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제법 긴 이 연재를 하면서 열렬한 독자의 호응으로 팬레터가 답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의 예상밖의 냉담한 반응을 얻고 있다. -그래, 너 이탈리아 실컷 여행한 얘기 자랑질도 심하구나부터 -그놈의 변기나 화장실 얘기나 그만좀 하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칼럼은 원래 ‘자랑질’하려고 시작한 것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이탈리아, 이태리, 해외여행, 맛집, 파스타, 엘르, 엘라서울, elle.co.kr:: | ::이탈리아,이태리,해외여행,맛집,파스타

제법 긴 이 연재를 하면서 열렬한 독자의 호응으로 팬레터가 답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의 예상밖의 냉담한 반응을 얻고 있다. -그래, 너 이탈리아 실컷 여행한 얘기 자랑질도 심하구나부터 -그놈의 변기나 화장실 얘기나 그만좀 하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일 뿐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칼럼은 원래 ‘자랑질’하려고 시작한 것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 변기나 화장실도 그렇다. 여행에서 이것처럼 중대한 요소가 어디 있냔 말이다. 브리야사바랭이 ‘네가 뭘 먹는지 말하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마’고 했다지만, 나는 ‘네가 어떻게 배설을 해결하는지 말하면’이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다. 급한 게 마려우면, 특히나 설사가 나서 공중화장실을 찾아 온 거리를 헤맬 때, 길거리의 걸인이나 우리 반의 얼빵한 왕따조차도 부러웠던 경험들 없으신가. 그 거리가 외국이라면 더 심각해지고, 특히나 이탈리아의 한심한 화장실 실태에 비추어보면 나의 화장실과 변기 타령은 제법 유용한 여행 팁이 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아참, 뜻밖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내용도 있긴 하다. 이탈리아식 소 내장탕 끓여 먹는 법이었다. 혹시 기사를 못 읽은 분들을 위해 리바이벌하자면, 이탈리아의 소 내장은 아주 잘 손질되어 놀랍게 싼값에 팔린다. 그걸 넉넉히 사고, 매운 고춧가루와 독일 자우어크라우트(백김치)를 사서 내장 김치찌개를 끓이면 된다. 이탈리아에서 쌀을 잘 고르면 이천쌀 뺨치게 윤기가 좌르르, 흐르니 그럴 듯한 밥상을 차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고추장에 김치, 김까지 바리바리 싸가지 않고도 한식이 그리운 여행객들의 객고를 풀 수 있는 요긴한 방법이다. 이런 열렬한 독자들의 호응의 배경에는 한국인 특유의 조국 음식 애호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도 3박4일짜리 단체관광에 쌀과 버너, 라면을 지고 오는 분들이 있다지 아마? 여행의 묘미 중의 하나는 현지식을 먹어보는 것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봐도, 그놈의 ‘밥심’ 타령이나 김치 없이는 밥 못 먹는다는 애 끊는 호소가 이어진다. 비록 수상한 한식당에서 조선족 아저씨가 끓인 정체불명의 김치찌개를 20유로나 주고 사먹더라도, 뱃속에 한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여행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니 별 도리가 없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대다수 한국 여행자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솔직히, ‘흥, 겨우 한 달짜리 배낭여행에 웬 한식타령이람’하면서 빵 쪼가리와 치즈 따위를 냠냠거리는 아가씨들을 보면 살짝 빈정이 상해서 몰래 헤드록을 걸고 꿀밤을 때리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명색 이탈리아 셰프 체면에 공항 면세점에서 슬쩍 김치봉지나 명란젓 따위를 사는 짓은 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내 고백이다. 그래서 비장의 소 내장 독일 백김치찌개를 끓여 먹을 궁리를 해냈던 것이 아닐까-그 짓이 진짜 김치로 만든 찌개보다 덜 쪽팔린다는 근거는 없다만…. 아무 때나 사이비 김치찌개를 끓일 수는 없다. 싸구려 호텔방이라고 하더라도 김치찌개 냄새를 피우는 건 ‘코리언 출입금지’를 자초하게 한다. 두어 해 전, 어떤 식품업계 사장과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했는데, 그는 가지고 온 사발면을 끓여 드시고, 찌꺼기를 변기에 버렸다. 건더기는 어찌어찌 내려갔는데, 벌건 기름기가 변기둘레에 파도쳤다. 복도에 사발면 냄새가 자욱했던 건 물론이다.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그 싸늘한 눈빛이란…. 그러니 어지간하면, 그러니까 한식을 못 먹어 숨이 넘어가겠네 하기 전에는 다음에도 그곳을 들를 한국인을 위해 좀 참아주시라. 의외로 한국인이 안 들르는 곳이 없다. 어디서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안뇽하쎄요’ 정도는 듣고 사는 명색 아시아의 강국 아닌가. 