어울린다. 애비는 이 이야기가 깊이 와 닿았고 자신이 실제 패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몰입이 오디션에서도 잘 드러났다. 밴은 이미 잘 알려진 배우였고. 밴은 신인 시절 햄릿을 훌륭히 연기해냈다고 들었다. 그의 햄릿 연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키이츠의 시에서 키이츠를 읽어내고 불러낼 수 있는 배우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둘 다 매우 재능 있는 배우들이다.찰스 브라운 역의 폴 슈나이더는?그 역시 놀라운 배우다. 그가 출연했던 를 본적이 있는데, '오, 저 배우는 평범하지 않다. 특별하고 섬세해' 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해서 을 봤다. 놀라웠다. 그의 연기는 정말이지 새로웠다. 이번 작품 오디션 때 폴에게 전화를 해 오디션에 참가해 달라 했고 그도 내 영화 의 티켓을 아직도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가 자신을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며 기꺼이 응해주었다. 그는 정말이지 놀랍고 뛰어난 배우이다.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을 기용했는데. 한자리에 불러모으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물론 그랬지만 내 직업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보이스 코치를 영입했다.리허설 기간은 길었나?3주 동안 진행했는데, 보통 오디션들 보다 길었던 편이다. 그리고 보이스 코치를 기용해 서로 다른 억양을 가진 배우들을 훈련시켜 대사 처리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작품을 위해 배우들은 키츠의 작품과 전기를 읽고, 애비는 재봉까지 배워야 했다. 폴과 벤은 키츠의 작품에 대해 토론을 할 정도로 몰입했다. 우리 모두는 키츠와 사랑에 빠졌다고 할까? 그게 우리가 작품에 임할 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인이 된 패니를 보여주며 끝난다. 인상적이었다.키이츠의 친구이며 패니에 대한 편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던 찰스 브라운이 쓴 그대로다. 그는 패니가 얼마나 성숙해졌으며, 그로 인해 사랑에 빠진 달콤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졌다고 적었다.패니는 바느질을 굉장히 잘 한다. 혹시 그 방면에서 패니는 나름대로 시인이 아니었을까?아주 정확하게 봤다. 나는 손으로 일하는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시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여인들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패니가 자기 손으로 옷을 지어 입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아한 여자라는 명성은 자자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 내 자의적인 해석을 집어넣었다. 제일 놀라운 건, 패니의 삼촌이 조르주 브뤼멜, '미남'이라고 불렸고, 신사중에서도 신사였던 그 브뤼멜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패니가 패션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패션의 산실에 살았던 셈이니까.영화는 감각의 폭발을 다루고 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시각화 했는가?나는 마술적인 순간들, 내가, 그리고 우리들 상당수가 직접 겪었던 그 순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그러면 당신은 그 순간을 자꾸 연장해 가면서 언제까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당신의 몸은 생기로 충만하기 때문에 매 순간 떨림을 느낄 수 있다. 가령 나는 시나리오에 이렇게 적었다. "커튼이 바람에 의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다." 마침 그 날이 왔을 때, 촬영장엔 선풍기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으면서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커튼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더니 넘실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그 날, 우연히 일이 그런 식으로 풀리지 않았다면, 우린 물론 소품 대여소에서 대형 선풍기를 빌렸을 거다. 감독 입장에서는 언제나 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동시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준비를 해두어야 하는 법이다! 당신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여배우들처럼, 애비 코니시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배우들에게 어떤 주문을 하고 연기 연출을 하는가?배우를 잘 선택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된다. 연습은 한편으로는 배우들끼리 서로를 알게 해주고, 신뢰를 갖게 해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들과 감독 사이에 신뢰를 만들어 간다. 이 관찰 기간에 나는 배우들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 어떤 습관들을 가지고 있는지,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핀다. 그렇게 하면 실제 촬영장에서 훨씬 일이 빨리 진행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궁극적으로, 은총을 입는 순간은 배우들 자신에 달려있을 뿐,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도 나비한테 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나비는 그냥 난다. 그뿐이다.감독의 역할은 최소라는 말인가?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주 중요하다, 나는 배우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어야 하는 사람이니까.무척이나 아름다운 데도 불구하고 태양과 바람, 침묵과 감정 등, 다른 요소들이 너무 좋아서 무대장치와 의상을 잊어버리게 되더라.의상 담당과 무대장치 담당, 촬영감독과 나는 완전 합의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 진짜 스타는 바로 이야기라고. 그리고 영화를 끌어가는 견인차는 배우들이고. 그 어느 것도 배우들과 그들의 에너지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당신의 모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이라고 부를 만하다.난 여자다. 당연히 여자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이 유일하게 여성적인 감수성을 가진 건 아니다. 구스 반 산트나 토드 헤인즈 같은 감독들은 남자라도 여성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요즈음의 당신은 사생활에서나 직업적인 면에서 모두 충만한 순간에 다다른 거 같다.그게 바로 늙는다는 것,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이점이 아닐까. 2003년에 을 발표한 후 모든 걸 다 그만두어야 할 필요성 같은 걸 느꼈다. 그 때, 딸 아이 앨리스가 아홉 살이었는데, 난 일만 하느라 아이의 어린 시절을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20년 전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앞으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했다.결과는?바보 같은 소리일지 몰라도, 나는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안다. 나는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상냥함, 상상력...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폭력에도 관심이 있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앞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단편영화에서 첫 번째 장편영화 에 이르기까지, 우리 세계의 잔인함과 폭력이 오래도록 당신의 관심사였다.그 영화들이 당시 나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가면을 쓰고 앞으로 나갔다고 할까. 즐겁고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얼굴 뒤에 숨어서 세상에 대고 '나는 반항아'라고 외치고 싶었던 거지. 내 초기 작품들은 완전히 노출증적이었다. 나는 그 작품들에서 '이봐, 나를 좀 봐, 당신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잖아! 나는 미쳤어, 괴상하고 나쁜 여자라니까!'라고 외쳐댔다. (하하하) 이제 나는 더 이상 뭔가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 난 그저 하루하루 살아있는 게 기쁘고 행복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고, 그저 '존재하기'만을 원하게 되면,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