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양심을 동여 매는 하얀 리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하얀 리본’에서 미카엘 하네케는 나치즘을 낳은 악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사실 이 영화는 나치즘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우화다. 그의 작업에 칸영화제는 황금종려상으로 답했다.::화이트 리본, 미카엘 하네케, 미하일 하네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엘르, 엣진, elle.co.kr:: | ::화이트 리본,미카엘 하네케,미하일 하네케,칸영화제,황금종려상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최근의 몇몇 작품들을 통해 상처 속에 꽂은 비수를 뼈 속까지 찔러 넣는다. 그건 우리의 양심을 일깨운다. 도대체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잘 수 없게 만든다. 의사소통을 못해 괴로워하는 오스트리아 인들( ), 폭력을 구경거리로 자양분 삼아 살아가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 여러 해 동안 알제리 문제를 억압해온 프랑스인들의 불편함() 등을 다룬 작품들의 면면이 그렇다. 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독일 북부 작은 마을의 연대기다. 미카엘 하네케는 이번에 독일인들은 공격한다. 독일인들에 대한 그의 공격은 사실 언젠가 한번쯤 파시즘과 대면해야 했던 모든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만의 특별한 방식은 어떤 것일까? 벌레가 과일로 들어오게 된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악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지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지금까지도 기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에 대해 구상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한 10년은 되었다. 독일 파시즘에 대한 영화가 그렇게도 많은데, 왜 악의 뿌리를 파헤치는 작품은 드물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나는 그런 작품을 단 한 편도 알지 못한다. 단순히 나치즘의 근원에 대한 장편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기보다, 테러리즘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형태의 급진주의를 염두에 두었다. 말하자면, 인간은 어떻게 해서 정치적 또는 종교적 이념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거다. 나는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돌아왔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의 시사회가 열렸다. 미국인들은 이 작품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내가 만일 이슬람 국가에서 영화를 찍었더라고 하더라도, 모델 구조는 다르지 않았을 거다. 혹시 9?11 사태가 기폭제가 되었나?아니다. 나는 그런 사건이 터지리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또 발생할 수 있다. 프랑스가 그 무대가 될 지 누가 알겠나? 국제 사회가 처한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뉴스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석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아니, 별로 그렇지 않다. 실망할 지도 모르겠지만, 난 TV에서 일기예보만 본다! 뉴스 중에서 날씨만 거의 유일하게 믿을 만하니까. 당신은 1942년에 태어났다. 1950년대에 오스트리아 학교에서는 나치즘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쳤나?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오늘날에도 그 시절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을 거북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독일 사람들은 마침내 그 거북한 일을 해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만이 그 문제로 고민한다. 이들의 작품들은 그 주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모든 책임감을 떨쳐냈고,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인이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하고 있다. 내 동향인들은 말하자면 양탄자 속으로 먼지를 감추는 기술에 있어서는 최고가 된 셈이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말하겠나?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파의 세력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살 맛 안 난다. 은 ‘교육’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육의 책임에 관한 영화라고 해야겠지. 교육의 책임이란 영혼을 형성하는 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매를 맞고 자라거나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이념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셈이다. 나는 1968년 혁명을 거친 세대다. 내 친구들 중에서 상당수가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식들을 길렀는데, 이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많은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니 자유방임적인 교육도 해결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무작정 많이 사랑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잘못된 사랑을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에서, 목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벌을 준다고 확신한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때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목사는 마을 공동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학교 교사가 목사 앞에서 목사의 자식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을 때, 목사는 그 말을 참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말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가 평생 옳다고 믿어온 모든 것, 그의 교육관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니까. 당신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내가 을 통해서 보여주는 교육과는 정반대 되는 교육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이모, 이렇게 세 여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컸다. 이 세 여자들은 나한테 너무 호의적이었고, 애지중지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토록 격렬하게 권위에 반발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사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작가 개인의 심리 상태를 통해서 작품을 해석하려 드는 것은, 관객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작품인 경우,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작가의 삶에서 무언가 단서를 찾으려고 하니까. 어쨌든, 나는 엄한 아버지의 권위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자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만 말씀 드리겠다. 사춘기 무렵엔 사실 권위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권위를 직접 겪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아역 배우들을 어떻게 캐스팅 했나?1년 반의 준비 기간 중 아역 배우 캐스팅 하는 데만 6개월을 할애했다. 무엇보다도 예전 시대의 얼굴을 지닌 아이들이 필요했다. 아마 사진을 몇 톤 분량은 보았을 거다. 특히 아우구스트 산더의 사진을 많이 보았고, 그 사진들이 작품 속의 의상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7000명의 어린이들 중에서 십여 명을 추렸다. 조감독이 이 아이들을 완벽하게 준비시켰다. 때때로 제일 나이 어린 두 녀석을 설득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집중하게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 그렇게 해서 다시 촬영을 시작하곤 했는데, 그 점을 빼고는….은 몇몇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수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나?