한식섭취강박증후군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이런 분들에게 각별한 팁이 있긴 하다. 바로 중식당이다. 아, 일식당은 없냐구요? 있긴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일식당을 만나기는 좀 힘들다. 게다가 그 맛이란 아주 오묘(?)해서, 음 영화로 치면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고나 할까. 아니면 북한을 다룬 007 시리즈 영화의 어설픈 디테일을 보고 우리가 킬킬거렸던 걸 기억해보자. 호기심 천국 수준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지 못한 그 영화들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식이라니. 우동국물이 꼭 월계수잎을 넣고 끓인 콩소메 맛 같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말자. 스시라고 해봐야 당신이 저주하는 강남역 어느 구석의 롤집 수준인데, 물론 다꾸앙은 안 주신다. 이탈리아 식당엔 피클이 없는데 다꾸앙이 있을라구. 어쨌든 중식당을 발견하면 우리는 해갈이 되곤 한다. 자장면과 짬뽕은 없지만 말이다. 올리브유와 토마토소스, 얇은 피자에 질리는 순간은 의외로 빨리 오는 법이다. 서울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던 사람들이 그 맛있는 피자에 고개를 돌리고, 파스타 그릇이라면 쳐다보기도 싫다는 것처럼 구역질을 하게 되는 건 여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이미 시작된다. 정체불명이라고 좋으니 아시아 음식이라면 불개미 튀김이라도 먹을 기세가 되기 때문이다(맛이 없어서 숟가락을 던져 버린 마누라의 된장찌개가 그리운 건 바로 이 순간뿐이다). K와 피렌체를 어슬렁거렸던 건 으슬으슬 겨울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K는 바리톤 가수였는데, 삼겹살이 자신의 성량을 늘려준다고 믿는 별난 녀석이었다. 실제로 그는 삼겹살을 한 근쯤 구워 아침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목소리가 점점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혀를 심하게 굴려야 하는 ‘알(r)' 발음에서 탁월한 표현력이 필요한데 삼겹살이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아르르르르, 하고 녀석이 혀를 굴리면 꽤 그럴 듯해서 바리톤 김동규, 아니 오 솔레 미오를 부르던 파바로티 저리가라 할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께벨라꼬사 나유르나 따에솔레… 뻴레리~~아 프레~~스까”어쨌든 녀석은 중식 애호가여서 이탈리아에서 중식당을 공략하는 노하우를 짭짤하게 꿰고 있었다. 녀석은 두어 군데의 중식당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두오모에서 피렌체 중앙역으로 가는 길 귀퉁이의 작은 집을 골랐다. 이탈리아의 중식당은 모두 체인점이 아닌가 싶을 만큼 음식 솜씨나 메뉴의 구성이 대동소이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어떤 거대한 식당 카르텔이 존재한다고도 한다. 재료를 싸게 사서 일괄로 쫙, 뿌리는가 하면 요리사나 홀 서버들도 알맞게 공급해주는 그런 카르텔이라고 한다. 녀석이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동급생 중국인에게 들은 얘기이니 적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았다. “쌩기초 초급반에 막 대륙에서 건너온 젊은 남녀 애들이 왕창 입학하지. 그리고 다음 달이면 그들이 모두 사라져. 이탈리아어 공부라고는 그게 다야. 곧바로 식당이든 어디든 일하러 가는 거야. 몇 달씩 이탈리아어를 공부할 시간도 돈도 없다는 거지.”실제로 중식당에서 통하는 언어는 딱 하나다. 이탈리아어는 주문한 음식 그릇 수를 셀 때나 겨우 소통될 뿐, 중국어가 훨씬 낫다. 나는 여행 중에 중식당을 들러 조금 어려운 주문(이를 테면, 흰밥에 매운 소스를 넣고 잡채와 함께 볶아달라거나 해물탕면에 고추기름을 넣어 짬뽕식으로 만들어 달라는)은 이탈리아어로 하지 않는다. 그냥 종이에 한자를 쓰고, 몸짓 발짓을 섞어 주문하는 게 한결 낫다. 이건 정말 체험에서 우러나온 귀한 팁인데, 함부로 ‘프라이드 라이스’ 즉 볶음밥을 시키지 말라. 밥을 기름에 튀겨서 누룽지를 만들어 내오기 십상이니까. 그리고 눈을 멀뚱히 뜨고 어이없어 하는 당신에게 반문할 것이다. “밥을 튀겨(프라이) 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녀석의 중식당 공략 팁은 그래서 단출하게 짜였다. “형! 복잡하면 틀린다구요. 그냥 춘권에 잡채밥, 탕수육을 시키면 됩니다.”어떤 중식당이나 똑같은 맛과 가격의 춘권과 탕수육을 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춘권(春卷)은 한자어를 이탈리아로 푼 인살라타 프리마베라, 탕수육은 마얄레 콘 살사 아그로돌체라고 하면 된다. 문제는 잡채밥이다. 이게 중식당의 정식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방면의 고수다웠다. 그는 우선 잡채를 하나 시켰다. 잡채는 역시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스파게티 치네제’ 즉, 차이니스 스파게티다. 