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느낌을 거두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릭 오웬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간혹 ‘릭 오웬스스럽다’고 말한다. 가늘고 긴 실루엣의 니트 카디건을 봤을 때, 아슬하게 사선으로 떨어지는 웨지힐을 봤을 때, 혹은 진회색과 라일락 컬러가 오묘하게 섞인 비둘기와 마주쳤을 때. 릭 오웬스는 불과 몇 년 만에 낯선 느낌을 거두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다섯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서울에 열었다.::릭 오웬스, 미니멀한, 심플한, 도산공원, 엘르, elle.co.kr:: | ::릭 오웬스,미니멀한,심플한,도산공원,엘르

블랙 레더 베스트는 3백25만원, 화이트 새틴 스커트는 95만원, 화이트 원피스는 1백345만원, 블랙 슈즈는 1백55만원, 블랙 뱅글은 58만원, 모두 릭 오웬스. 명료하고 단호하다. 극적이고 극단적이다. 집요하다. 매순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릭 오웬스는 이처럼 이해하기보다 차라리 동경하기 쉬운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지켜왔다. 거대 자본이 디자이너의 손을 싸쥐고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대. 고집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그 결과를 오롯이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거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기에 릭 오웬스의 서울 상륙 소식은 반가운 동시에 걱정스럽기도 했다. 매장 방문 후 두 가지 마음은 양보 없이 한꺼번에 선명해졌다. 콘크리트 질감과 조명, 음악, 자신의 동상 머리카락 길이까지 디렉팅한 그의 엄격함에 치가 떨렸다. 그리고 새삼 그가 궁금해졌다. 이메일을 통해 그에게 다가간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만나게(비록 이메일이지만) 돼 반갑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1977년의 데이빗 보위를 들었다. 당신이 이번 남성복 쇼에 사용한 음악이라는 기사를 봤거든. 많은 이들이 보위(Bowie) 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지난 남성복 쇼에 사용한 로맨틱한 음악은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이다. 그리고 지난 여성복 쇼에 사용한 음악은 퀸(Queen)의 초기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기존 컬렉션보다 조금 더 호화스럽고 장식적인 컬렉션이 될 것 같아 오히려 감상적이면서도 다소 태연한 음악을 골랐다.음악, 그래 음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의 음악적 취향을 알고 싶다. 당신이 언제나 사랑하는 뮤지션, 그리고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뮤지션에 대해 말해 달라.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트랜스 제너레이터스(Trance Generators)의 음악이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은 다소 난폭하지만 초월적인 느낌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극단적인 폭발! 그것으로 충분하다. 릭 오웬스 매장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 역시 당신이 직접 고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평소에 듣는 음악과 어떤 차이가 있나? 매장에서 흐르는 음악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줄곧 즐겨 듣던 것들이다. 하지만 요즘엔 변화가 생겼다. 평상시에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고, 고요함 속에 머물며 창밖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정원 분수대에서 흐르는 물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것에 집중하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아, 물론 운동할 때만큼은 제외다. 그땐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공격적이면서도 시끄럽고 강렬한 테크노를 즐겨 듣는다. 지난 3월, 파리에서 열린 당신 쇼를 보러갔다. 둘째 줄에 앉아 목을 쭉 빼고 지켜봤는데 혹시 나 못봤지? 하하하. 하나하나의 룩을 보는 것보다 피날레에서 두세 명씩 그룹을 지어 걸어나오는 장면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아주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영상을 보는 듯했거든. 난 정해진 주제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걸 즐긴다. 한 명씩 나가는 것보다 그룹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더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인상 깊게 봤다는 그 효과에 대해 나도 매우 만족했다. 그것은 마치 뭐랄까, 새들이 대형을 지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베이지 컬러 톱은 95만원, 안에 입은 화이트 원피스는 1백75만원, 골드 뱅글은 85만원, 모두 릭 오웬스.당신이 만든 옷은 각각의 아이템보다 전체적인 룩으로 완성됐을 때 비로소 제 색을 낸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완전한 토털 룩이 런웨이에 등장하는 순간, 내가 추구하는 미학이 더욱 강하고 극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내가 제안하는 토털 룩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CFDF의 뉴 탤런트 어워드(New Talent Award)를 수상했을 때 당신은 이미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이른 시작은 아니었지. 현재 디자이너로서 어디쯤 왔다고 생각하나? 꽤 멀리 온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거다.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인터뷰를 살펴보니 당신이 어떤 ‘말이나 표현’에 규정되는 걸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과 당신의 옷에 대해 규정하는 말들(아방가르드 로맨틱, 고스 룩 등)을 부정하는 답변을 많이 발견했거든. 나는, 정말로, 어떤 부류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너무 바쁜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다들 뭐든 빠른 시간 안에 요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럴 때가 많으니까. 오히려 내가 어떤 부류로 분류되는지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반응할 만한 어떤 것을 찾는다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과장하나 싶다가 금세 숨죽이고, 절제하나 싶으면 다시 과감해진다. 당신은 절제와 과장 중 누구의 손을 들겠나?