나는 항상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특별한 장르에서 통용되는 기법을 시도해보곤 한다. 관객의 주의를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거다.결국 범인이 확실하게 드러난 사건은 한 가지 밖에 없다. 혹시 당신은 나머지 범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그렇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 언제나 영화의 설정에 대한 설명이나 동기 등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이 개봉되자 모두들 나한테 두 소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묻더라. 물론 시나리오에는 대화 내용을 적어 넣었다. 배우들은 구체적인 대사가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배우들에게 그 내용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 장면 촬영이 끝난 다음엔 즉시 문제의 대본을 찢어버렸다.은 시종일관 판타지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면서도 결코 그 쪽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같다. 의도적이었나?나한테 판타지 영화란 같은 영화를 의미한다. 그러니 은 어느 모로 보나 판타지 영화랑은 무관하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사실주의적 영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제화 된 건 전혀 아니다. 더구나 내레이터가 관객들에게 영화 내용이 실제로 일어난 일과 똑같지는 않다고 미리 예고를 하면서 시작한다. 나도 그렇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투의 박제화 된 거짓 시대극은 아주 싫어한다. 그건 말하자면 19세기 식 거짓말이다. 관객들은 자기들에게 제시되는 현실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은 관객의 안목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같다. 관객에게 전적인 해석의 자유를 주니까. 그런데 사실 그건 관객에게 엄청난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혹시 관객들이 당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실망한 적은 없는가?그 어떤 해석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영화를 보니까. 그러니 관객 수만큼의 영화가 있다고 해야겠지. 누군가가 나한테 이 몹시 지루하더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기자들이 노상 까다로운 질문을 해대면서 당신의 영화를 분석하는 것이 짜증스럽지는 않나? 혹시 기자들이 당신의 작품을 머리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나?물론 그렇다. 영화를 지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상당히 유감스럽다. 작품 에 관해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한 여자 분이 로베르 브레송에게 “왜 주인공의 부인은 그를 떠났지요?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라고 물었다. 그 때 브레송이 그랬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영화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겁니다.”을 보면서 느끼는 건 막연한 구토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악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으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엇인가에 대해서 두려움이 느껴지거든. 이 맹목적인 두려움, 바로 이게 테러리즘의 정의가 아닐까?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해석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리 속에 열린 질문들을 가득 담고 영화관을 나서게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영화를 보면 나는 좌절하게 된다. 설명이란 늘 상투적이며, 결국 고정관념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신 작품에서는 매번 아주 거친 방식으로 극단적인 폭력이 등장한다. 의 경우에도 이제나 저제나 하고 조마조마했는데, 의사가 산파에게 모욕을 주는 장면에서 언어를 통해서 폭력이 작열하더군.그 장면에서 충격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제껏 보여준 것들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라고들 말하더라.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별로 상관 하지 않는다. 내가 꼭 충격을 주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건 아니거든. 내 작품 속에서 폭력은 맹목적적인 것이 아니라 극적인 필요에 의해 들어간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따금씩 말했던 것처럼, 그건 ‘하네케 브랜드’의 상표가 아니라는 거다.모욕은 일종의 테러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당연히 그렇다. 오랜 기간 중병에 시달리면서 받았던 고통은 잊을 수 있지만, 모욕은 그럴 수 없다. 모욕은 아주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로 인해서 증오를 키우게 된다. 모욕을 받음으로써 자신이 겪었던 좌절감을 간직하고 있다가 남에게 그걸 그대로 돌려줌으로써 그 사람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거다.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학자 알리스 밀러는 그 문제만을 전문으로 취급한다.이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당신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그렇지 않다. 어떤 작품으로라도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면 다 좋았겠지!혹시 이자벨 위페르한테 직접 상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히 감동했나?그렇다.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이자벨 위페르가 심사위원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고 고백해야겠다. 이자벨이나 나,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성가시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만일 이자벨이 나한테 상을 수여하게 되면,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한다고 흉을 볼 것이 뻔하니까. 그런데 수상작 발표가 있고 난 다음, 심사위원들이 모두 나에게 오더니 한 표 빼고는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덕분에 굉장히 기뻤고, 그 사이에 난무하던 모든 소문도 잠재울 수 있었다.황금종려상은 어디에 보관해두었나.책상 위에 두었다. 하지만 거대한 제단처럼 상패를 받치고 있던 엄청나게 큰 보관함은 치워버렸다. 겸양정신이 부족한 것 같더군! 그랬더니 책상 위에 있는 트로피가 잘 보이지도 않더라.칸에서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던 타란티노 감독의 은 혹시 봤나? 그 영화에서 유대인 장병들이 나치들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것을 보여주는 상상적인 복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내가 보지도 않은 작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칸영화제에 나온 또 다른 작품 가 훨씬 흥미진진하다. 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엄청 높이 평가한다. 뛰어난 감독이다.과 더불어 당신은 새로운 형식을 여는 것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할까.아니다. 내가 그런 형식을 택한 이유는 이번 주제에 그런 형식이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 루이 트랭티냥과 이자벨 위페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늙는다는 문제를 다루게 되는 다음 영화에서는 또 달라질 거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말이지, 당신이 사용한 단어를 인용하자면, 단순함에 있어서 급진적이 되어가는 건 사실이다. 복잡한 단순성, 이것이, 브레히트도 말했듯이,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이 분야에서는 키아로스타미가 단연 내 스승이다.종교 이야기만 꺼내면 말을 돌려버린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묻겠다. 당신 아버지는 개신교 신자였고,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였다. 은 원래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될 예정이었다고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 한 명이 난간 위에서 신에게 도전하는 장면이 나온다.나의 개인적인 성생활과 종교, 이렇게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다. 나한테 있어서 이 두 가지는 가장 내밀한 사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