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친 당신의 뮤직 플레이리스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공사로 다망해 마음 쉴 곳 없는 당신을 위해 이 준비한 1시간 동안의 장르별 힐링 뮤직 플레이리스트.::뮤직, 재즈, 음악, 포크 뮤직, 음반, 밥 딜런, 에릭 클랩튼, 엘르, 루엘, elle.co.kr:: | ::뮤직,재즈,음악,포크 뮤직,음반

진심 어린 위로FM 방송의 DJ로 일하던 시절, 그 늦은 밤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이 어떤 이들인지 무척 궁금했다. 수년 간 밤마다 라디오 부스에 앉아 있으면서 내린 결론은 두 가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문화적 욕구를 채우려는 의도가 있는가 하면, 왠지 모를 상실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진심 어린 위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애청자 중 상당수는 두 번째 이유에서 음악을 찾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음악에 바라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하수상한 시절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하여 오래전부터 안식을 위해 택했던 음악을 바탕으로 몇몇 최근의 곡들을 더해 나름대로 ‘힐링 재즈’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누구든 자신만의 리스트를 품고 살아갈 일이다. 약간의 고심을 통해 1시간 정도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면, 음악은 이미 당신 곁에서 적잖은 힘을 발휘해온 것이다. 김현준(재즈 비평가, EBS-SPACE ‘공감’ 기획위원) 휴식과 치유, 평화의 울림1 음반 표지 사진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 뒤에 숨은 카잘스는 신비롭다. 바흐에서 카잘스로 이어져 내려오는 도도한 흐름, 바로 위대한 예술이자 인간 정신이다. 2 지극히 맑고 여리며 섬세했던 영혼, 그래서 평생을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에서 살았던 글렌 굴드는 지금은 하늘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며, “거봐, 내가 음반을 내길 잘했지”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3 ‘입신의 경지’까지 올랐던 신선급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녹음은 많지 않지만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다. 왜 하필 브람스 교향곡 4번이냐고?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기 때문이다. 4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의 바티칸 미사에 오케스트라가 직접 참여해 미사 전 과정을 따라가며 음악을 입힌 놀라운 음반이다. 종교를 초월해 가슴 깊은 곳에서 평화의 울림이 들려온다. 5 이 곡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다. 어느 고요한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노니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듯하다. 박정준(클래식 칼럼니스트) 고전적인 여백포크뮤직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은 전형적인 듯하면서도 전형적이지 않다. 아티스트 자신의 개성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가장 개인적인 음악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음악은 개인의 시간에 가장 크게 이입될 여지가 있는 음악들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임보다는 멈춤에 어울리는 음악이고 밀도보다는 여백에 천착한다. 지면을 빌려 선택한 음악들은 고전적인 여백을 잘 살린 음악들, 그리고 순음향의 기쁨이 더욱 크게 살아 있는 음악들이다. 그리고 세금을 피해 산간 오지에서 99장 미만으로 발매된 신화 속 앨범들이 아닌 일반적인 리스너라면 얼마든지 찾아서 혹은 구입해서 들을 수 있는 곡들을 선택했다. 고전에 집착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런 온고지신의 묘미는 치유의 시간에 더욱 큰 힘을 실어준다. 이 리스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음악은 1965년에 발표되어 45년이나 지난 음악이다. 그러나 그 긴 시간이 지나는 가운데에도 결국 인간이 본질적으로 치유되는 부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전이 된 거장 혹은 고전이 될 맹아가 보이는 근자의 아티스트들이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들로 치유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박주혁(팝 칼럼니스트, ‘반디에라뮤직’ 대표) 그런 일도 있었지게리 무어나 스티비 레이 본 같은 길고 끈적거리는 블루스 대신 투박하지만 블루스 본연의 결이 살아 있는 담백하고 잔잔한 노래들 위주로 골랐다. 블루스는 느리고 빠른 템포의 문제가 아니지만 같은 블루스라도 우울함을 날려주는 빠른 곡보다는 다친 마음을 잔잔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 노래들이 ‘치유’라는 의미에 더 맞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블루스맨들은 자기가 과거에 겪은 일들을 마치 남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읊조렸다. 대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일도 있었지.” 전통적인 열두 마디 블루스 형식 안에서 지금 여기서 살아남은 자들이 과거에 겪은 슬픔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 블루스다.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경험을 포개고 겹쳐가며 공감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블루스의 치유력이 나온다. 샘 쿡이나 레이 찰스 등은 흔히 소울로 분류하지만, 블루스의 범위를 조금만 넓히면 능히 포함되는 뮤지션들이고 이 두 곡은 특히 그렇다. 이 노래들은 주로 녹음 상태가 좋은 블루스 명인들의 최근 음반 중에서 고른 것이다. 지글거리는 음질로는 음악 자체를 즐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음반을 구하기도 비교적 쉬울 테고 말이다. 정승환(DJ, 바 ‘라커스’ 운영) 내 마음도 너를 찾아치유의 음악이라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기준의 감성이므로 언제나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렇지만 우리 음악에서는 그 기준이 조금 더 보편타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마음도 너를 찾아 오늘도 한없이 헤메이네’(장현 - ‘너를 찾아’)라고 읊조리는 것은 너를 향한 슬픔보다는 나에 대한 희망이요, ‘메마른 가슴에 차라리 비가 되어 쏟아져주오 그대 모습 지워질 때까지’(아도니스 - ‘구름’)라는 주문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감성을 정말 잘 어루만져주고 있지 않은가. 길옥윤 님의 ‘청산별곡’은 많은 버전이 있지만, 1970년대 중후반 녹음된 &lt숙명&gt 앨범에 수록된 버전을 추천한다. 하프시코드와 하모니카를 감싸는 부드러운 스트링 섹션과 리듬 섹션은 동시대 알랭 고레거가 프로듀스한 세르주 갱스부르의 작품들에 비할 만하다. 최석재, 강승용의 색소폰 경음악을 추가한 이유는,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색소폰 경음악 연주와도 다른, 짙은 ‘한’의 향기와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포크신의 가장 ‘위대한’ 저평가 뮤지션이었던 이형기의 ‘바람처럼 별빛처럼’은 최근의 소울 싱어들이 커버해주었으면 좋겠다. 박민준(DJ, 프로듀서) 제목의 뜻은 몰라도브라질의 한 음유시인의 관조적인 발라드를 들으며 외출을 준비하다 딱히 이유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선선히, 아무 일 없었던 듯 나갔던 날을 기억한다. 나도 알지 못했던 속내의 응어리를 음악은 그렇게 부러 끄집어내어 터뜨렸던 건데, 까딱하면 다 곪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후일담처럼 중얼거린다. 늙음을 성숙이라 순진하게 믿고, 그래서 기다렸던 중년이, 초입부터 더없이 실망스러웠다. 다만 더 많은 자기 금기와 간신히 누른 울화와 비겁한 침묵이 늘었을 뿐, 늙을수록 각박해지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에 허허롭던 날, 사냥개 한 마리를 데려다 키운 지 벌써 4년째다. 갈급한 사냥 본능을 하루 한두 시간의 산책으로 달래주지 않으면 안 된다.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개와 함께 매일 뒷산을 오른 게 4년째다. 그러면서 이 보잘것없는 산행이 애초 개가 아니라 화가 난 나 자신을 달래는 일과임을 수시로 깨닫는다. 산행에 곁들이는 이런저런 BGM 덕이다. 갈수록 사람이 싫어지는 시대지만, ‘아직은 음악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나를 달래주었던 월드 음악을 10개 골라본다. 제목의 뜻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여전히 들지 않는다. 저절로 아문 상처의 기록들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최세희(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