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함께하지 않으면 완벽하지 못한 두 가지니까. 나는 둘 모두를 사랑한다! 어디선가 당신이 쇼핑을 ‘박물관에 가는 일’로 비유한 걸 읽은 적 있다. 슬프게도 지금은 취향보다 트렌드가 스타일을 지배하는 시대다. 빠르게 입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그것은 내가 속한 세상의 바깥 일이다. 나는 그와 같은 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지난 4월, 서울에 생긴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당신을 박제한 것 같은 커다란 동상이 세워졌다. 서울에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라 방문했던 이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몇 년 전 이탈리아 쇼장 앞에 세워졌던 소변 보는 동상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지만!). 몇 해 전 당신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카스틸리오니 부인의 초상화를 빗대며 “나의 동상은 공공장소에서 벌이는 자위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난 자기애로 가득 찬 사람을 상상했는데, 비웃음이라니! 그것은 나의 자만과 허영에 대한 조롱(이해하기 힘들겠지만)이다. 나는 나의 독창성을 늘 냉담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또 그것을 나와 함께할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 존경스럽고 다소 터무니없으며 동시에 이기적인 일이지. 파리와 뉴욕, 런던, 도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서울에 열었다. 왜 하필 서울인가? 서울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혹은 기대는? 서울에서 훌륭한 파트너를 찾은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서울에 가본 적 없다. 때문에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질 수도 없다. 막연하게 서울 사람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느낌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할 테고, 또 그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겠지. 가죽 소재의 화이트 베스트는 1백55만원, 실크 소재 그레이 쇼츠는 55만원, 술 장식은 55만원, 블랙 슈즈는 1백55만원, 모두 릭 오웬스.매장 오픈 파티에 올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는 규모가 매우 작은 회사고 또 모든 제품이 내 손을 거쳐 완성된다. 나의 최우선 순위는 작품이니 그 속에서 나를 만나준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를 둘러 보고 혀를 내둘렀다. 천정에 감춰둔 스피커, 바닥과 벽의 컬러와 질감, 행거 디자인, 조명의 컬러와 음악까지 모든 게 너무나 릭 오웬스스러웠다. 모든 것이 당신의 디렉팅 아래 진행됐다고 들었다. 나의 미학을 위해 하나의 완벽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내 매장을 위해서라면 끝없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매장의 위치를 도산공원 근처로 선택한 이유는? 역시 공원과 가까워서인가? 파리 매장을 팔레 로열(Palais Royal)에 연 이유에 대해 “릭 오웬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공원을 거닐다가 들어올 수 있어서”라고 대답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서울 시내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군데의 장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도산공원 근처에 있는 매장의 규모나 비율이 매우 특별해 보였다. 특히 채광 창과 커다란 창문에 완전히 매료됐다. 공간에 대한 애착이 꽤 큰 것 같다. ‘가구 만드는 디자이너’로도 알려져 있는데, 지금 준비 중인 가구 전시에 대해 알려 달라(인터뷰 당시 릭 오웬스는 뉴욕 가구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이 전시는 살롱 94 갤러리(Salon 94 Gallery)에서 5월 8일부터 6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석화 석고로 된 내 침실을 재연할 것이다. 손으로 깎은 커다란 석고 침대와 석고 소파인데 무게가 2t이기 때문에 설치하는 것만도 꽤 힘든 작업이다. 작품 제목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모리스 조세프 라벨(Maurice Joseph Ravel) 작품에서 이름을 가져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for A Dead Princess)’라고 붙였다. 죽은 왕녀에게는 석고 침대가 딱 적합하게 보였으니까. 그렇지 않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을 지었군! 그렇다면 가구를 디자인할 땐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그것은 옷을 디자인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 다르지 않다. 가구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 모두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으니까. 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루이지 모라티(Luigi Morreti),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만든 세상을 사랑한다. 그것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다. 어떤 문명, 출세지향적인 문명을 연상시킨다. 요즘 특별히 모으고 있는 작품이 있나? 난 수집가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버리는 사람이다. 나는 소유라는 개념을 피해 도망하고 싶다. 그 편이 더 쉽고 간편하니까. 그렇다면 요즘 주목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는? 고백하건대 최근에는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 얼마 전 파리의 장식예술박물관에서 열린 몬타나 앤 무글러(Montana and Mugler)의 80년대 초 런웨이 쇼를 여러 번 관람한 것 말고는. 그들 같은 디자이너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건 파투(Patou) 쇼를 위한 라크르와 컬렉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름다움을 존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당신의 미각은 어떤가? 주로 어떤 음식을 즐기나? 나의 미각은 전혀 세련되지 못하다. 나는 매일 저녁 치즈 버거와 아이스크림 선데를 먹는다. 예상 밖이군! 당신이라면 검정색이나 회색 음식을 먹을 줄 알았는데. 하하. 다음엔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자. 꼭! 그러자! 다음 쇼가 끝난 후에 나에게 꼭 당신의 소개해 주길 부탁한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