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는 이정표가 없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 서촌 . 가회동 일대 북촌이 양반들의 거주지였다면 이곳 서촌은 중인들의 터전이었다. 시인 윤동주와 화가 김중섭 소설가 이상을 품었던 웅숭깊은 골목. 이정표 하나 없는 이 투박한 마을은 아주 오래전부터 질긴 풀포기처럼 거기 있었다.::서촌, 가회동, 북촌, 서울여행, 서울놀이, 엘르, 엘라서울, elle.co.kr:: | ::서촌,가회동,북촌,서울여행,서울놀이

체부동에서 한집 건너 누하동, 누하동에서 한집 건너 누상동, 다시 필운동, 통인동, 옥인동, 효자동…. 모퉁이 하나만 돌아도 동명이 바뀌는, 그래서 ‘감나무집’, ‘토담집’이라는 말이 지번 대신 쓰일 수 있는 조붓한 동네. 추억의 주름이 조록조록 잡힌 길을 따라 걷고 있자니 이곳에서 인생의 팔할을 보냈다는 어느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서촌의 골목은 너무 좁아서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만든다. 청와대가 지척에 있어 오랫동안 개발의 수혜를 받지 못한 서촌. 지금처럼 조선시대와 근대의 풍경을 간직하게 된 건 그러니까 나라님이 자신의 일터에 굴착기 소음을 허락하지 않은 결과다. 1990년대 말 건축 규제 완화로 빌라들이 들어서면서 한옥과 빌라가 더부살이하는 지금의 형세가 됐는데, 최근 이곳이 다시 한옥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을 기다려온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와집 늘어선 고샅길의 고즈넉함도 잠시.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서촌은 영 심기가 불편하다. 굼뜨게 흘러가는 봄날의 오후. 담벼락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만이 유일한 동행이다. 얼마 전 매스컴을 탄 후 부쩍 방문객이 많아진 헌책방 대오서점. 세월의 더께가 뽀얗게 내려앉은 책들이 천장 서까래까지 쌓여있다. 옆집 가방가게 아주머니 왈, 주인 할머니는 마실 나가셔서 다섯 시쯤 들어오신단다. 옆집 사람 들고남이 내 일처럼 훤한 사랑방 같은 동네. 이정표 없이도 삶의 방향을 알고 있는 서촌, 서촌 사람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