거기에다 흰밥을 하나 추가한 후 매운소스를 달라고 해서 즉석에서 비빈다. 매운맛이 도는 잡채밥의 맛이 기막히다. 그렇다면 매운 소스는 뭐라고 해야 주나.“뭐, 그냥 이탈리아어로 하시면 되죠. 살사 피칸테(salsa picante)!."K는 손님은 안중에도 없이 위성방송으로 중국 CCTV의 희한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킬킬거리던 직원을 불러 주문을 넣었다. 그 직원은 러닝셔츠 차림의 주방장에게서 요리를 받아 시선을 텔레비전을 향한 채 우리에게 요리를 날랐다. 접시를 내려놓으면서도 그는 일관되고 고집스럽게 고개를 텔레비전으로부터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탕수육의 소스가 바닥에 흐를 뻔했다. 우리는 그런 것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만족감에 몸을 떨며 흐흐 웃었다. 곧 우리 입에 ‘아시아’ 음식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에는 그렇게 흔했던 중식당이 요새는 그리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들리는 말로는, 이탈리아 경찰이 대대적으로 중국인의 불법 입국을 단속하고, 불법 취업자를 추려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중국 내륙의 가난한 땅에서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 달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의 불법 입국을 한 중국인들 처지에서는 추방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 이탈리아 뉴스 채널에서 중국인 불법입국을 단속하는 장면이 나왔다. 화물선의 밑창을 뜯자 거기 가축보다 더 가혹하게 구겨진 채로 한 떼의 중국인들이 나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본듯 한손으로 카메라의 불빛을 가리면서 파리한 얼굴로 눈을 찡그렸다. 그 장면에서 나는 우리 아버지 시절에 많았다는 일본이나 미국 밀입국을 떠올렸다. 부산이나 마산에서 오사카로 들어가는 밀항선은 아마도 그 화물선보다 더 열악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와 후배 C는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를 얼쩡거리고 있던 때는 불과 여섯 달 전이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중식당이나 모로코 식당이든 불개미든 속에 뭘 좀 넣어야 했다. 맥도널드는 저승길 도시락처럼 여기는 나 때문에 기어이 이탈리아 식당을 하나 찾아들었다. 역전의 식당이라니. 불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세계 어디든 역전에서 밥 먹지 말라는 건 만고불변 여행자의 법칙 아니던가. 그러나 어디나 멍청이들은 있는 법이다. 그게 그날 바로 우리였다는 게 통탄할 일이었지만. 씨구려 조끼를 입은 여드름투성이의 소년(틀림없이 주인의 막내 아들놈이다)은 담배를 피워 물다 말고 주문을 받으러 왔다. 녀석의 입에서 마지막 담배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만약 녀석이 코를 후비다 말고 왔다면 나를 향해 코딱지를 튕긴 후 ‘부르셨수?’할 게 틀림없었을 만큼 싸가지 없는 태도였다. 딱 관광객용인-그것도 이땅에서 제일 만만한 미국인이나 일본인을 겨냥한 듯한-메뉴판은 한여름 집시 애들 볼떼기처럼 찐득한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어서 만지기도 겁이 났다. 물론, 싸구려 디카로 찍은 음식 사진을 잔뜩 인쇄해 넣어 한눈에도 시원찮아 보이는 메뉴판이었다. 리조토와 파스타를 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10분도 안돼 음식을 대령했다. 원래 리조토 쌀이 익으려면 20분이 필요하다. 찐살로 만든다 해도 10분은 넘게 걸린다. 이탈리아에서 리조토를 미리 만들어두는 건 약간 죄악시되는 풍토가 있지만, 까짓거 팔레르모 역전에 들른 우리의 선택이 죄라면 죄일 뿐이었다. 마침 우리 자리에서 주방이 유리도 없는 창으로 훤히 보였는데, 요리사 녀석들은 요리가 아니라 뭔가 꿍꿍이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날리면서 말이다. 냉동 해물 몇 가지가 들어간 리조토의 맛은 차라리 의사소통 부재의 중식당 ‘튀긴 밥’이 나을 것 같았다. 화학조미료 맛 때문에 혀가 아렸다. 신선한 제철 해물을 쓰지 않고 해물 리조토 맛을 내는 법은 없다. 천하의 알랭 뒤카스나 조엘 로부숑이 온다고 해도 말이다. 이탈리아 요리사 녀석들은 은근슬쩍 화학조미료를 즐겨 쓰는데, 관광지의 그렇고 그런 식당이라면 대부분 그렇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갖가지 다국적 회사의 이 화학조미료는 야채나 고기, 해물 우린 성분과 섞어 사각형의 고형물로 팔린다. 우리가 ‘부이용’이나 ‘다도’, ‘큐빅’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그 마법의 사각 조미료를 사는 녀석이 바로 저런 녀석들이다. 손님한테 윙크나 날리면서 물에 녹인 사각 조미료를 슬슬 리조토나 파스타에 뿌려대는.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